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컴퓨터와 인터넷이 널리 사용되면서 모든 것이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런 '스피드시대'를 살다보면 아차하는 순간에 놓치고 사는 것이 많다. 특히 이 세상에서 자신이 존재하는 것은 누군가의 희생과 봉사 때문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살아간다.
한 사람의 일생을 돌아보면 태어나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희생이 있었고 자라면서 학교에서 스승님의 사랑이 있었다. 또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주변 동료들의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잘 인식을 못하지만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경찰관과 소방관들, 그리고 국가라는 큰 울타리도 고마움의 대상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사실들이다.
필자의 경우도 바쁘다는 핑계로 이러한 고마움을 제대로 감사하거나 보답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 4월 한 신문에 실린 한국전쟁 영국인 참전용사에 관한 외국특파원의 글을 읽었다. 참전용사인 스픽맨씨는 6.25전쟁 당시 UN군 일원으로 참전해 임진강 근처 전투에서 중공군과 10대 1의 병력으로 싸우며 혁혁한 공을 세워 영국 정부 최고훈장인 빅토리아 크로스 훈장을 수훈했고 전쟁영웅이 됐다고 한다.
그는 이번에 6.25동란 6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 초청으로 53명의 노병과 함께 한국을 다시 방문해 부산 UN참전용사 묘지를 방문했다. 이번 방한에서 그는 한국이 이룩한 발전상과 한국인들의 참전용사에 대한 환대에 감격하며 울음을 터트렸고 기꺼이 한국 대사(大使)가 되기를 자원했다. 또 천안함 사태로 전쟁이 나면 기꺼이 또 싸우러 오겠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훈장을 팔아 생활에 보탤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이 글을 보면서 필자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동안 감사해야 할 일들이나 고마워해야 할 도움의 손길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필자에게 그의 말은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이 사람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해당 신문사에 연락하고 국가보훈처에 연락했다.
마침 아이슬란드 화산재 때문에 영국공항이 폐쇄되는 바람에 우리나라를 떠나지 못하고 인천의 한 호텔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다음날 인천공항으로 찾아갔다. 이 분에게 무언가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어 그동안 외부 강연비 등으로 모아둔 돈 가운데 3000파운드(약 한화 500만원)를 직원을 통해 전달했다. 스픽맨은 감동하고 한국을 떠났다.
그 후 몇 주가 흘러 주한 영국대사관에서 연락이 왔다. 스픽맨씨를 도와준 것에 대한 답례로 6월 하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탄신파티에 초대하고 싶다는 내용을 대사가 보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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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6.25동란 60주년이다.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젊은이들 3만6940명이 고귀한 목숨을 잃었고 영연방국가에서만 1750여명이 전사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있었을까? 역사에 가설이 있을 수는 없겠지만 아마 UN참전이 없었으면 대한민국은 적화됐을 가능성이 높고 우리도 지금 북한 동포와 같은 암흑에서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들에게 크나큰 빚을 진 것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참전용사와 참전국가에 감사의 마음을 표해야 한다. 특히 전사자, 부상자 가족을 찾아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생존하는 참전용사들에게도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이들 중 특별히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있으면 이제는 우리가 나서서 도움의 손길을 뻗쳐야 한다.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고귀한 목숨을 바친 나라를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고마움을 안다는 것은 인간의 도리이며 고마움을 안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또한 고마움의 표현은 선순환이 돼 돌아오기도 한다. 필자 또한 고마움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