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보고 싶다는 말, 울먹인다는 말

사고가 언어를 만든다는 '사고 우위론'이 일차적으로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러나 또 인간은 많은 경우 언어를 통해 사고하고 언어를 통해 어떤 정서를 만들어가기도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언어 우위론' 역시 틀리지 않은 것 같다. 보고 싶다고 말하면 보고 싶다는 생각과 정서는 점점 강렬해지지 않던가.
차를 몰고 가다보면 때로 도로가 그렁그렁 눈물을 올려놓고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길 양쪽 건물들이 흐느끼며 흔들렸다. 머리를 만지며 스스로에게 울지 말라고 했지만 코끝에는 이미 뜨끈한 물기가 어리고 차는 흐려진 눈으로 아무렇게나 굴러가고 있었다. 먼 산이 어깨를 들썩이며 돌아앉아 꺼이꺼이 울고는 뒤로 멀어져 갔다. 눈물은 눈에서 나는 게 아니라 심장 같은 곳에서 솟구치기도 하고,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처럼 얼굴에 마구 흘러내리기도 하였다. 목구멍에서 위장으로 떨어지며 꿀꺽꿀꺽 삼켜지는 물덩어리도 있었다. 그럴 때 보고 싶다는 말은 울먹인다는 말과 동의어였다. 그럴 때 '그립다'는 말은 감정이 아니라 살이고 뼈였다. 몸 전체가 어떤 지경에 이르러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제일 먼저 어린 자식들에게 미안했다. 징그러운 목숨을 감싼 살 전체로 면목이 없었다. 죽음이 늘 가까이 따라다니며 삶과 함께 한다는 걸 생각하며 머리를 흔들었다. 뼈로 지탱하며 살로 느끼는 허공 같은 시간이 끝없이 흘러갔다. 차를 세우고 담배를 피워 물면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시간들이 하얗게 허공으로 흩어지는 게 보였다. 그런 걸 '시'라고 말하기도 겁나고 두려울 때가 있었다.
눈물을 거두고 정신을 차렸을 때 단 하나의 어휘가 몸과 생각을 지배하였다. 보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모든 사람들의 '보고 싶음'을 생각하며 그 짙은 그리움이 실현되기를 빌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