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 유인식 감독과의 특별한 재회"
"이렇게까지 액션 많을 줄은...먼지와 땀 달고 지내"
"데뷔 30주년, 포기하지 않은 나를 이정표 삼고파"

배우 박은빈이 다시 한번 낯선 얼굴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법정도 무대도 수술실도 아닌 1999년 세기말 해성시다. 넷플릭스 시리즈 '원더풀스'에서 그는 순간이동 초능력을 얻게 된 해성시 공식 개차반 은채니를 연기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말투와 행동, 비뚤어진 듯 보이지만 쉽게 미워할 수 없는 에너지, 그리고 죽음의 공포를 오래 품고 살아온 인물의 결핍을 모두 보여주며 또 하나의 선명한 캐릭터를 완성했다.
'원더풀스'는 종말론이 유행하던 1999년 세기말, 우연히 초능력을 갖게 된 동네 모지리들이 평화를 위협하는 빌런에 맞서 세상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초능력 코믹 어드벤처다. 해성시 공식 개차반 채니, 개진상 경훈(최대훈), 왕호구 로빈(임성재), 그리고 능수능란하게 초능력을 다루는 시청 공무원 운정(차은우)이 예기치 않게 한 팀이 되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낭만닥터 김사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의 유인식 감독이 연출을 맡아 히어로물의 쾌감과 생활 밀착형 코미디, 휴먼 드라마의 정서를 한데 엮었다. 박은빈은 '원더풀스'를 "조금 특별하게 시작한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우영우'를 함께한 유인식 감독과의 인연이 다시 프로젝트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고, 그만큼 제작 과정 전체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작품이기도 했다.
"이 작품은 조금 특별하게 시작한 작품이에요. 유인식 감독님과의 인연이 계기가 돼서 다시 불을 지필 수 있었던 프로젝트였거든요. '우영우'를 하고 있을 때 감독님께 준비 중인 작품에 대해 물어봤고, 시놉시스를 듣고 참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후 '우영우' 해외 시상식 가는 비행기에서 '원더풀스' 대본을 보게 됐는데 기발하다고 느꼈어요. 특히 1회부터 '은채니가 죽었다'는 장면이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은채니는 첫인상부터 강해야 하는 인물이었다. 어릴 때부터 심장병을 앓아 많은 것을 포기한 채 살아왔고, 그 탓에 막무가내 성격으로 해성시 공식 개차반이라 불린다. 자칫 비호감으로 보일 수 있는 캐릭터지만 박은빈은 그 안에 있는 결핍과 사랑받은 기억, 앞으로 나아가려는 기세를 동시에 붙들어야 했다.
"은채니라는 역할은 캐릭터성을 확고히 구축해야 발전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었어요. 캐릭터의 힘으로 밀고 나가야 했기 때문에 그만의 말투와 행동거지를 각인시키고 싶었죠. 뒷모습만 봐도 해성시 개차반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기를 바랐어요. 동네에서는 개차반이라고 불리는 사람 자체로 설명되고 싶었고요. 채니가 내질러야 작품이 앞으로 갈 수 있는 힘을 받아요. 만화적인 부분을 어떻게 봐주셨을지는 모르지만 개차반이라는 포지션은 확실하게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원더풀스'는 가벼운 코미디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결핍과 상처, 관계와 책임의 이야기가 놓여 있다. 박은빈은 채니의 높은 텐션이 단지 웃음을 위한 장치만은 아니었다고 했다. 극의 온도가 내려갈 수 있는 순간마다 채니가 인물의 에너지로 분위기를 밀어 올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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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생각보다 가벼운 이야기만 다루는 게 아니라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극 전환도 많았고 한 신 안에서도 해야 할 게 많았죠. 자칫 톤이나 무드가 어두워질 수 있는 부분들을 캐릭터로 돌파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텐션을 높였고요. 채니가 다운되면 극 전반이 고요해지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해성시 4인방의 팀워크도 즐거운 작업이었다. 박은빈은 특히 최대훈, 임성재와의 호흡을 떠올리며 자신이 웃겨야 한다는 부담을 상당히 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빠(최대훈, 임성재)들이 저와 어느 정도 나이 차이가 나기도 하고 배우로서 각자 가진 장기들이 많아요. 사실 저는 웃기고자 하는 부담을 덜 수 있어서 좋았어요. 코믹 연기가 어려운 영역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앞에서 알아서 캐릭터 열전을 벌이고 계셔서 저는 굳이 출사표를 던지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었죠. 캐릭터의 안정감을 잘 유지하면 알아서 웃겨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정말 다행이라고 느꼈어요. 준비해 오는 것도 정말 많으셨고 같이 웃으면서 촬영했어요."
초능력 코믹 어드벤처인 만큼 몸을 쓰는 장면도 많았다. 순간이동은 화면 위에서는 유쾌하고 기발해 보이지만 실제 촬영 과정에서는 배우와 스태프 모두에게 적지 않은 집중력을 요구했다. 같은 장면을 여러 장소와 동선으로 이어야 했고, 보이지 않는 힘을 실제처럼 상상해야 했다.
"감독님께 장난으로 '이렇게까지 한다는 이야기는 없으셨잖아요'라고 말하긴 했어요. 이렇게까지 액션이 많이 필요할 줄은 몰랐죠. 물론 각오한 부분도 있었지만 거의 모든 배우들이 먼지와 땀을 항상 달고 서로 성치 못한 모습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액션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본격적으로 한 건 처음이라 색다른 경험이어서 즐겁기도 했지만 힘든 것도 있었어요. 그래도 잘 끝냈다고 생각해요."

채니의 외형에도 박은빈의 해석이 들어갔다. 대표적인 것이 양갈래 머리다. 그는 대칭을 좋아하는 본인의 취향과 달리 채니는 "고장 난 인물"이라고 생각해 일부러 짝짝이 양갈래를 선택했다.
"저는 대칭을 좋아하지만 채니는 고장 난 인물이라고 생각해서 양갈래를 짝짝이로 묶었어요. 그 모습 때문에 귀엽다고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도움을 받지 않았나 싶어요. 사실 가발을 착용한 거였는데 자연스럽게 해주셔서 분장팀에 감사했어요."
박은빈이 본 '원더풀스'의 핵심은 선함이다. 초능력이라는 특별한 힘을 얻게 된 인물들이 그 힘을 어떻게 쓰는지, 그리고 왜 이들이 서로에게 스며드는지가 이 작품의 중요한 정서다. 채니 역시 거칠고 막무가내처럼 보이지만 할머니 김전복(김해숙)과 큰손식당 사람들의 사랑 속에서 자라온 인물이라는 점이 중요했다.
"'원더풀스'는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다들 초능력을 이롭게 쓸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제가 느끼기에 채니도 할머니뿐 아니라 큰손식당 이모님들을 친이모처럼 여기며 어릴 때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애정을 받고 자랐을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개차반이라는 설정이 있어서 비호감으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선을 잘 타야 했죠."

극 중 채니가 얻은 능력은 순간이동이다. 박은빈에게 실제로 갖고 싶은 초능력을 묻자 한때는 시간을 다루는 능력을 떠올렸지만, 결국 그 상상을 접었다고 털어놨다. 대신 '원더풀스'를 찍으면서는 순간이동이 꽤 탐나는 능력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예전에는 시간을 다루는 능력이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과거의 나를 바로잡을 수도 있고 미래의 나를 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뤄질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만뒀어요(웃음).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 굳이 바꿔서 다시 얻을 미래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더라고요. 이 시리즈를 하면서는 순간이동 능력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끔 누워 있고 싶기도 했고 순간이동할 수 있으면 편안한 보금자리에 다녀올 수 있을 텐데 싶었죠. 물론 실제로 주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올해 박은빈은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어린 시절부터 카메라 앞에 섰고, 수많은 캐릭터를 지나 지금의 믿고 보는 배우가 됐다. 그는 숫자 자체에 큰 의미를 둔 적은 없지만, 팬들이 30주년을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지나온 시간을 다시 보게 됐다고 했다.
"숫자를 중요하게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팬분들이 이번 30주년을 의미 있게 생각해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돌이켜보니 29주년일 때와 30주년일 때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30년이나 포기하지 않고 잘 지내온 저 스스로에게 한 번 기념비적인 이정표를 삼고 싶은 욕심이 들었어요. 남은 하반기에 30주년 타이틀에 부끄럽지 않도록 잘 지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