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윈난성 샹그릴라의 푸다춰국가삼림공원에서는 함부로 숲에 들어가면 안 된다. 해발 3800m의 원시삼림에 잘못 들어갔다가 길을 잃으면, 다시는 숲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어서다. '신들의 거처'로 불리는 이 원시삼림 규모는 그만큼 상상을 초월한다. 좌표는 커녕 방향조차 모르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는 가로 지르기도 힘들고, 계속 제 자리만 맴돌 수 있다.
중국 영화 '고해발지련(Romancing in Thin Air)'은 이 샹그릴라 원시삼림에서 길을 잃은 사람을 한 축으로 삼았다. 영화 속 여주인공은 원시삼림에 들어가 길을 잃고 빠져나오지 못한 남편을 8년간이나 기다린다.
영화는 애잔한 사랑을 그렸지만 영화를 본 후 오랫동안 원시삼림에서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도는 한 남자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숲에서 빠져나가려고 몇 날 며칠 온 사방으로 걸으며 안간힘을 쓰는 남자. 하지만 끝내 숲에 갇힌 남자.
내가 만약 저 남자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하는 생각을 할 때면 먹먹함이 밀려왔다. 반복되는 좌절과 희망. 다시 엄습하는 깊은 좌절. 내일쯤이면 숲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며 의지를 다지지만 이튿날 또다시 숲에서 밤을 지새야 하는 남자.
세월호에 갇힌 아이들이 찍은 동영상을 보는 순간 이 숲에 갇힌 남자가 오버랩 됐다. 4월16일 오전 8시52분28초. "아, 기울어졌어"로 시작하는 아이들의 동영상을 보는 내내 아이들이 절대 위기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느꼈을 공포가 전해졌다. '절대 이동하지 말라'는 그 대책 없는 안내방송이 1시간20분여를 꼼짝없이 배에 갇힌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내린 유일한 행동 지침이었다. 아이들은 그 급박한 상황을 스스로 판단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선실과 복도에서 어른들이 빨리 다른 지침을 내려주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9시6분16초. 14초간 계속된 아이들의 바로 이 대화에서 또다시 가슴이 미어졌다. "진짜 그런데 갑판에 있던 애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니까. 그리고 아까 전에 갑판에서 갑판에는 창문도 없잖아. 그러니까 더 위험하다는 거지."
이제 겨우 17년을 살다간 아이들에게 손 한번 내밀지 않은 어른들이 또 한 번 사죄해야 할 대목이다. 외국의 대형 크루즈라면 재난 상황이 벌어지면 배의 비상 알람이 울리고, 그 순간 승객들은 바로 갑판 위 일명 '어셈블리 포인트(Assembly point)'로 모인다. 선실의 카드 키 같은 곳에 승객들이 찾아가야 할 어셈블리 포인트를 A, B, C 식으로 적지만 승객들은 전원 자신들이 모여야 할 어셈블리 포인트를 잘 알고 있다. 출항 직전 강제로 예행연습을 하기 때문이다.
재난 상황을 가정하므로 엘리베이터를 타서도 안되고,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무조건 걸어서 갑판까지 가야 한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까지 누구도 열외 없이 연습은 100% 강제로 이뤄진다. 선박 곳곳에는 승무원들이 배치돼 승객들이 갑판으로 가는 안전한 코스를 안내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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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월호는 어땠는가? 세월호를 탔을 때 아이들은 그런 예행연습은 커녕 어떤 선원으로부터도 위급한 상황에 어디로 모여야 한다는 주의를 듣지 못했다. 이 재난 상황은 아이들 스스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엄청났는데도 선원들은 그 시각에 제 목숨 살기에만 급급했다. 도무지 어찌된 영문인지도 알지 못한 채 아이들은 바다에 갇혀야 했다.
이제라도 우리의 모든 아이들에게 육해공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재난 상황을 가정해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안전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 유괴나 성추행, 인질극처럼 몹쓸 어른들의 죄악으로부터도 가장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그 소중한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부끄러운 우리 어른들이 그 아이들의 친구들에게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