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민주주의 후퇴, 인식 분열과 전략 혼선에서 비롯"

"오늘날 민주주의 후퇴, 인식 분열과 전략 혼선에서 비롯"

최성근 전문위원, 김상희 기자
2026.04.12 06:00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 무라트 소머 이스탄불 오지예긴 대학교 정치학 교수·제니퍼 맥코이 조지아 주립대학교 정치학 석좌교수…카네기 국제평화재단 보고서, '경고, 아니면 주의? 민주주의 후퇴 속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방법'

[편집자주] 트럼프 2기 출범, AI의 발달, 기후변화 등 글로벌 사회의 불확실성이 커졌습니다. 는 매주 일요일 오전, 깊이 있는 시각과 예리한 분석으로 불확실성 커진 세상을 헤쳐나갈 지혜를 전달합니다.
[솔트레이크시티=AP/뉴시스] 28일(현지 시간)솔트레이크시티 유타주 의사당 계단에서 ‘노 킹스’(No Kings) 시위 참가자들이 대형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미국 전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전쟁에 반대하는 대규모 '노 킹스' 시위가 열렸다. 2026.03.29. /사진=조성봉
[솔트레이크시티=AP/뉴시스] 28일(현지 시간)솔트레이크시티 유타주 의사당 계단에서 ‘노 킹스’(No Kings) 시위 참가자들이 대형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미국 전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전쟁에 반대하는 대규모 '노 킹스' 시위가 열렸다. 2026.03.29. /사진=조성봉

국제사회에서 나타나는 민주주의 후퇴의 본질이 단순한 권력자의 권력 남용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인식 분열과 대응 전략의 혼선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무라트 소머 이스탄불 오지예긴 대학교 정치학 교수와 제니퍼 맥코이 조지아 주립대학교 정치학 석좌교수는 최근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에서 발간한 '경고, 아니면 주의? 민주주의 후퇴 속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방법 (Alarm or Caution? Defending Democracy During Backsliding)' 보고서에서 "민주주의의 후퇴는 노골적인 독재 전환이 아니라 권위주의에 대한 구성원들의 인식 분열과 대응 전략의 혼선에서 야기된다"면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핵심 과제는 단순한 제도적 방어를 넘어 불확실성을 관리하고 사회적 합의를 구축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21세기 들어 나타나는 민주주의의 후퇴가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가 직면한 구조적 위기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1990년 이후 민주주의 후퇴를 경험한 25개국을 분석한 결과, 단 4개국만이 민주주의를 회복했고, 5년 이상 안정된 회복을 이룬 국가는 스리랑카가 유일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멕시코, 헝가리 등 9개국은 민주주의가 지속적으로 후퇴했으며, 나머지는 후퇴와 회복이 반복되는 불안정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저자들은 "민주주의는 일단 후퇴하면 회복이 매우 어렵고 이는 민주주의 체제의 회복력 자체가 약화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선 과거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기존 민주주의 제도와 규범들은 폭력적 쿠데타, 전체주의 이데올로기, 노골적인 권력 남용 등 명백한 위협에 대응하도록 설계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즉 오늘날 민주주의 퇴행은 법적 절차와 제도 내부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훨씬 모호하고 은밀해졌으며, 구성원들이 이를 인식하고 대응하는 데 큰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민주주의 수호자들 사이에서 위협의 존재와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일치하지 않는 상태를 가리켜 '체제 불확실성(regime uncertaint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체제 불확실성이 클수록 사회 구성원들은 정부의 조치가 단순한 정책 선택인지,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상황에서 각 행위자들은 민주적 통치제제에 실제 위협이 존재하는지, 혹은 그 위협이 얼마나 임박했는지에 대한 서로 다른 판단으로 분열을 겪게 된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체제 불확실성 속에서 동일한 정책이나 사건들조차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며 이러한 인식의 분열과 정치적 양극화는 민주주의 수호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특히 민주주의 수호자들 내부에서는 위협 인식과 대응 방식에 따라 세 가지 유형이 나타난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먼저 '경고주의자(Alarmists)'로 이미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협이 존재한다고 보고 비제도적 수단까지 포함해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형이다. 다음으로 신중론자(Cautioners)'는 일부 위협에 대해 인정하나 충분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 극단적인 조치를 취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한편 '전략적 경고주의자(Strategic Alarmists)'는 민주주의의 위협을 인지하나 정치적 현실과 대중 인식을 고려해 절차에 따른 제도적인 방법을 선호한다. 저자들은 이러한 인식과 전략적 불일치가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한 대응의 일관성을 약화시키고 결과적으로 후퇴를 가속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민주주의 수호자와 대중 간의 괴리 역시 중요한 문제로 짚었다. 민주주의 수호자들은 위협을 인식하더라도 일반 대중은 이를 과장된 정치적 주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중과 괴리된 일부 정치 엘리트들의 강경한 대응은 오히려 민주주의 회복에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실제로 2010년 튀르키예의 헌법 개정 국민투표에서 '경고론자'들은 일부 조항이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며 총파업과 투표 보이콧을 주장했지만, 대중들은 정부의 정책 성과와 개혁적인 이미지에 만족하며 찬성표를 던졌다.

유권자의 무력화 역시 민주주의 후퇴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민주주의 수호자들이 과장된 수사와 전략으로 지나친 위기 담론에 몰입할 경우 대중들은 민주주의가 회복 불능하다고 판단하며 정치 참여를 포기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2000년대 베네수엘라에서 야당들은 부정선거론을 주장하고 선거 보이콧까지 시도했지만, 오히려 유권자들은 투표 참여를 포기했고 결국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의회와 대법원까지 장악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저자들은 체제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민주주의 후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과제들을 제시했다. 먼저 민주주의 후퇴의 조기 경고 신호를 인식하고 체제 위협에 대한 공통된 해석과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다. 또한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정당과 언론, 기업, 노동조합, 각종 시민사회에 대한 교육은 물론 각종 대안적인 전략들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고 봤다. 아울러 야당의 실책이나 제도의 결함 등으로 야기된 시민들의 불만이 민주주의의 후퇴에 미친 영향들을 성찰하고 민주주의 수호자들 사이의 공통된 이해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자들은 "민주주의의 후퇴가 지속되는 가운데 민주주의 수호자들은 끊임없는 정치적 상황과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할 필요가 있다"면서 "민주주의 후퇴가 야기하는 체제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담론, 사고방식, 전략, 그리고 연합체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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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희 기자

안녕하세요. 혁신전략팀 김상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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