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톡톡]우리를 더 창피하게 해주십시오

[컬처톡톡]우리를 더 창피하게 해주십시오

황인선 문화마케팅평론가
2014.04.23 05:33

[세월호 침몰 8일째]

주방에서 라디오를 듣던 아내가 저녁 밥상을 차리면서 짧게 "창피하다"고 합니다.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여간해서 말을 잘 하지 않는 아내인데, 창피하다는 것은 누군가 타자의 시선을 의식할 때 쓰는 말이지요. 아내는 누구한테 창피한 걸까요? 타이태닉호에서 어린이와 여자들을 끝까지 지키다 배와 최후를 같이한 에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이나 일등 항해사. 승객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연주를 하다 최후를 맞이한 배의 악단들일까요. 한국을 바라보는 외국인들일까요.

물어보진 않았지만 아이들이겠죠.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말한 이 시대의 어른인 우리들이겠지요. 아직 진실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국민들이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대구지하철 그리고 천안함, 경주 체육관 참사 때도 이렇진 않았습니다. 이건 세월호, 해경의 문제, 안전 불감증이나 프로세스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나라의 격, 어른의 격 그리고 우리 사회의 존엄과 명예에 대한 문제고 60여 년 전 건국하고 출항한 한국호의 불치병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행동은 태도에서 나오고 태도는 생각에서 나오고 생각은 문화에서 나오는 법이라 했습니다. 세계 무역 강국 한국호의 문화가 현재 이 불치병 수준임을 이번 참사는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외신은 세계 해운사의 수치라고도 보도했습니다.

창피합니다. 참담합니다. 창피합니다. 참담합니다.

저도 10년 전에 국제선 두 대에 젊은 친구들 800명을 태우고 블라디보스토크로 원정 이벤트를 떠난 적이 있습니다. 퍼렇고 깊은 동해 그리고 바람과 밤. 책임을 진 자의 바다는 무섭습니다. 후배가 지금 트라우마에 고통 받고 있습니다. 후배는 작년 10월, 그 세월호에 책 4만권을 싣고 500명과 함께 제주도로 떠나는 '책 마을 프로젝트'의 선상예술제 기획자였습니다. 준비 때문에 3번을 오가면서 거기 승무원들하고 친했다고 합니다. 좋은 사람들이었다고 했습니다. 뉴스에 사망과 실종자로 나온 고(故) 박지영과 사무장들과 다니면서 행사를 준비했던 로비, 객실, 갑판이 다 눈에 밟힐 듯 선한 그가 사고 당일 밤에 꿈을 꿨다고 합니다. 물이 차는 객실에 갇혀 문을 두드리며 문 열어주세요, 문 좀 열어주세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좋다던 후배는 이제 분노의 말도 없습니다. 창피하고 참담하고 먹먹합니다. 그래도 인사는 해야겠습니다.

목숨으로 스승의 소명을 다하신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죽음으로 사죄하신 교감 선생님도 고맙습니다. 한 명의 아이라도 더 구하려고 했던 이름 모를 승무원님들 고맙습니다. 해경보다 먼저 달려간 인근 어부님들 고맙습니다. 무능하다 질책에 고개 숙인 민관군 구조팀, 아이들만 생각하며 모두 힘내십시오. 생계를 팽개치고 자원봉사를 가신 분들 고맙고 이 아픔을 0.1%라도 선거전이나 판촉에 이용하지 않을 정치인들 기업인들도 미리 고맙습니다. 아이에게 못해준 회한에 몸 가누기도 힘들 텐데 자기보다 더 억장이 무너지는 다른 가족을 챙기시는 가족 분들 고맙습니다. '돌아와. 정말 잘해줄게. 그동안 미안했다.' 헝클어진 머리, 빨개진 눈, 먹먹한 가슴일 어머님 아버님, 삼촌 이모님들의 위대함이 고맙습니다. 모두 어둠 속에 큰 빛이 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더 창피하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곧 있을 여행, 레저, 항만, 해운 등 모든 분야 안전 불감증 혁신 폭풍이 제발 찻잔 속 태풍이 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어른답지 못했던 어른들이 이번엔 제발 어른이 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철저히 창피하게 해주십시오. 어른을 믿었던 아이들이 꼭 돌아와 어른들의 손을 붙잡아 더 창피하게 해주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누구 한 두 사람, 한 두 조직의 문제가 아니란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잖습니까. 우리 모두 공범자고 방조자이죠. 얼마나 더 세월이 걸릴까요?

어른들이 질 십자가를 이제라도 어른들이 지게 해주십시오. 훗날 오늘의 아이들이 창피함으로 우리를 회초리 쳐 비로소 어른 국가가 됐다고 말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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