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무슨일이?
과거 오늘, 우리 사회와 세계에서 일어난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 문화, 정치적 변화를 되짚어봅니다. 잊혀진 이야기부터 잘 알려진 순간까지, 오늘의 역사가 전하는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세요.
과거 오늘, 우리 사회와 세계에서 일어난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 문화, 정치적 변화를 되짚어봅니다. 잊혀진 이야기부터 잘 알려진 순간까지, 오늘의 역사가 전하는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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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클레오파트라'로 불리며 할리우드 황금기를 꽃피운 미국의 한 여배우가 5년 전 오늘(3월23일) 향년 79세 나이로 타계했다. 이름 앞에 항상 '세기의 미녀' '만인의 연인' 등의 수식어가 붙었던 이 배우는 '엘리자베스 테일러'다. 테일러는 미국 영화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1960~1970년대 이른바 할리우드의 황금시대 최고의 여배우로 미국 영화가 세계 영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던 시기에 맞춰 세기의 연인으로 전세계적 사랑을 받았다. 그는 1932년 영국 런던에서 미술품 거래상인 아버지와 연극배우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국에서 건너온 테일러의 부모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다시 로스앤젤레스(LA)로 향했다. 어머니의 끼를 물려받은 그는 10세에 '귀로'를 통해 데뷔, 12세 때인 1944년 MGM이 제작한 '녹원의 천사(National Velvet)'를 통해 일찌감치 유명세를 떨쳤다. 이어 '젊은이의 양지' '자이언트' '클레오파트라' 등 수많
프랑스 리옹에 위치한 한 공장에서 정장차림으로 남녀 노동자들이 무리를 지어 퇴근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대화를 나누며 공장 문을 나선다. 121년 전 오늘(3월22일) 세계 최초로 상영된 영화인 '리옹의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Sortie des Usines Lumière à Lyon)의 한 장면이다. 음악은 물론 대사도 없이 공장에서의 퇴근길을 찍은 영상은 46초간 계속된다. 이 영화를 선보인 사람은 프랑스의 발명가 형제인 오귀스트 뤼미에르와 루이 뤼미에르다. 이들은 필름 카메라이자 촬영기와 영사기가 함께 달린 '시네마토그래프'를 발명했다. 앞서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이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를 발명했지만 한 사람씩만 구멍을 통해 활동사진을 볼 수 있었다. 에디슨 영사기의 단점을 보완한 시네마토그래프는 재봉틀용 간헐장치를 이용해 가벼우면서 촬영과 영사 2가지 기능을 갖추며 대중들이 함께 활동사진을 볼 수 있는 최초의 영화 장비로 기
"나는 생명이 있는 한 실패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있고 건강한 한 나한테 시련은 있을지언정 실패는 없다."(정주영 현대그룹 전 명예회장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중) '그저 좀 부유한 노동자'이자 '민간 외교관'이자 '사회 사업가'이기도 했던 한 대기업 총수가 한 줌 흙으로 돌아갔다. 2001년 3월21일. 당시 서울 중앙병원은 "정주영 현대그룹 전 명예회장이 폐렴 합병증인 급성호흡부전증으로 3월21일 오후 10시경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의 사망 소식 이후 국내는 물론 주요 외신들은 "한국경제의 변혁을 이끈 인물이 타계했다"고 앞다퉈 보도했다. 정 전 회장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와 운명을 같이 했다. "옆도 뒤도 안보고 그저 죽자고 일을 했더니 쌀가게 주인이 됐고 또 정신없이 일만 했더니 건설회사도 만들게 됐고 그렇게 평생을 살다 보니까 오늘에 이르렀다"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1998년)는 그의 인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강원도 가난한 농부의 장남으로 태
1960년대들어 국내 전력 소비량은 크게 늘었다. 부족한 에너지자원 확보를 위해 떠오른 방법이 바로 '원자력발전'이었다. 정부는 1962년 '원자력발전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처음으로 원자력발전 추진계획을 수립했다. 45년 전 오늘(3월19일) 전 국민의 눈과 귀는 경상남도 양산군 장안면 고리(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고리)에 쏠렸다. 국내 최초의 상업용 원전인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고리 1호기) 기공식이 개최됐기 때문이다. 가압경수로인 고리 1호기는 설비용량 58만7000킬로와트(㎾) 용량으로 총 1560억7300만원이 투입된 당시 국내 최대 규모 사업이었다. 고리 1호기 사업은 미국 정부의 차관과 미 원전회사 웨스팅하우스의 기술을 지원받아 시행됐다. 7년 뒤인 1978년 고리 1호기가 가동되면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21번째, 동아시아에선 일본에 이어 두번째 원전 보유국이 됐다.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23기의 원전이 더 만들어지면서 지난해까지 35년간 국내 원전의 누적발전량
34년 전 오늘(3월18일) 오후 2시, 부산 대청동 미국 문화원 건물에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다. 고신대학생 문부식·김은숙·이미옥 등이 함께 미 문화원에 들어가 수위의 제지를 뿌리치고, 기름을 뿌린 뒤 불을 붙이고 달아난 것. 비슷한 시간, 국도극장과 유나백화점 앞에선 '미국과 일본은 더이상 한국을 속국으로 만들지 말고 이 땅에서 물러가라', '살인마 전두환 북침 준비 완료' 등의 내용이 적힌 '반미투쟁을 끊임없이 전개하자'는 제목의 유인물이 뿌려졌다. 강풍 탓에 미 문화원에 붙은 불은 쉽게 잡히지 않았고 약 2시간이나 타올랐다. 이 사건으로 미 문화원 도서관 내에서 책을 보던 동아대학생 한 명이 숨지고 3명이 화상으로 인한 중경상을 입었다. 대학생들이 미 문화원에 불을 낸 주된 이유는 미국이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진압을 묵인함으로써 사실상 전두환 군사정권을 지지한 것에 대한 반감때문이었다. 다수의 언론에선 다음날 사회면에 '불순분자들의 소행'이라고 대서특필했다. 전두환 정권
46년 전 오늘(3월 17일) 밤 11시쯤 서울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인근 도로에서 총성이 울렸다. 소리가 난 코티나 차량에는 당시 26세의 여인이 총상을 입고 피를 흘리고 있었고, 차를 몰던 그의 오빠는 허벅지 관통상을 입었다. 지나가는 택시기사의 도움으로 오빠는 목숨을 구했지만 여성은 끝내 사망한다. 총을 맞고 사망한 여인은 당시 고급 요정 '선운각' 출신의 정인숙(본명 정금지)였다. 선운각은 당시 삼청각, 대원각 등과 더불어 '밀실 정치'의 상징이었다. 정인숙은 이곳에서 접대부로 일했다. 당시 국내에서 총기살인이 드물었던 일이기도 했지만 수사과정 가운데 그녀의 가방에서 나온 '제3공화국' 실세 26명의 명함은 총기 사망사건을 '희대의 스캔들'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건 정황과 배후에 대한 온갖 소문이 번졌고, 부패 권력에 대한 불만도 더해져 정국을 뒤흔들었다. 사건은 서울지검 공안부에 맡겨졌고 검찰은 사건 1주일 뒤 운전사였던 오빠 정종욱씨를 범인으로 지목한 뒤 구속했다. 살
1952년 연임에 성공한 이승만 대통령은 집권 연장을 위해 2년 뒤 '대통령 3선 금지조항'에 대한 개헌안을 상정한다. 하지만 개헌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자 '사사오입' 논리에 따라 부결을 번복하고 결국 1956년 3선을 달성한다. 이같은 행태에 민심이 민주당으로 향하자 위기감을 느낀 자유당은 1960년 치러질 정·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조직적인 부정선거를 계획한다. 당시 정·부통령 후보로 자유당은 이승만과 이기붕, 민주당에선 조병옥과 장면이 각각 출마했는데, 조병옥 후보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단독출마한 이 대통령의 4선이 확실시됐다. 이 가운데 자유당은 대통령의 권력을 뒷받침할 부통령에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사전에 계획했던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제4대 대통령 선거와 제5대 부통령 선거가 치러진 1960년 오늘(3월15일) 자유당은 △사전투표 △유권자 기권 강요 △기권자 대리투표 △야당측 선거참관인 축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발표 △정치깡패와 완장부대로 유권자 위
1991년 오늘(3월 14일) 밤 대구시민들은 갑자기 수돗물에서 역하게 올라오는 악취 탓에 세수와 빨래를 할 수 없었다. 민원이 빗발치자 정부는 부랴부랴 조사에 나섰다. 사고의 원인은 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전자(현 (주)두산 전자BG)구미공장 페놀 원액 저장탱크에서 생산라인으로 이어지던 파이프가 파열돼 30톤의 페놀원액이 약 8시간동안 옥계천을 거쳐 대구시 상수원인 다사취수장으로 유입된 것으로 밝혀졌다. 페놀은 전자기판을 만드는 수지의 원료로, 농약 제조에도 쓰이는 독성 물질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악취 신고를 받은 취수장측에서 원인을 규명하지 않은 채 페놀 소독에 사용해선 안 되는 염소를 다량투입하며 사태를 악화시킨 것. 페놀에 오염된 폐수는 낙동강을 타고 밀양, 함안을 거쳐 부산, 마산으로 흐르며 경상도 전역이 '페놀 공포'에 빠졌다. 이 사고로 인해 두산은 '마시는 맥주로 돈 번 회사가 먹는 물을 망친다'는 전국민적 비난을 받게 된다. 두산제품 불매운동이 전개되기도 했다.
2011년 3월11일 오후 2시46분 일본 동쪽 해안의 평온한 해안 어촌마을. 평화롭게 자전거를 타고 마을 골목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바다쪽을 바라보고 갑자기 발걸음을 서둘렀다. 거대한 파도가 마을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이들은 바다 반대쪽으로 진력을 다해 뛰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바다는 순식간에 마을을 먹어 치웠다. 바다에 휩쓸린 것은 주차됐던 차들 뿐이 아니었다. 마을에 오랫동안 자리잡았던 집들도 뿌리채 뽑혀 밀려나왔다. 일본 동쪽 해안 지방인 미야기현 센다이에서 동쪽으로 179㎞ 떨어진 지점에서 리히터 규모 9에 해당하는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다.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 중 가장 큰 규모였다. 전 세계에서 최근 50년동안 발생한 지진 중 가장 강력했다. ‘동일본대지진’이라고 불리는 일본의 역대급 재앙으로 일본 동부는 물론 전역이 몸살을 앓았다. 이 지진은 도호쿠 지방과 간토지방의 전역에서 홋카이도, 주에스 지방, 나가노 현 등지까지 순식간에 퍼져갔다. 약 450㎞ 떨어진
"내가 일찍 모든 것을 희생하고 우리 민족을 위해 작정한지 오래였고 가정의 행복을 희생한지 오래였을뿐더러… 오직 혁명을 위해 목숨까지 희생할 것" 1932년, 윤봉길의 훙커우공원 폭탄 의거로 인해 일본경찰에 체포된 도산 안창호가 그 해 1월 16일자로 부인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그는 그 이후로도 한 차례 더 옥고를 치르다 얻은 간경화 증세로 해방을 보지 못하고 78년 전 오늘(3월 10일) 서거한다. 그는 1878년 11월 9일 평안남도 대동강 하류의 작은 섬 봉상도(도롱섬)에서 가난한 선비의 아들로 태어났다. 안창호가 16살 되던 해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운동과 청일전쟁 등을 지켜보면서 '우리 민족의 불행은 우리에게 힘이 없기 때문'이라 여기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칠 것을 결심한다. 같은 해 청일전쟁을 피해 경성로 이사한 것이 그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된다. 그는 경성 정동제일교회를 지나가다 우연히 '배우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 먹고 자고 마음대로 공부할 수
미국 이스트코스트(동부) 힙합의 창시자로 추앙받던 한 뮤지션이 자신의 뮤직비디오 촬영과 시상식 참석을 위해 로스앤젤레스(LA)를 찾았다. 19년 전 오늘(3월 9일) 새벽 12시 45분. 파티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던 길에 그가 탑승한 차량은 신호등 앞에 멈췄고 옆에 선 검은색 차량의 창문이 내려진다. 차량에 탄 남성은 그에게 수많은 총알을 발사했고 이 가운데 4발이 가슴에 명중했다. 친구들은 그를 병원으로 급하게 후송했지만 결국 사망한다. 영화 같은 죽음을 맞이한 이 뮤지션은 바로 노토리어스 비아이지(The Notorious B.I.G·비기)다. 1994년 데뷔앨범인 'Ready To Die'를 히트시키며 동부 힙합 스타일을 창조한 비기는 그야말로 '동부 힙합의 왕'이었다. 어둡고 묵직하고 느린 비트와 다음절 라임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그의 음악 스타일은 그를 당대 최고 힙합 뮤지션의 자리에 올려놨다. 모피 코트, 골드 주얼리, 왕관 등을 걸치며 그가 보여준 거칠고 럭셔리한 패
30년 전 오늘(3월8일) 대전·충청을 연고로 하는 '빙그레 이글스'가 창단했다. OB베어스가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당시 결정됐었던 연고지 이전(대전·충청→서울)으로 생긴 빈자리를 채운 것. 창단 사령탑은 배성서 전 한양대 감독이 맡았다. 모기업은 현 한화그룹의 모태인 한국화약(한화)이었다. 소비자들에게 그룹 이미지를 부각해 자사 제품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수단으로 방산업체인 한화보다는 소비재를 다루는 빙그레 이름을 썼다. 구단 마스코트는 일반 팬을 대상으로 상품 700만원을 내걸고 공모한 결과 독수리를 뜻하는 이글스로 정해졌다. 빙그레 이글스의 유니폼은 주황색 줄무늬가 상징이었다. 당시 홈 경기용 유니폼은 흰색 바탕에 주황색 줄무늬, 원정용은 주황색 바탕에 흰 줄무늬를 사용했다. 가슴 정중앙엔 빙그레라는 글자가 크게 박혀있었다. 창단 첫해였던 1986년 빙그레 이글스는 전기리그에서 최하위를, 후기에선 6위를 각각 기록했다. 처참했던 첫해와는 달리 1988년, 1992년엔 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