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2000만원 이하의 소액 분쟁에 대해서는 금융회사가 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조위)의 결정을 무조건 수용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분조위 결정은 민원인과 금융회사가 모두 수용하면 법원의 화해 결정과 같은 구속력을 갖고 한쪽이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송을 제기하면 된다. 2000만원 이하의 소액 분쟁의 경우 금융회사가 이견이 있어도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고 무조건 법원의 결정과 같은 구속력을 갖게 하겠다는게 금감원의 의도다.
문제는 법원에서는 원고와 피고가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피력하며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지만 분조위에서는 금융회사가 변론할 기회조차 없다는 점이다. 금융회사가 입장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2000만원 이하의 소액이라는 이유로 분조위 결정에 대해 소송조차 원천 차단당한다면 자칫 민원만 내면 금융회사에서 돈을 타낼 수 있다는 ‘민원 만능주의’가 만연할 수 있다.
게다가 현행 분조위는 재심도 없다. 2000만원 이하 소액에 대해서는 소송마저 가로막히면 금융회사는 단 한 번의 분조위 결정으로 모든 상황이 종료된다. 금융회사에 반론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이같은 단심제는 가혹한 면이 있다.
소액 분쟁조정 결정이 거액으로 커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금감원은 분조위 결정을 유사 사례에 일괄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회사가 2000만원 이하 소액 분쟁조정 결정을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결정이 유사 사례에 일괄 적용되면 몇 건이 됐든 소비자에게 돈을 돌려줘야 한다.
한 건으론 소액이지만 건수가 많아지면 수백억~수천억에 달하는 ‘폭탄’이 된다. 최근 논란이 된 즉시연금 사태만 해도 건당 평균 금액은 750만원선에 불과하지만 16만건에 달해 보험사가 부담해야 할 금액이 8000억원이 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건당 소액이라고 금융회사에 무조건 수용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부당한 이유다.
분쟁조정 한 건에 대한 결정을 유사사례에 모두 적용하는 일괄구제는 유일하게 영국에서 시행하는데 논란이 많다. 영국 감독당국이 2011년에 지급보장보험(PPI)에 대한 일괄구제를 명령한 이후 영국 금융회사들은 7년간 약 285억파운드(한화 약 41조원)가 넘는 돈을 보상했다. 그럼에도 보상 요청이 계속되자 영국 감독당국은 결국 내년까지만 보상 접수를 받고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이 사례로 일괄구제 명령에도 극히 신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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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은 정책을 결정할 때 소비자뿐만 아니라 금융회사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과도한 소비자 보호로 금융회사가 문을 닫을 정도가 되면 그 금융회사의 고객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소비자 보호는 재무건전성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면 장기적인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라도 정책 재검토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