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에는 불리는 대로 그 대상의 성격을 만들어가는 묘한 힘이 있다. 어린아이의 작명에서부터 회사나 모임의 명칭을 정하는 일에까지 모든 이름 짓기에 정성을 기울이는 이유다.
금융기관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뜨거운 논란이 됐던 '저축은행'의 명칭 문제도 '은행'이라는 이름이 만들어내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의미가 모호한 각종 '서비스국'으로 점철됐던 부서명을 '감독국', '검사국'으로 바꾼 결단도 같은 맥락이다. 특정 호칭에는 그에 걸맞은 사회 통념상의 기대가 들어가고 권한도 주어지기 마련이다.
금융권에는 이름에서부터 힘이 실려 있는 기관이 또 있다. 온갖 '중앙회'가 그렇다. 주로 저축은행을 비롯해 제2금융권 상호금융기관들의 모임들은 중앙회라는 명칭을 쓴다. 은행이나 증권사, 보험사들이 '연합회', '협회'라는 이름을 쓰는 것과 차별된다. 중앙회라는 이름에는 말 그대로 중앙집권적인 조직체계 속에서 상급기관, 그에 따른 권력의 느낌이 풍긴다.
실제 중앙회들의 힘은 꽤 세다. 소속된 단위조합이나 회원사의 숫자가 많아 감독당국의 역할을 상당부분 대신하는 탓이다. 예컨대 신협중앙회는 전국 960여개 신협의 경영 상태를 1차적으로 살핀다. 적기시정조치 대상 신협의 경영개선계획도 중앙회가 받아 검토한 후 금감원에 보고하는 식이다.
공교롭게도 금융시장 불안요인으로 지목받는 금융업종들이 대개 이 중앙회 이름을 쓰는 곳에서 나왔다. 당초 회원사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초유의 부실사태에 원인을 제공한 저축은행중앙회가 대표적이다. 신협, 새마을금고도 모두 중앙회 이름을 달았다. 수협중앙회 소속 90개 단위조합 중 태반은 의무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단 한 번도 외부감사를 받은 적이 없다.
농협중앙회장은 전국 곳곳의 단위조합을 산하 조직 삼아 정치권에도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반면 책임은 안 진다. 지난 4월 엽기적 전산망 마비 사태를 일으키고도 최원병 회장은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다. 사정이 이러니 단위조합들도 경영실적보다는 중앙회장 선거만 바라보는 형국이다.
중앙회라는 이름이 과분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소속 회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민주적 의사결정을 보장하는 다른 명칭은 얼마든지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면 명칭변경부터 검토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