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의사의 분노..명분도 실리도 잃은 의협

[기자수첩]의사의 분노..명분도 실리도 잃은 의협

최은미 기자
2010.05.06 08:30

지난달 25일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정기총회장.

대의원들은 경만호 협회장이 연구비 예산 중 1억원을 개인통장으로 입금시켜 전용하려다 발각된 후 다시 반납한 사실에 '면죄부'를 줬다. 문제가 있는지 조사하자는 일부 회원들이 발의한 '특별감사 실시의 건'을 152대 38로 부결시킨 것을 통해서다.

이유는 공개적으로 거론되지 않았지만 리베이트 쌍벌죄와 원격의료 허용 등 의사들의 생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법안들이 산적해있는 만큼 흠결이 있더라도 현 집행부에 힘을 실어주자는 것으로 해석된다. 경 회장도 편법을 동원한 이유로 "의협의 정치세력화 등 대외위상을 강화하는 데 쓰려고 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난달 말 리베이트 쌍벌죄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191대 0의 만장일치로 통과해 의협의 참패로 끝나자 의협 내 여론은 급변했다. 의협 내 게시판 등에는 "편법까지 자행하며 정치세력화하겠다고 해 문제를 덮어줬더니 국회의원 단 1명의 동의도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쌍벌죄 법안이 통과된 날 경 회장은 본인 명의의 긴급담화문을 내고 "회원 모두 힘을 합쳐 총 궐기하자"며 대규모 집회를 제안했지만 등돌린 회원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경 회장이 '피끓는 심정'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집단 움직임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지만, 결국 '총궐기'는 무산됐다.

심지어 일부 의사들 사이에서는 법적 소송을 통해서라도 횡령 의혹을 다시 파헤쳐야 한다는 의견과, 경 회장을 포함한 집행부가 스스로 총 사퇴한 후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난국을 돌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경 회장과 집행부만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으로 보인다. 현안을 해결하겠다며 '주먹구구'식으로 예산을 운영해 온 집행부를 인정해준 것이 바로 대의원회이기 때문이다.

리베이트를 주는 제약사뿐만 아니라 이를 받는 의사도 처벌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법적 논리 앞에서 쌍벌죄 허용을 막아야 한다는 눈앞의 이익을 위해 협회의 회무를 감시하고 승인하는 고유의 역할을 저버렸다는 점에서 그렇다. '실리'를 위해 '명분'을 버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관련 기사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