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생일상과 '아버지의 집'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도 한참동안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더랬지요. 특히 아버지한테 말입니다. 생전에 든든하게 뒤를 봐주시기를 했나. 그렇다고 자식들 곁에 오래 머물러주시길 했나. 자갈논 몇 마지기라도 물려주시길 했나. 많지는 않았지만, 얼마간의 빚까지 물려주고 떠나신, 그래서 내 젊은 날은 아버지에 대한 여전한 반발과 오기의 세월이기도 했던 거지요. 그런데 내 애들이 크고, 아버지가 나를 낳은 마흔 나이를 넘기고서야 아,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겁니다.
아버지, 아니 우리 부모님은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유산으로 물려주신 것이었지요. 무엇보다 내게 어디에서도 남한테 의지하지 않고, 기 펴고 살 수 있는 독립심과 당당함을 남겨주셨지요, 나쁘지 않은 머리를 주셨지요, 멀쩡한 사지를 주셨지요, 잘 생기지는 못해도 남한테 불쾌감을 주는 정도는 아닌 이 얼굴을 주셨지요. 그리고 단 한 번도 ‘부당한 방법을 써서라도 남을 이겨야한다’고 윽박지르시지 않으셨던 겁니다. 전교조 포기각서를 쓰지 않고 끝까지 버틸 때도 단 한마디도 만류하거나 나무라지 않으셨고요.
무엇보다 제 어머니는 생명에 대한, 사람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무욕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늘 ‘남한테 못할 짓 하지 마라’ ‘잘했다. 그 정도면 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된 거지요. 아니 과분한 거지요. 그렇지 않은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