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대표에 한명숙 당선
민주통합당의 새 대표로 한명숙이 선출되며, 여성 최초로 당권을 잡는 등 정치사에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주요 인물들의 프로필과 전당대회 현장, 당의 혁신과 향후 과제까지 다양한 소식을 전합니다.
민주통합당의 새 대표로 한명숙이 선출되며, 여성 최초로 당권을 잡는 등 정치사에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주요 인물들의 프로필과 전당대회 현장, 당의 혁신과 향후 과제까지 다양한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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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진동영 기자 = 민주통합당 첫 대표로 당선된 한명숙 대표는 15일 총선 후보공천 개혁과 관련,"전략공천을 최소화하고 완전 국민경선으로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당대표로 선출된 후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승리하는 구도를 만들기 위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겠다"고 말했다. 한 대표의 1위 당선을 두고 '친노(친노무현)의 부활'이라는 평가가 나오는데 대해서는 "친노·반(反)노·비(非)노, 이런 구도는 언론이 만든 분열적인 레토릭(수사학)"이라며 "민주통합당의 모든 사람들은 친노다. 한명숙의 장기인 화합과 통합, 갈등조정을 발휘해 화합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최근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돈봉투 전대' 사건과 관련해서는 "사실 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이 민주당을 수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당대표 경선과정에서 민주당도 돈봉투 파문이 일었는데. ▶민주통합당의 돈봉투 사건
(서울=뉴스1) 진성훈 고유선 진동영 기자 = 민주통합당 새 대표로 한명숙 전 총리가 선출됐다. 15일 경기 고양시 일산구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대회(전당대회)에서 한명숙 후보는 시민·당원 투표(70%)와 대의원 투표(30%)를 합산한 결과 총 득표율 24.5%를 기록해 1위를 차지했다. 문성근 후보는 16.68%로 2위, 박영선 후보는 15.74%로 3위를 차지했다. 이어 박지원 후보(11.97%), 이인영 후보(9.99%), 김부겸 후보(8.09%) 순으로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이학영 이강래 박용진 후보는 고배를 마셨다. 이로써 한 대표는 평민당을 뿌리로 하는 민주당 계열 정당 역사상 첫 여성 대표로 기록됐다. 한나라당으로 범위를 넓힐 경우 여야 거대 정당 대표 가운데 처음으로 경선을 통해 여성이 당 대표에 오르게 됐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004년 경선이 아닌 추대 형식으로 대표직을 맡았었다. 이와 함께 한 대표의 당선으로 정치권은
(서울=뉴스1) 진동영 기자 = 민주통합당 첫 당대표로 선출된 한명숙 대표는 15일 수락 연설을 통해 "민주통합당의 이름으로, 이번 경선에 참가했던 80만 시민의 이름으로 국민을 무시하는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는 승리의 대장정을 이제 선언한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을 과거에 묻고 대한민국 새 미래를 여러분과 함께 창조하겠다. 혼신의 힘을 다해 새 역사를 써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수락연설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민주통합당 당원과 대의원 여러분. 부족한 저를 당대표로 뽑아주신 민주통합당 당원과 대의원 동지 여러분과 80만 시민선거인단 여러분께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역사적인 국민 경선을 거쳐 최고위원에 당선되신 민주통합당의 자랑스러운 지도자 5분, 한명숙·문성근·박영선·박지원·이인영·김부겸 최고위원께 진심으로 축하인사를 드립니다. 애석하게 경선을 쭈욱 같이 했던, 최고위원 경선에 함께 하신 분들이 참여 못하게 되신데 깊은 위
(서울=뉴스1) 진성훈 고유선 기자 = 민주통합당 새 대표로 한명숙 전 총리가 선출됐다. 15일 경기 고양시 일산구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대회(전당대회)에서 한명숙 후보는 시민·당원 투표(70%)와 대의원 투표(30%)를 합산한 결과 총 득표율 24.5%를 기록해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문성근 후보가 2위, 박영선 후보가 3위를 기록했다. 이인영 박지원 김부겸 후보도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이학영 이강래 박용진 후보는 고배를 마셨다. 이로써 한 신임 대표는 평민당을 뿌리로 하는 민주당 계열 정당 역사상 첫 여성 대표로 기록됐다. 한나라당으로 범위를 넓힐 경우 여야 거대 정당 대표 가운데 처음으로 경선을 통해 여성이 당 대표에 오르게 됐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004년 경선이 아닌 추대 형식으로 대표직을 맡았다. 이와 함께 한 대표의 당선으로 정치권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야 모두 여성 대표가 이끌게 됐다. 1944년 평양 출생인 한 신임 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 출신으로 '화합·관리형' 정치인이다. 온화한 성품과 차분한 언변이 특징이지만 여성운동을 통해 축적된 내공도 만만치 않다는 평이다. 재야인사에서 시민단체, 입법부, 행정부를 두루 거치며 폭 넓은 경험을 쌓았다. 다양한 세력이 합쳐진 민주통합당에서 일찌감치 당대표로 낙점될 만큼 당내에서 고른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 1944년 평양에서 태어나 정신여고, 이화여대 불문학과를 졸업한 뒤 한신대 선교신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성신여대 등에서 교직생활을 하다 한국여성민우회장,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이사, 참여연대 공동대표 등을 지냈다. 소외계층 여성의 생존권과 인권을 위해 활동하다 결혼 6개월 만에 남편이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돼 13년 동안 옥바라지를 하고 자신도 1979년 '크리스천아카데미 사건'으로 2년간 감옥에서 고초를 겼었다.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로 16대 국회에 입문, 2001년 초대 여성부 장관과 환경부 장관
재야 운동권 출신으로 대표적인 민주통합당 내 3선 의원이다. 최근 안정적인 지역구를 버리고 한나라당 텃밭인 대구에서의 출마를 선언해 민주통합당의 대구·경북(TK)공략 선봉장으로 꼽힌다. 부드러운 인상과 언변이지만 민주화 운동으로 학교 제적과 구속이 반복되는 삶을 살아왔다. 1958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으며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77년 유신반대 시위로 구속됐고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학생운동을 주도하다 또 다시 구속돼 실형을 살았다. 이 과정에서 서울대 정치학과에서 2번이나 제적됐지만 1987년에 졸업장을 받았다. 1990년대 초반 민주당 부대변인과 당무기획실 부실장 등을 지내다 새정치국민회의 분당에 참여하지 않고 국민통합추진회의를 결성했다. 민주당과 신한국당이 합쳐진 한나라당 소속으로 2000년 경기 군포에 출마해 여의도에 입성했다. 이 후 국가보안법 폐지, 대북송금특검법 반대, 한총련 학생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동교동계를 대표하는 현역 정치인이다. 30대 초반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에서 가발 사업으로 성공해 뉴욕 한인회장과 미주지역 한인회 총연합회장 등을 지냈다. 1983년 미국으로 망명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첫 만남을 갖고 정치에 입문했으며, 2009년 8월 김 전 대통령이 사망할 때까지 김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1992년 14대 총선 때 민주당 전국구 의원으로 여의도에 입성했다. 이 때부터 4년간 당 대변인으로 활약했다. 1998년 국민의 정부 출범 후 청와대 대변인, 공보수석을 지냈다. 1999년 5월 문화관광부 장관에 임명되며 청와대를 나왔지만 2002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다시 청와대에 들어와 김 전 대통령을 임기 말까지 보필했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때 김 전 대통령을 수행해 방북,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기도 했다. 참여정부에서 대북송금 특검 때 현대그룹의 대북사업 협조 명목으로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한테서
방송사 간판 앵커 출신의 재선 의원. MBC 보도국 경제부장으로 있다 2004년 초 MBC 선배인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에게 발탁돼 당 대변인을 맡으며 정치에 입문했다. 같은 해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정봉주 전 의원과 함께 2007년 대선 때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BBK 사건 연루 의혹'을 주도적으로 제기하면서 '저격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이듬해 18대 총선 때는 김한길 전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서울 구로을에 출마, 재선에 성공했다. 17대 때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금산분리법을 통과시키고, 18대 때 법제사법위원에서 일반 지주회사의 금융회사 지분 소유를 허용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를 저지하는 등 재벌 개혁에 힘썼다. 인사청문회에서도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법사위에서 박지원 전 원내대표와 '찰떡 호흡'을 과시하며 천성관 검찰총장의 낙마를 이끌어냈다.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 특위 위원 자격으로 김 후보자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관계를 집
15일 민주통합당 첫 통합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이인영(48) 최고위원은 민주당내 '486(4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 그룹의 대표 주자다. 특히 지난해 말 작고한 고(故) 김근태 전 의원을 젊은 시절부터 지근거리에서 보필해 오며, 자타공인 김 전 의원의 정치적 후계자로 인정받고 있다. 학생운동-재야-민주당으로 이어진 행보는 물론, 도덕성과 진보를 앞세우는 우직한 원칙론자의 정치성향 역시 김 전 의원과 닮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964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이 최고위원은 고려대 총학생회장으로서 학생운동의 구심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초대 의장을 역임, 1987년 6월 항쟁을 주도했다. 대학졸업 후에도 진보·통일 운동에 투신한 그는 이듬해인 1988년 재야민족민주운동의 전국조직인 '전국민주민족연합(전민련)'에서 김 전 의원과 인연을 맺었다. 그의 권유로 2000년 새천년민주당의 '젊은 피' 수혈에 동참, 정치권에 입문해 당무위원과 청년위원장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15일 민주통합당 첫 통합전당대회에서 선출된 문성근(59) 최고위원은 대중에게는 영화배우로 더 친숙한 인물이다. 한두 가지 대표작을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연극·영화를 통해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로 평가받고 있다. 1985년 연극 '한씨연대기'로 데뷔한 이래 영화 '칠수와 만수(1986)', '그들도 우리처럼(1990)', 등의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1992년 청룡영화제에서는 "경마장 가는 길"로 남우주연을 수상했다. 아울러 7년여 동안 SBS '그것이 알고싶다'를 진행하면서 그의 날카롭고 조리 있는 식견 및 언변이 대중에게 알려지기도 했다. 반면 배우의 화려한 이면에 자리한 가족사는 그를 정치권으로 이끌었다. 그는 1953년 5월 28일 도쿄에서 재야운동가 고(故) 문익환 목사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문 목사의 가족으로서 재야인사들은 물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에서 비롯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정치권과도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
(서울=뉴스1) 진성훈 기자 = 한명숙 민주통합당 신임 대표는 역설적이게도, 이명박 정권이 키워낸 '철의 여인'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두 번의 장관직과 첫 여성 총리에 오르며 유력한 '여성 정치인'으로 성장했던 한 대표는 현 정부 들어 2년의 검찰 수사를 거치는 와중에 '온화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에서 '정권교체 선봉에 선 투사'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대학(이화여대 불문과) 시절 보들레르와 베를렌을 읊조리던 문학소녀에서 사회에 눈을 뜨고 현실 참여의 길로 들어섰던 것과 비견될 만한 인생 역정의 일대 전기가 현 정권에서 찾아온 것이다. 1944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부모와 함께 월남해 서울에서 자랐고 기독교학교인 정신여고를 나와 이화여대 불문과에 입학했다. 대학 3학년 때 서울대와 이화여대의 기독교학생연합 단체인 '경제복지회'에서 남편 박성준(성공회대 겸임교수)씨를 만나 새로운 삶의 가치에 눈을 떴다. 결혼 6개월 만인 1968년 남편이 이른바 '통혁당(통
15일 열린 민주통합당 당대표·최고위원 선출대회에서 한명숙 후보가 향후 2년간 당을 이끌 대표로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