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수도, 믿을수도 없네'…유럽, 美 의존 줄이려 여기까지 갔다

'떠날수도, 믿을수도 없네'…유럽, 美 의존 줄이려 여기까지 갔다

윤세미 기자
2026.02.02 15:38

[WHY] EU, 인도·베트남과 손잡고…佛·英·獨 정상 잇단 중국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AFPBBNews=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AFPBBNews=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일방주의에 맞서 외교 관계를 다변화하려는 유럽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유럽 정상들이 잇따라 중국을 방문, 시진핑 국가주석과 협력 강화를 약속했고 유럽연합(EU)은 19년을 끌었던 인도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마무리지었다.

뉴욕타임스(NYT)와 가디언 등 주요 외신을 종합하면 유럽 외교 당국자들은 미국을 여전히 핵심 동맹으로 인정하면서도 미국에만 의존해선 안 된단 메시지를 반복하고 있다. 트럼프 집권 2기 들어 더욱 거세진 관세 협박과 우크라이나 휴전 종용, 그린란드 병합 위협 등은 전략적 자립과 대안적 동맹 구축의 시급성을 일깨웠다. 통상·외교 분야 변화가 두드러진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EU와 인도는 FTA를 통해 자동차를 포함, 90%가 넘는 교역 상품에 대한 관세를 인하하거나 없애기로 했다. 양측은 또 '안보·국방 파트너십'도 체결하고 방위 산업 협력과 국방 정책 조율도 확대하기로 했다. 이 FTA는 2007년 협상을 시작했지만 장기 교착 상태였다.

트럼프 집권 2기 관세 압박이 협상을 자극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구매 등을 이유로 인도산 수입품에 50% 관세를 부과했다. 또 유럽을 상대로는 지난해 25% 상호관세로 압박을 가하더니, 무역협상 타결 이후에도 그린란드에 파병한 유럽 8개국에 또다시 25% 관세를 매긴다고 나섰다.

EU는 지난달 29일 베트남과의 관계를 외교 협력의 최고 단계로 평가되는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 EU가 이런 관계를 설정한 건 동남아시아 국가 중 베트남이 처음이다. 안토니오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국제 규칙 기반 질서가 여러 방면에서 위협받는 이 시점에서 양국은 신뢰할 수 있고 예측가능한 파트너로 나란히 서야 한다"고 말했다.

BBC는 EU와 인도의 FTA를 두고 "트럼프 정부에 맞서 주요 경제국들이 연대해 스스로를 보호할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움직임"이라고 전했다.

중국 찾는 유럽 정상들/그래픽=김지영
중국 찾는 유럽 정상들/그래픽=김지영

시진핑, 英에 무비자·위스키관세 선물보따리

유럽 주요국 정상들은 미국과 대척점에 선 중국에도 손을 내밀고 있다. 지난해 12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취임 후 네 번째로 중국을 방문했다. 뒤이어 미할 마틴 아일랜드 총리, 페테리 오르포 핀란드 총리가 경쟁하듯 중국을 찾았다. EU는 아니지만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역시 지난달 29일 영국 총리로는 8년 만에 중국을 찾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협력 강화를 약속했다.

중국은 영국산 위스키에 대한 관세를 10%에서 5%로 낮추고 영국 여행객에게 30일 이내 체류 시 무비자 입국을 허용키로 했다. 영국 제약업체 아스트라제네카는 중국에 대한 150억달러(21조5000억원) 투자 약속으로 화답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도 취임 후 처음으로 오는 24일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도 베이징에서 시 주석을 만났다. 미-유럽간 '대서양 동맹'의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더 이상 미국에게만 안보와 경제를 의존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에 대한 위기감이 작용했다. 중국은 미국에 염증을 느낀 동맹국들을 끌어안으며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로 활용하는 모양새다.

로버트 케이건 브루킹스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WSJ)을 통해 "트럼프는 지난 70년간 큰 충돌 없이 유지된 국제 질서를 떠받쳐 온 미국과 동맹국 간의 신뢰 체계를 깨뜨렸다"면서 "이제 동맹국들이 다시 미국을 예전만큼 신뢰할 가능성은, 미국의 정권 교체가 이뤄지더라도 크지 않다"고 진단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9일 악수하고 있다./AFPBBNews=뉴스1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9일 악수하고 있다./AFPBBNews=뉴스1
주한 EU 대사 "한국과 공급망 협력 채널 가동"

단 미국으로부터 유럽의 '홀로서기'는 여전히 먼 얘기라는 지적이 적잖다. 기술과 안보, 무역에서 유럽은 여전히 미국의 역할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금융·통화 질서에서도 달러 중심 체제에서 벗어날 대안은 뚜렷하지 않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 유럽은 러시아를 견제하는 데 미국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U 내부의 이해관계 차이, 느린 의사결정 구조 역시 유럽의 한계로 꼽힌다.

NYT는 "유럽이 미국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공유하고 있지만 정작 그 대가를 감수할 준비나 실행 가능한 계획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한편 EU는 한국과도 협력을 강화한다. 우고 아스투토 주한EU대사는 한국 부임 후 처음으로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급망 안정에 집중하는 한-EU 대화채널이 조만간 출범한다"고 밝혔다. 아스투토 대사는 "경제적 강압에 대응하기 위해 회복력 있는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함께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관련 기사

윤세미 기자

안녕하세요. 국제부 윤세미 기자입니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