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삼성물산 합병, 아리스토텔레스의 선택은?

[오동희의 思見]삼성물산 합병, 아리스토텔레스의 선택은?

오동희 기자
2015.07.16 17:58
[편집자주]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삼성물산과 엘리엇매니지먼트의 합병 관련 표 대결을 보면서 주주자본주의에서 창업가 자본과 투기자본의 가치 부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진다.

1938년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에서 출발해 77년을 이어온 삼성가의 주식과 지난 2월부터 삼성물산의 합병여부에 관심을 갖게 된 6개월 주주 엘리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다.

표 대결의 중심이 되는 주식의 출발은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됐다. 자영업 중심에서 대규모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해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기업가들은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외부로부터의 자본을 끌어들여 사업을 확장했다.

그 과정에서 기업에 투자한 자금이 묶이는 것을 막고, 주식의 유동화를 위해 주식을 거래할 수 있게 하는 증시가 생겼고, 오늘에 이르렀다. 은행 예금보다 더 높은 수익을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는 측면에서 자본이 증시로 몰리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당초 자본은 기업에 투자하고, 기업의 건전한 발전을 통한 수익창출로 인해 금리보다 더 나은 배당을 목적으로 했던 것이, 주식거래 그 자체가 목적이 돼 등락에 따른 수익을 목적으로 한 투기적 성향으로 바뀌어갔다.

배당 및 자산가치(주식)의 증식을 기대하는 장기적 투자자와 시세의 갭을 이용한 초단타 투자자를 비롯한 단기수익을 노리는 투기적 자본으로 '투자자'의 성격도 갈렸다.

자본시장에선 '돈은 누구의 돈이든 다 똑 같다'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주주자본주의의 근간인 상법에 따르면 주주의 회사에 대한 권리와 의무는 주식을 단위로 정해지고, 각 주식의 금액은 균일해야 하며(329조 2항), 이에 따라 각 주식은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고 돼 있다.

그래서 창업가문의 주식 1주나 오늘 하루 10분을 보유한 초단타 투자자의 1주의 가치는 같다는 게 일반적 정서다.

이 시점에 고대 성현의 철학적 고민을 되짚어보자. 그리스 시대에도 돈에 대한 논란이 많았던 모양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아들인 니코마코스가 정리한 '니코마코스의 윤리학'에서 돈에 대해 설명한 대목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행위는 궁극적으로 좋은 것을 지향하는데, 좋은 것 중에는 쾌락, 명예, 앎, 돈 등이 있으나, 좋은 것의 최고점은 '행복'이라고 말한 대목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돈이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돈은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돈을 수단으로 해 추구할 수 있는 '좋은 것'이 많아지다보니 돈이 범용적 가치를 더 가지게 돼 다른 것보다 더 좋아 보이지만 이것이 궁극의 행복을 가져다줄 수는 없다는 것. 돈이 더 의미 있는 좋은 것으로 환치될 때 의미를 가지는 존재라는 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다.

기업가의 투자와 투기자본의 투자는 똑같은 돈으로 똑같이 이윤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같다고 볼 수 있지만 그 목적성에서는 차이가 있다. 이윤창출을 통한 사회적 기여가 기업가의 목적이라면, 투기자본의 목적은 기업의 미래성장과 영속성과는 상관없는 투자 수익률에 그 목적성이 한정돼 있다.

칼은 요리사의 손에 쥐어지면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하지만 전장에서는 위험의 도구로 바뀔 수 있다. 주식 또한 마찬가지다. 기업의 가치 제고와 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한 표는 가치 있는 일이지만, 단순히 시세차익만을 목적으로 뛰어드는 투기세력에 힘을 몰아주는 것은 주식의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기는 힘들 듯하다. 소액주주들의 한표한표가 소중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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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 기자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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