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것이 빨라진 시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빨리, 더 빨리'를 재촉한다. 인공지능은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답을 내놓는다. 법률 서비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회생·파산 변호사를 해오며 한 가지 역설을 느낀다. 세상이 빨라질수록 전문가의 제대로 된 판단이 더욱 중요해진다는 점이다.
도산 변호사의 인생을 시작한 건 2007년 존경하는 선배 변호사의 사무실에서였다. 한 할머니의 개인파산과 면책 신청 의뢰를 시작으로 20년 가까이 도산 업무를 하게 됐다. 법을 찾아보고 서식을 익히며 생애 첫 파산신청서를 썼다.
그 시절 법원의 풍경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신청서와 증빙자료를 몇 부씩 복사해 두꺼운 기록을 만들었다. 보정명령이 오면 서류를 다시 챙겨 법원을 찾았다. 이제는 전자소송의 시대다. 사무실에서 신청서를 내고 법원의 명령과 결정을 화면으로 확인한다.
신속함은 언제나 중요 원칙이다. 오래 전 스무살 남짓 여성의 개인파산·면책 사건을 맡았던 때가 있다. 채무가 면책됐다는 정식 결정문이 송달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의뢰인이 세상을 떠났다.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하는 생각이 여전히 마음에 남아있다.
그러나 '더 빨리'를 재촉할수록 판단은 오히려 더 정확해야 한다. 도산절차는 신청서와 보정서를 몇 번 제출하면 끝나는 일이 아니다. 어떤 절차를 선택할 것인지, 기업이라면 사업을 계속하는 게 이해관계인 모두에게 이로운지 등을 판단해야 한다.
그렇기에 전문 법률 서비스란 단순 서류 작성에 그치지 않는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위험을 찾고 어려운 선택 앞에서 어느 길이 더 나을지 판단하는 일이다.
수많은 사건을 마주해도 사람의 인생과 기업의 사정은 늘 새롭고 복잡하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지난달 발간한 2026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5년 회생합의사건은 1321건, 법인파산은 2282건이 접수됐다. 개인회생은 14만9147건에 이른다. 숫자로 적으면 몇 줄이면 끝난다. 그러나 숫자들 뒤엔 한 사람과 한 가정이, 기업의 직원과 거래처가 있다. 같은 법조문 아래에서도 사람마다, 기업마다 사정은 모두 다르다.
진정한 전문성은 모든 답을 미리 아는 데 있지 않다. 익숙함에 젖어 성급히 단정하지 않고 내 판단이 타인의 삶과 기업의 운명에 미치는 무게를 기억하는 태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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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빚을 질 수 있다. 오늘의 채권자가 내일의 채무자가 될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예상치 못한 사고와 실패가 찾아올 수도 있다. 타인의 어려움을 헤아리는 마음은 법 이전에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이다.
인공지능은 앞으로 법률 정보를 찾고 문서를 만드는 일을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해낼 것이다. 법률서비스도 더욱 편리해질 것이다.
그럴수록 인간 전문가에게 남는 역할은 선명해진다. 사정을 끝까지 듣는 일, 숫자와 서류 뒤에 있는 사람을 보는 일, 그리고 아직 시작할 기회가 남은 사람에게 그 사실을 늦지 않게 알려주는 일이다. 빠르되 성급하지 않고 전문적이되 사람을 잊지 않는 것. 약 20년 동안 회생과 파산의 현장에서 일하며 몸소 경험하고 생각한 법률서비스의 참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