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투초대석]박희재 산업통상자원부 R&D전략기획단장

"한국이 그동안 대기업 중심으로 성장했다면 앞으로는 중견중소기업이 그 성장을 이끌게 될 것입니다. 중견중소기업들이 글로벌 전문기업(히든챔피언)으로 도약하도록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적극 지원할 계획입니다."
지난 4월 국가 최고기술책임자(CTO)로 불리는 산업통상자원부 R&D(연구개발)전략기획단 2기 단장에 오른 박희재 에스엔유프리시젼 대표(이하 단장)를 만났다. 임기 3년 동안 '무보수'로 중책을 수행키로 선언한 박 단장으로부터 향후 3년 동안의 계획을 들어봤다.
◇대담=송정렬 중견중소기업부 부장, 정리=강경래 기자
-2기 단장이 된지 100일이 조금 넘었다. 먼저 R&D전략기획단이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해달라.
▶기획단은 황창규 전 단장(전 삼성전자 사장)을 1기로 2010년 6월 출범했다. 역할은 크게 △우리나라 R&D 컨트롤타워 △미래 먹을거리 창출 등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싱크탱크'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올해 4월 2기가 시작됐다. 2기는 지난 3년 동안 1기가 수행한 프로젝트를 연속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프레임이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 산업의 허리 역할을 하는 중견중소기업 R&D 역량 강화라는 프레임을 추가했다. 중견중소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과제가 추가된 것이다. 그동안 대기업 위주 성장이었다면 이러한 성장을 지속하는 가운데 중견중소기업들이 새로운 플레이어로 진입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 때문에 2기는 소위 ‘히든챔피언’으로 불리는 중견중소기업들이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육성하는데 주안점을 두게 될 것이다.
-단장이기 이전에 교수(서울대 항공우주공학부 교수)와 기업인(에스엔유프리시젼 대표)이다. 3가지 직함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은 없는지.
▶모든 일을 그대로 수행하고 있지만, 솔직히 현재 무게 중심은 단장 쪽에 두고 있다. 학교에서는 이전에도 학기 당 1개 정도 강의만 하면서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다. 기업은 최근 각자대표 체제로 전환하면서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 3가지 일이 모두 다르게 보일지 몰라도 하나의 공통된 흐름이 있다. 핵심이 R&D다. 학교에서도 연구논문을 쓰며, 기업에서도 R&D는 중요한 승부처다. 이 과정에서 시장에서 활용하지 못하는 R&D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특히 학교에서 이러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을 때 가장 가슴이 아프다. 시장과 산업에 맞는 R&D가 꽃을 펴야 한다는 게 철학이고 지론이다. 모든 일을 함께 수행하면서 시너지효과가 나고 있으며, 물리적인 '삶의 질'은 다소 나빠졌을지 몰라도 정신적 '삶의 질'은 오히려 좋아졌다.
-학교 실험실에서의 연구결과가 기업을 통해 상업화로 이어지기까지 어려움이 많다. 이러한 이유로 에스엔유 외에 비아트론, 아이센스, 나노켐텍 등 교수들이 직접 창업하는 사례도 있다. 우리나라 R&D 상황,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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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 갔을 때 이야기다. 논문을 쓸 때 지도교수가 ‘이 기술이 기업에서 활용될 수 있냐’고 물었다. 영국은 학교에서의 R&D가 기업들에 활용돼야만 의미가 있다고 본다. 박사과정 대부분 시간을 기업들과의 산학협동으로 보내기도 했다. 실사구시(實事求是) 엔지니어링을 배웠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R&D는 문 닫힌 실험실에서 고고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그동안 학교들과 수많은 R&D를 수행했지만, 대부분 산업현장과 유리된 ‘연구를 위한 연구’, ‘상을 받기 위한 연구’를 해온 것이다. 공과대 교수들이 자신의 논문이 '사이언스지'나 '네이처지'에 실리면 대단하다고 보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대다수 R&D인력이 기업에 입사한다. 국민들이 잘 사는데 R&D를 집중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R&D 인력의 80%가 대학 연구소와 정부출연 연구기관(출연연)에 있다.
-이러한 고질적 R&D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벤치마킹 대상으로 독일을 보고 있다. 독일은 경제성장률 3∼4%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유럽연합(EU) 내 최고 우등생이다. EU 내 다른 나라 실업률은 증가하는데 독일은 오히려 줄고 있다. 독일내 특정 주의 경우엔 실업률이 0%다. 무역수지흑자에서는 부동의 1위 자리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가 독일을 몹시 부러워해야 하는 점은 히든챔피언으로 불리는 글로벌 전문기업이 다수 포진해있다는 점이다. 히든챔피언을 파악해보니 전 세계 2000여개 중 독일에만 1300여개가 있다. 미국은 300여개이며 일본은 100여개 보유한다. 우리나라는 25개에 불과하다. 산업에 밀착된 정책과 R&D가 현재 독일을 만들었다고 본다. 독일은 뮌헨대 등 상위대학을 졸업한 인력들이 히든챔피언에 속한 기업들에 입사한다. 당연히 글로벌 경쟁력이 생길 수밖에 없다.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가 대표적이다. 프라운호퍼는 66개 거점에 2만2000명 연구진을 보유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노벨상을 타기 위한 연구가 아닌, 히든챔피언에 속한 기업들의 제품을 만드는데 인력을 집중한다. 독일은 프라운호퍼를 중심으로 오랜 기간 동안 시장과 산업에 밀접한 R&D를 수행한 결과, 현재 부를 창출할 수 있었다.
-글로벌 전문기업을 강조한다. 국내에서도 다수의 글로벌 전문기업이 나오려면 어떤 것이 필요한가?
▶내 아이디어로 언제든 자유롭게 창업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 진입과 철수가 자유로워야한다. 기업을 운영하고 창업을 하는 행위 자체가 귀하고 국부를 만들어내며 애국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창업하는 이들을 존중하는 문화가 없다. 창업하거나 중소기업에 가는 사람들을 뒤떨어진 인력으로 본다. 학교에서 제자들에게 '창업해라, 중소기업에 가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없다. 창업이 위축돼있는 것이다. 이러한 위축을 풀어주는 모멘텀이 필요한 시기다. 그리고 창업하고 기업하려면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봐야한다. 하지만 해외시장 정보와 현황을 접하기가 쉽지 않다. 실리콘벨리 등에 비해 우리 인프라는 너무 작다. 자전거 타는 데, 처음 배울 때만 겁이 난다. 뒤에서 잡아주면 쉽게 배우는 거다. 창업이 수월하도록 규제를 관심 있게 고쳐나가야 한다. 창업하는 이들에 대한 격려와 존중도 필요하다.
-3년이라는 단장 임기동안에 반드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지난 100일 동안 기존 1기와는 다른, 2기만의 역할을 명확히 하는 작업을 했다. 이제 성과(아웃풋)를 만드는 작업이 남았다. 특히 글로벌 전문기업들을 다수 배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이다. 대학에 있는 우수 인력들을 어떻게 중견중소기업으로 유입시키느냐가 핵심이다. 프라운호퍼를 벤치마킹해 대학과 출연연, 산학연 등이 긴밀하게 협력하는 모델도 만들려고 한다. 개인적인 목표인데, 현재 25개에 불과한 국내 히든챔피언을 1년에 100개씩 만들어 임기를 마치는 3년 후 300개 정도로 늘리려고 한다. 이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과정이 아닌, 각 분야에서 강한 중견중소기업을 밀어주고 지원하는 등 '선택과 집중'이 이뤄지면 된다. 이러한 작업이 성공하려면 금융 인프라도 선진화돼야 한다. 글로벌 전문인력 육성에 글로벌 금융이 따라줘야 하는데, 우리나라 금융 인프라는 너무 취약하다. 그런 면에서 수출하는 중견중소기업에 자금을 융통해주는 한국무역보험공사 역할을 강화하는 등 금융 인프라 선진화를 만들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