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금융권 CEO 인사는 예상 외의 연속이다. 8월 전직 관료들과 정치인 등의 이름이 오르내리던 금융감독원장에 '이찬진'이란 이름이 호명된게 시작이었다. 이찬진 원장은 금융권 경력이 전무한 변호사 출신이다.
한달 뒤에는 산업은행 회장에 예상치 못한 이름이 튀어 나왔다. 2019년 산업은행을 떠난 박상진 전 산업은행 준법감시인이었다. 그는 '산업은행 설립 이래 첫 내부 출신 CEO'란 타이틀을 달고 여의도로 돌아왔다.
11월에는 수출입은행장에 황기연 상임이사가 임명됐다. 이찬진 원장, 박상진 회장은 임명권자인 대통령과의 인연이라도 있었지만 황 행장은 그마저도 찾기 힘든 발탁 인사였다. 황 행장은 전임 윤희성 행장에 이어 2연속 내부 출신 행장 시대를 열었다.
앞서 국무조정실장, 국가데이터처장(옛 통계청장), 관세청장, 조달청장에도 내부 출신이 임명됐다. 이어진 산은, 수은 인사는 '공무원 출신 배제, 내부 출신 중용'이란 인사 기조를 확실히 보여줬다. 대부분 기획재정부 출신들이 가던 자리였던만큼 새 정부의 '기재부 패싱'에 따른 결과일 뿐일 수 있지만 아무튼 새로운 선례를 쌓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능력이 검증된 외부 인사를 무조건 배제할 이유는 없지만 공공기관장은 애당초 관료나 정치권 인사의 자리라는 관행이 계속될 이유도 없다. 내부 출신 CEO의 등장은 직원들에게 동기부여가 된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내부 출신 발탁이 끊기지 않아야 한다는 책임감에 더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국책은행에서 시작된 새로운 금융지배구조의 바람은 민간 금융권에도 불고 있다. 현재 신한금융, 우리금융, BNK금융에서 차기 회장 선출 절차가 진행 중이다. 현직 회장을 포함해 그룹내 주요 계열사 CEO들과 외부 추천 인사들이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의 검증을 받고 있다. 누가 차기 회장 자리에 오를지가 관심사이지만 이번엔 선출 과정 자체도 눈여겨 봐야 한다.
특히 우리금융과 BNK금융은 더욱 그렇다. 두 곳 모두 내부 갈등이 매번 회장 선출에 영향을 주던 곳이기 때문이다. 특정 학교나 합병 전 출신 은행에 따라 후보가 갈리고 그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정치권이 움직이고, 그로 인해 누구는 낙마하고 누구는 급부상하는 일이 반복돼 왔다. 갈등을 동력으로 자리에 오른 CEO의 말로가 좋을리 없고 이미 여러명의 CEO가 불명예스럽게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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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금융은 상업, 한일은행간 자리 다툼이 오래 지속돼 왔다. 두 은행이 합병된게 1999년인데 두 은행의 동우회가 통합을 결정한게 올해다. 무려 26년이 걸렸다. 임종룡 현 회장이 임기 동안 완전 민영화를 이뤄내 정부 개입의 명분을 없애고, 양 동우회를 쫓아다니며 통합을 끈질기게 설득한 이유다. 그 결과 올해 회장 선출 과정에선 과거와 같은 잡음이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BNK금융은 부산 지역의 특정 대학, 고등학교 출신간 갈등이 이어져 왔다. 전임 금융감독원장이 공개적으로 지적했을 정도로 BNK금융 지배구조의 가장 큰 취약점이었다. 올해도 지역 정치인들이 후보군에 포함된 현 경영진을 공격하고 그 이면엔 특정 학교 출신을 차기 회장으로 앉히려는 의도가 있다는 소문이 돈다. 그럼에도 회추위는 묵묵히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
현재 우리금융과 BNK금융의 회장은 이 출신간 갈등에서 자유로운 인물들이다. 그래서 회장 선출 절차가 과거와 같이 혼탁해지고 회장을 계파의 지원을 받은 인사에게 다시 내줄 것인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산은, 수은에 내부 출신 CEO가 등장한 것 못지 않은 새로운 CEO 선출의 선례를 쌓는 의미가 있다. 이 선례들이 쌓여야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지배구조가 완성된다. 관치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서도 내부 갈등은 없어야 한다. 내부에서 흔들리는 지배구조는 필연적으로 외부의 개입을 부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