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자 내 남편이 재벌?…'11조 시장' 숏폼 드라마, 할리우드도 눈독[트민자]

전과자 내 남편이 재벌?…'11조 시장' 숏폼 드라마, 할리우드도 눈독[트민자]

윤세미 기자
2026.05.24 06:04
[편집자주] 트민자는 '트렌드에 민감한 기자'의 줄임말입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눈에 띄는 흐름을 포착해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과 시대의 이야기를 들여다봅니다.

"후줄근하던 남편, 알고보니 재산 숨긴 재벌 회장"

#병원비가 필요했던 여성은 전과자로 알려진 남성과 급하게 결혼한다. 허름한 옷차림에 가족들에게조차 무시당하던 이 남자는 사실 막대한 재산을 숨긴 채 살아가는 비밀 억만장자다. 여성은 남편의 숨겨진 정체와 거짓말을 알게 되면서 배신감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한다.

다소 황당하고 유치한 설정 같지만 수억회 조회수를 기록하며 미국에서 히트를 친 마이크로 드라마(초단편 드라마) '억만장자 남편의 이중생활'의 줄거리다. 러닝타임이 1분여에 불과한 마이크로 드라마는 스마트폰 화면에 최적화된 세로형 포맷과 숨 돌릴 틈 없는 이야기 전개로 '틱톡 세대'를 공략하며 기존 콘텐츠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사진=릴쇼트
사진=릴쇼트
출생비밀 등 막장전개…중국서 태동, 할리우드까지 눈독

마이크로 드라마는 모바일 환경에 맞춘 9대16 비율의 세로 화면 전용 콘텐츠다. 보통 50~100회 분량으로 제작되며, 한회 길이는 1~3분에 불과하다. 불륜, 복수, 출생의 비밀, 재벌의 신분 감추기 같은 자극적인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막장형 전개가 특징이다.

미국 잡지 뉴요커에 따르면 마이크로 드라마는 2018년께 중국 숏폼 플랫폼 도우인에서 등장한 뒤 급성장했다. 2022년 336편에 불과했던 작품 수는 2024년 3만6400편까지 늘었고, 시청자는 6억6000만명을 넘어섰다. 2024년엔 중국 마이크로 드라마 시장 규모가 500억위안(약 11조원)을 돌파하며 사상 처음으로 중국 극장 박스오피스 매출을 뛰어넘기도 했다.

최근에는 할리우드도 마이크로 드라마를 새로운 사업 기회로 주목하기 시작했다. 미국 방송사 폭스는 숏폼 드라마가 더 이상 주변적 포맷이 아니라 독립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차세대 핵심 콘텐츠 산업으로 평가했다. NBC유니버설의 스트리밍 서비스 피콕 역시 대본 없는 마이크로 드라마를 공개하며 콘텐츠 실험에 나섰다. 업계에선 2030년 글로벌 마이크로 드라마 시장 규모가 260억달러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마이크로 드라마 제목들/사진=릴쇼트 웹사이트
마이크로 드라마 제목들/사진=릴쇼트 웹사이트

게임·AI·알고리즘 결합…시청자 몰입 극대화

중국 디지털 콘텐츠 기업 COL그룹의 티모시 오 이사는 최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인터뷰에서 마이크로 드라마의 인기 비결로 쉬운 몰입을 꼽았다. 그는 "일반 드라마는 몰입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마이크로 드라마는 출퇴근 지하철이나 혹은 화장실에서도 2분 안에 결말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이크로 드라마는 수익 구조나 제작 방식에서 기존 드라마와 큰 차이를 보인다. 기존 드라마가 스트리밍 구독 모델에 의존한다면 마이크로 드라마는 모바일 게임에 가까운 과금 체계를 채택했다. 일부 에피소드는 무료로 공개하지만 이후 내용을 보려면 광고를 시청하거나 결제해야 하는 방식이다.

제작 속도와 비용 경쟁력도 압도적이다. COL그룹에 따르면 90편 분량의 마이크로 드라마는 일주일 안에 10만~20만달러면 제작할 수 있다. 반면 일반 할리우드 시트콤은 회당 제작비가 200만달러를 넘고, '왕좌의 게임' 같은 대작은 회당 1500만달러 이상이 투입됐다.

데이터 기반으로 운영된다는 점 역시 기존 드라마와 다른 지점이다. 동일한 장면을 여러 버전으로 촬영한 뒤 시청자의 이탈 데이터를 분석해 반응이 좋은 장면으로 교체하는 식이다. 오 이사는 "데이터를 통해 장면별 효과를 추적할 수 있다"며 "기획부터 공개 이후 수정까지 거의 실시간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중국, '새로운 수출 산업'으로 적극 지원

틱톡과 온라인 게임 등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글로벌 영향력을 키워온 중국은 이제 마이크로 드라마 같은 디지털 문화 콘텐츠까지 새로운 수출 산업으로 육성하려는 분위기다. 제조업 중심이던 수출 전략을 문화·플랫폼 산업으로 확장하겠단 구상으로 풀이된다.

중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중국 플랫폼들의 해외 공략도 빨라지고 있다. 중국 마이크로 드라마 플랫폼 릴쇼트와 드라마박스는 단순히 중국 드라마를 번역해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배우·작가·감독을 고용해 해외 시장 맞춤형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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