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思見]기업인이 있어야 할 곳은 국회가 아니다

[오동희의思見]기업인이 있어야 할 곳은 국회가 아니다

오동희 기자
2014.10.15 06:30
[편집자주]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누군가의 에세이집 제목처럼 세상의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자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지난 12일 현대중공업 울산본사 회의실에 모인 최길선 회장과 권오갑 사장을 비롯한 임원은 전원 사직서를 제출했다.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까지 포함해 260여명의 임원 전원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위기에 빠진 세계 1위 현대중공업을 살리자는 결의를 다졌다.

이는 17년 전 어느 날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 모인 20여 명의 삼성전자 임원들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1997년 6월 호텔신라 회의실에는 윤종용 당시 삼성전자 사장(CEO, 전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도석 전무(CFO, 전 삼성카드 부회장) 등 삼성전자의 핵심 임원 20여명이 모였다.

삼성전자는 바로 직전해인 1996년 능률협회로부터 국내 최우수 기업으로 선정되는 등 성가를 높이던 시기였다. 당시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확장일로에 있던 삼성전자는 그해 1월부터 심상찮은 조짐을 감지하고 전세계 지법인의 재무현황을 점검하던 중 심각성을 직감했다.

"이러다가 회사가 망하겠구나?"

6개월간의 내부진단 끝에 긴급회의가 소집됐다. 최도석 전무는 CEO를 대신해 무거운 입을 열었다. "인사팀장은 내일 아침에 여기 있는 모두에게 사직서를 받으십시오. 지금 회사를 살리는 조치에 들어가 성공하지 못하면 모두 그만 둬야 합니다."

다음날 인사팀장은 가장 먼저 최 전무에게 사직서를 받으러 왔다. 당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세계화의 후폭풍으로 해외법인의 부실이 심화되면서 삼성전자는 자본잠식에 들어간 상태였다.

그리고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한 삼성전자는 국가부도 사태인 IMF를 6개월 앞서 준비하는 행운(?)을 맞았다. 6개월 먼저 준비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삼성전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게 당시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항상 생존이 최우선 과제였다. 기업에게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나, 한발만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기업이다."

그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직장을 떠날 때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남은 사람에게도 기쁨보다는 떠나보낸 이에 대한 미안함이 가장 큰 고통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 이야기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IMF 당시 삼성전자의 위기극복 뒷얘기다.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 기업은 한가하고, 항상 좋은 앞모습만 보이지만 그 이면은 피를 말리는 치열함이 존재하고,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된다.

하지만 겉만 보는 사람들은 '봄날'만을 기억하고, 이렇게 호통을 친다. "감히 국회가 부르는데 업무가 있다며 나오지 않는다고? 국회의 권위에 도전하고 모독해?"

17년 전인 1997년이나 지금이나 국정감사의 모습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당시의 보도들을 보면 '기업인 증인 채택 놓고, 갈등'이라는 제목은 여지없이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올해도 '정몽구 회장 나와, 이재용 부회장 나와'를 외친다. 일부 상임위에서는 이미 수많은 기업인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국회가 국민이 낸 세금이 잘 쓰이고 있는지, 정부는 제대로 역할을 하는지를 점검하겠다는 데 이론을 달 국민은 없다. 국정감사는 세게 하면 세게 할수록 국민들에게 이롭다.

문제는 국회가 정착 독하게 감시해야 할 대상이 기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업은 잘못한 게 있으면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에게 혼이 나고, 정부 감독당국으로부터 혼이 난다. 감독당국이 제대로 못한 책임을 기업들에게 묻는 '기업 감사'는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지금 기업들은 '생존'을 고민하고 있다. 본인을 포함해 260여명 전임원의 사직서를 받은 권오갑 사장은 비오는 날 비를 맞으며 출근길에 수만명의 직원 한명 한명의 손을 잡고, 파업만은 안된다며 중국과 일본 경쟁자와의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을 우선 찾자고 읍소하고 있다.

가정은 뒤로 한 채 1년에 설날 하루만 쉬고, 오늘은 미국, 내일은 유럽, 모레는 중국을 향해 달리며 '메이드인 코리아'를 팔려 다니는 기업인들도 다수다. 하루 종일 국회에 앉아 방송이 나오는 시간에만 국회의원들로부터 호통을 들으며 '대리만족'의 대상으로 한가하게 앉아 있기에는 글로벌 생존경쟁이 너무 치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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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 기자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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