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무두(無頭) 정책

[기자수첩]무두(無頭) 정책

세종=정현수 기자
2017.08.16 05:31

8월은 막바지 예산편성 시즌이다. 기획재정부 복도에서 군복을 입은 군인 등 외부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매년 반복돼 온 풍경이지만 올해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정부의 예산편성을 총지휘할 기재부 예산실장이 공석이다. 박춘섭 전 예산실장은 지난달 17일 조달청장에 임명됐고 이후 빈자리를 채워지지 않았다. 그만큼 다른 간부들의 업무 부담이 늘었다.

새 정부 출범 후 이런 현상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잇따른 고위 관료들의 인사 지연으로 인해 이른바 ‘무두(無頭) 정책’들이 쏟아진다. 리더가 없는 채 정책이 만들어 지고 있음을 빗댄 표현이다.

지난달 발표된 ‘새정부 경제정책방향’도 대표적인 무두 정책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기재부의 경제정책국장과 정책조정국장은 줄곧 공석이다. 두 명의 국장은 일찌감치 청와대로 갔다.

공교롭게도 ‘경제정책방향’은 초안과 비교했을 때 수정이 많았다. 국장들이 없는 상황에서 휘둘린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가지게 한다. 국장 몫까지 해내야 했던 차관보는 건강까지 많이 안 좋아졌다고 한다.

무두 정책의 문제점은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도 드러났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역할을 했던 국정기획위는 출범 직후 각 부처의 업무보고를 받았다. 대부분의 장관들이 임명되기 전이었다.

업무보고는 1급 실장급들이 맡았는데,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장관 부재 상황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업무 추진계획을 보고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 업무보고가 대통령 공약집의 복습에 그칠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이다.

물론 이렇게 된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초유의 조기 대선으로 전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두 정책을 지켜보면서 인사 공백만은 어떻게든 최소화하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무두정책들은 결국 관료사회에 자발적, 비자발적 ‘워크홀릭’들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만 하더라도 지난주 휴가 기간 동안 제대로 쉬지 못했다. 내년도 예산안을 청와대에 보고해야 해서다. 김 부총리 스스로 “정무직 공직자에게 공무가 늘 우선”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이 정상이라고 보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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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수 기자

머니투데이 경제부 정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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