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귀한 몸 '퇴직 은행원' ③ iM뱅크 PRM 1기 윤기산 지점장

지난 27일 iM뱅크 수도권PRM센터가 자리한 서울 중구 사무실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전화벨 소리도, 키보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들 나가서 영업 중이에요." 은행 관계자의 말처럼 이곳은 현장 영업에 나선 퇴직 은행원들의 거점이다.
사무실에서 만난 윤기산 기업금융지점장(65)은 단번에 눈에 띄었다. 머리는 하얗게 셌지만 걸음과 말투는 현직 지점장처럼 힘이 있었다. 그는 iM뱅크 수도권PRM 서울1센터에서 지점장들을 이끄는 '회장' 역할을 맡고 있다. 1980년 조흥은행에 입행해 2016년 하나은행 지점장으로 퇴직하며 36년간 은행에 몸담았던 그는 2019년 PRM 1기로 다시 현장에 돌아왔다.
윤 지점장은 "55세에 퇴직하고 나니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며 "골프도 쳐보고 친구도 만나봤지만 '이렇게 사는 게 맞나' 하며 마음 한 구석이 멍했다"고 했다. 실제로 은행권에서는 퇴직 이후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재취업을 하더라도 연봉 2000만~3000만원 안팎의 은행 보조 업무가 대부분이다. 윤 지점장도 가구회사로 재취업했다가 이내 그만두고 쉬기로 했다.
그때 은행 후배에게 iM뱅크가 퇴직한 은행 지점장 출신들을 다시 채용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서울에서 기업을 상대로 대출 영업을 하는 역할이었다. 출퇴근 시간은 자유롭고 성과에 따라 계약이 연장된다. 신규 채용 인원의 약 30%는 1년 내 재계약이 안 될 정도로 성과 압박이 세지만 지원자는 많다. 지난해 10명 채용 자리에 200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윤 지점장은 "영업이라면 너무 힘들다"고도 생각했지만, 은행원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고 했다. 과거 영업지점장 시절은 직원이나 점포 관리를 책임져야 했지만 이젠 영업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젊을 때처럼 돈이 급하지 않으니 일에 더 집중하게 됐다. 윤 지점장은 "후반전은 생계형이 아니라서 오히려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시기"라고 했다.

퇴직 이후 다시 법인카드와 명함을 받았을 때 환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한 PRM 지점장은 첫 회식 때 "퇴직 후 다시 출근하게 되자 아내가 와이셔츠를 다려주면서 눈물을 흘렸다. '집에만 있던 남편이 다시 지점장 명함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고 밝혀 박수가 터져나왔다.
성과도 뒤따르고 있다. 윤 지점장이 속한 서울1센터는 지난해 성과평가에서 전국 모든 영업점을 제치고 대상을 받았다. 퇴직 은행원 중심 조직이 전통적인 영업 채널을 넘어선 첫 사례다. 특히 iM뱅크는 영업 기반이 대구·경북 지역에 집중돼 있어 수도권에서 기존 점포와 고객이 겹칠 가능성이 낮다. 이 덕분에 내부 경쟁 부담 없이 고객을 발굴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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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M 제도가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C레벨의 결단이 있었다. 윤 지점장은 "하나은행 부행장과 하나생명 사장을 지낸 김태오 DGB금융 회장(대구은행장 겸임)이 PRM을 은행원의 인생 후반전 이모작의 성공모델로 만들어 보자며 적극 밀어줬다"고 밝혔다.

5대 은행 지점장 출신들이 모여 각자의 강점과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것도 PRM 조직이 경쟁력 있는 이유다. 김기만 iM뱅크 수도권그룹 부행장은 "한 PRM은 접촉이 어려운 기업 CFO를 만나기 위해 해당 회사 주식을 매수한 뒤 주주총회에 참석해 직접 만나 수십억원대 대출을 성사시킨 사례도 있다"며 "은행 입장에서도 8년간 PRM 지점장들을 통해서 수도권 영업 전략이나 네트워크를 많이 학습했다"고 말했다.
PRM 제도는 아직 실험 단계지만, 고령화 시대 새로운 일자리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성과만 낸다면 70세 넘어도 채용을 보장하며, 성과급으로 최대 3억원을 받은 사례도 있다. 성과급 1억원 이상을 받는 지점장도 전체 91명 중 5명가량이다.
김 부행장은 "8년차에 접어들면서 단순히 계약을 연장하는 구조를 넘어 센터 자체가 하나의 생활 공동체가 됐다"며 "성과가 부진한 구성원을 서로 격려하고 끌어주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센터 실적이 좋아야 센터장도 연장되는 구조다 보니 구성원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성과를 만들어가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