
1963년 11월, 햇살이 쏟아지는 댈러스의 어느 날,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차량 행렬이 엘름가로 접어들 무렵, 환호하는 인파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한 인물이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검은 우산을 펼쳐 들고 서 있던 남자였다. 몇 초 뒤 총성이 울렸고, 세상은 영원히 바뀌었다.
그 충격적인 사건 이후, 미국이 설명할 수 없는 폭력의 현실과 씨름하는 동안 "우산 남자"의 이미지는 작가 존 업다이크가 훗날 표현했듯 역사의 목에 매달린 페티쉬(fetish)가 되었다. 그는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인물, 튀는 존재였다. 아귀가 딱 맞는 인과관계를 갈망하는 세계에서 그의 존재는 해로워 보였다. 그 우산은 비밀 신호 장치였을까? 아니면 첫 번째,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목구멍 부상을 입힌 플레셰트(미세 침) 발사용 위장 총이었을까? 수년 동안 수사관들과 음모론자들은 그를 거대한 음모의 열쇠, 은밀한 계획의 부분으로 여겼다.
하지만, 결국 진실이 드러났을 때, 그것은 거의 터무니없을 만큼 평범했다. 1978년 미 하원 위원회 청문회에서 한 댈러스 창고 직원 루이 스티븐 윗이 자신이 바로 그 '우산 남자'였다고 증언했다. 그의 목적은 암살이 아니라, 야유였다. 우산은 케네디 가문에 대한 상징적 항의의 표시였다. 그것은 네빌 체임벌린 전 영국 총리—그의 상징이 바로 우산이었다—의 유화정책과 당시 주영 대사였던 조지프 P 케네디(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의 관계를 비판하려는 의도였다. 수사관 조시아 톰프슨은 이를 두고 "정말로 터무니없지만, 그래서 오히려 사실일 법한 설명"이라 평했다.
이 '우산 남자'의 이야기는 우리가 얼마나 절실히 세상의 복잡함을 깔끔하고 빈틈없는 설명으로 간단히 정리하려 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특히 비극 앞에서 확실성을 갈망하며, 흩어진 사실들을 하나의 일관된—그리고 종종 음모론적인—이야기로 엮어내려 한다. 맑은 날 우산을 든 남자를 보면 우리는 뭔가 음모가 있을거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세상이 우연과 기이함, 의미 없는 사건이 있는 무대라는 생각을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국가적 비극의 순간에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기본 설정에 가깝다. 현대 문화는 확실성을 보장해주는 사고방식을 선호한다. 경제학의 간결한 모형들, 정치학의 야심찬 예측들,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데이터 기반의 확실성 말이다. 우리는 단순한 원인, 일반화 가능한 법칙, 그리고 명확하고 예측가능한 결과를 추구하도록 훈련되어 있다.
그러나 국정운영, 전략, 사회적 의사결정의 영역에서 이런 확실성에 대한 갈망은 위험한 약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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