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가구에 '예술' 입혀 명품으로··· 철공소 골목 두 청년의 도전

헌 가구에 '예술' 입혀 명품으로··· 철공소 골목 두 청년의 도전

최우영 기자
2011.09.22 05:30

[스타트업 탐방] <8> 아트퍼니쳐 제작 '패브리커'

지난 9일 찾은 패브리커(www.fabrikr.com) 사무실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소가 즐비한 뒷골목의 허름한 건물 2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망가진 의자와 천 조각들이 널려있었고 반대쪽에는 유리 세공을 위한 가마와 밤샘 작업할 때 이용하는 듯한 접이식 침대가 놓여있었다.

패브리커는 테이블과 의자 등 폐가구나 디자인이 안된 일반 가구 등을 수작업을 통해 예술가구로 만드는 업체. 길을 가다가 쓸 만하다 싶으면 폐가구를 실어와 예술을 입힌다. 형형색색의 천을 가구에 덧대고, 그 천에다 섬유 코팅제로 쓰이는 ‘에폭시’를 바른다. 에폭시가 마르면 다시 천을 덧대서 다시 에폭시를 바른다.

이런 작업을 수 차례 반복하면 천의 질감도 살리면서 실용성도 있는 단단한 재질의 가구를 만들 수 있다. 테이블이나 의자 하나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두세 달. 철공소 뒷골목에서 이런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가구는 1개당 수백만원씩에 팔린다. 김성조 공동대표(28)는 "원래 강북구 미아동 가정집 반지하 작업실을 사용했는데 밤마다 소음 때문에 주민들의 원성이 많았다"며 "하지만 이곳은 우리보다 더 시끄러운 데가 많아서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패브리커 사무실 1층 역시 철공소였다.

2인 기업인 패브리커의 김 대표와 또 다른 공동대표 김동규씨(29)는 성균관대 ‘서피스(surface) 디자인’과 선후배 사이다. 서피스디자인과는 섬유원단을 통한 의류 및 인테리어 디자인을 배우는 곳. 김성조 대표는 "디자이너들이 회사에 종속되지 않고서도 자신들이 생각하는 작품을 만들어 사업에 성공할 수 있다는 사례를 만들고 싶어 회사를 창업했다"고 말했다.

올들어 지금까지 패브리커의 매출은 6000만원정도. 갓 창업한 초기기업 치고는 괜찮은 편이지만 작년 10월 회사를 창업하기 위해 준비할 때만 해도 이들은 빈털터리였다. 김동규 대표는 "둘 다 부유한 편이 아니라서 창업자금을 마련하기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고 말했다. 발레파킹 아르바이트에서부터 치킨배달, 음식점 서빙까지 작업하는 시간 빼고는 창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이렇게 해서 만든 시제품을 작년 말 가구 전시회에 출품하면서 한두 명씩 고객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들을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주문도 많아졌다. 김성조 대표는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주문을 하면 가구가 놓일 위치와 고객 취향을 고려해 가구를 새로 제작한다"며 "고객마다 크기와 모양이 다 다르기 때문에 가격은 고정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예술성과 실용성을 인정 받으면서 아예 전체 공간을 꾸며달라는 요청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 신세계측으로부터 매장을 열기 전에 실제 매장과 똑같이 만들어 놓고 임원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쇼룸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았죠. 이 기회를 놓치면 끝장이다 싶어서 밤새워 작업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돼 업계에 소문이 나면서 동대문 두타와 경복궁내 콘서트장인 오르골하우스 등의 내부 공간연출을 맡게 됐죠." 김동규 대표는 "올해 매출가운데 공간연출을 통한 매출이 전체의 3분의2"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제품 하나 만들고, 공간 하나 연출하는 데 두세 달씩 걸린다"며 "어떻게 보면 우리의 사업이 비효율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올 들어 벌어들인 매출도 새로운 디자인의 가구를 만들었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부숴버리는 신제품 실험에 거의 다 쓰고 있다. 아직 정기적인 월급을 받아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붕어빵 찍듯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 당장 매출을 올리기보다 몇 달에 거쳐 천을 대고 에폭시를 바르듯 천천히 신제품 개발하며 회사를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멘토의 코멘트] 고봉석 어거스트브랜드 대표

김동규 대표(왼쪽)와 김성조 대표는 지난해 창업을 준비할 때만 해도 변변한 사무실 한 칸이 없어 카페를 전전하며 사업계획을 세웠다. 치킨배달, 음식점 서빙 등 창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안 해본 게 없다. 그러길 1년여. 아직은 미미하지만 6000만원의 매출을 올렸고 주문도 밀려들고 있다. 김성조 대표가 앉은 의자가 바로 이들이 만든 가구다. 임성균 기자 tjdrbs23@
김동규 대표(왼쪽)와 김성조 대표는 지난해 창업을 준비할 때만 해도 변변한 사무실 한 칸이 없어 카페를 전전하며 사업계획을 세웠다. 치킨배달, 음식점 서빙 등 창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안 해본 게 없다. 그러길 1년여. 아직은 미미하지만 6000만원의 매출을 올렸고 주문도 밀려들고 있다. 김성조 대표가 앉은 의자가 바로 이들이 만든 가구다. 임성균 기자 tjdrbs23@

최근 명품 브랜드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높다. 대기업까지 나서 명품 브랜드를 수입하고 있다. 어떤 제품이 명품이 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되는 명성과 제품의 완성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제품에 녹아 있는 스토리텔링이다.

디자인을 전공한 패브리커의 김성조 대표와 김동규 대표는 기업가인 동시에 작가이다. 이들은 남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자신들만의 스토리를 제품에 녹여내고 있다. 이들의 제품을 구매하고 있는 소비자들도 각각의 제품마다 담겨있는 스토리에 반해 구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패브리커는 비록 철공소 뒷골목에서 작업을 하고 있지만, 진정한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최우영 기자

미래산업부 유니콘팩토리에서 벤처스타트업 생태계를 취재합니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