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왜 관세에 목 맬까[특파원칼럼]

트럼프는 왜 관세에 목 맬까[특파원칼럼]

뉴욕=심재현 기자
2026.02.26 04:30
앨 그린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DC 연방 의사당에서 진행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에서 '흑인은 유인원이 아니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가 퇴장 조치됐다. 그린 의원의 이 같은 항의 팻말은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 계정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를 원숭이로 묘사한 영상을 올렸다가 삭제한 것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뉴스1
앨 그린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DC 연방 의사당에서 진행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에서 '흑인은 유인원이 아니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가 퇴장 조치됐다. 그린 의원의 이 같은 항의 팻말은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 계정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를 원숭이로 묘사한 영상을 올렸다가 삭제한 것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DC 연방 의사당에서 집권 2기 첫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DC 연방 의사당에서 집권 2기 첫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24일(현지시간) 저녁 미국 워싱턴DC 연방 의사당에 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 단호했다. 집권 2기 첫 국정연설의 핵심 키워드는 '미국의 황금기'와 이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관세'였다. 불과 나흘 전 미 연방대법원이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 권한에 제동을 걸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관세는 계속될 것이고 훨씬 더 강력해질 것"이라고 선언했다. "관세는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던 2024년 대선 후보 시절부터의 언급이 빈말이 아니었다는 걸 재확인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는 단순한 무역 수단이 아니다. 지난 1년의 행보를 지켜본 이들이라면 관세가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복음'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관세는 지지층을 결집시킬 선명한 도구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국정연설에서 "지난 1년 동안 수천억달러의 관세 수입을 올렸고 이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잡고 세금을 줄였다"고 주장했다.

미 의회예산처(CBO)를 비롯한 여러 전문 기관이 "관세 비용의 95% 이상을 결국 미국 소비자가 부담한다"는 연구자료를 내놓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이 비용을 지불한다'는 프레임을 중간선거의 핵심 전략으로 밀어붙인다. 러스트벨트의 노동자들에게 "당신의 일자리를 관세로 지켰다"는 서사는 무엇보다 강력한 정치 언어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무효 판결 직후 무역법 122조 등 대체 수단을 동원해 상호관세를 대신할 15% 글로벌 관세를 새로 부과하겠다고 큰소리를 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상호관세율을 낮추기 위해 미국에 막대한 투자나 미국산 제품 수입을 약속했던 나라들이 합의를 깨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공포 마케팅'으로도 여전히 관세를 휘두르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새로운 합의를 하는 것은 훨씬 더 나쁠 수 있다"고도 말했다. 무역 질서를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국정연설을 통해 거듭 천명한 것이다.

이런 연설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전날 이번 국정연설이 '건국 250주년: 강하고 번영하며 존경받는 미국'이라는 주제로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자화자찬하는 내용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을 앞두고 "이야기할 내용이 너무 많아서 매우 긴 연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연설은 2000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세운 1시간 28분 49초를 넘어 1시간 48분여 동안 이어졌다.

한국의 선택지는 더 험난해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지난달 우리 국회가 대미(對美)투자특별법을 신속하게 처리하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자동차와 철강 관세를 과거 무역합의 전 수준인 25%까지 올리겠다고 위협했다.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빚은 미국 기업 쿠팡에 대한 우리 정부의 조사와 처분을 두고도 미묘한 신경전이 흐른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자국 기업에 대한 차별로 규정하며 슈퍼 301조 등을 활용한 불공정 관세 조사에 착수할 조짐을 보인다. 우리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 "무역합의 이전보다 상황이 훨씬 더 거칠고 복잡해졌다"는 탄식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우리가 마주한 이 장벽이 논리적 설득이나 국제 규범만으로 허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는 경제 정책을 넘어선 통치 자체이자 '미국 우선주의'라는 거대한 성벽을 쌓기 위한 견고한 벽돌과 같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집착을 비합리적이라고 비판만 하기엔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너무 적다.

성벽이 높다고 발만 구를 게 아니라 벽돌 사이의 미세한 틈새를 찾아내 우리 경제의 활동 공간을 확보하는 기민함이 절실한 시점이다. 2026년의 무역 전쟁은 누가 더 도덕적으로 우월하냐의 싸움이 아니다. '미국 우선주의'라는 거대한 압박 속에서 누가 더 영리하게 각자의 실리를 챙기느냐, 그 '냉혹하고 기민한 생존의 기술'에 우리의 내일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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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현 기자

머니투데이 뉴욕 특파원입니다. 뉴욕에서 찾은 권력과 사람의 이야기. 월가에서 워싱턴까지, 미국의 심장을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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