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대 시인의 특별한 문인화] '얼굴'

[김주대 시인의 특별한 문인화] '얼굴'

김주대 시인문인화가
2014.03.04 08:36

<8>보고 싶다는 말, 울먹인다는 말

[편집자주] "나는 세상의 풍경을 읽는 자가 아니라 풍경 속의 일부가 되어 풍경과 나란히 걷고 있는 자이다."(김주대 시인)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는 얇디 얇은 울림판 같은 몸을 가진 그는 모든 존재를 의미 있는 기호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는 풍경 속에서, 거대하게는 우주의 근원에서 솟구쳐 오르는 어떤 징후를 감지하고 광인처럼 소리치는 사람이다. 생의 우연한 순간에 마주친 모든 존재가 그에게 가서 그림이 되고 시가 된다. 그의 문인화가 특별한 이유이다.

사고가 언어를 만든다는 '사고 우위론'이 일차적으로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러나 또 인간은 많은 경우 언어를 통해 사고하고 언어를 통해 어떤 정서를 만들어가기도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언어 우위론' 역시 틀리지 않은 것 같다. 보고 싶다고 말하면 보고 싶다는 생각과 정서는 점점 강렬해지지 않던가.

차를 몰고 가다보면 때로 도로가 그렁그렁 눈물을 올려놓고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길 양쪽 건물들이 흐느끼며 흔들렸다. 머리를 만지며 스스로에게 울지 말라고 했지만 코끝에는 이미 뜨끈한 물기가 어리고 차는 흐려진 눈으로 아무렇게나 굴러가고 있었다. 먼 산이 어깨를 들썩이며 돌아앉아 꺼이꺼이 울고는 뒤로 멀어져 갔다. 눈물은 눈에서 나는 게 아니라 심장 같은 곳에서 솟구치기도 하고,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처럼 얼굴에 마구 흘러내리기도 하였다. 목구멍에서 위장으로 떨어지며 꿀꺽꿀꺽 삼켜지는 물덩어리도 있었다. 그럴 때 보고 싶다는 말은 울먹인다는 말과 동의어였다. 그럴 때 '그립다'는 말은 감정이 아니라 살이고 뼈였다. 몸 전체가 어떤 지경에 이르러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제일 먼저 어린 자식들에게 미안했다. 징그러운 목숨을 감싼 살 전체로 면목이 없었다. 죽음이 늘 가까이 따라다니며 삶과 함께 한다는 걸 생각하며 머리를 흔들었다. 뼈로 지탱하며 살로 느끼는 허공 같은 시간이 끝없이 흘러갔다. 차를 세우고 담배를 피워 물면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시간들이 하얗게 허공으로 흩어지는 게 보였다. 그런 걸 '시'라고 말하기도 겁나고 두려울 때가 있었다.

눈물을 거두고 정신을 차렸을 때 단 하나의 어휘가 몸과 생각을 지배하였다. 보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모든 사람들의 '보고 싶음'을 생각하며 그 짙은 그리움이 실현되기를 빌어본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관련 기사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