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누가 흔들리는 배에서 내릴 것인가

[오동희의 思見]누가 흔들리는 배에서 내릴 것인가

오동희 기자
2016.01.29 06:18
[편집자주]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파견법 등 노동개혁 5법의 국회 통과를 놓고 여야가 한치의 양보 없이 대립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글로벌 위기상황에서 기업들은 생존을 위한 몸집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현재 여야의 꼬일 대로 꼬인 쟁점들은 사실 '누가 파도치는 바다 위의 배(船)에서 내릴 것인가'하는 선택과 분배의 문제다.

오동희 산업1부 부장 칼럼 사진
오동희 산업1부 부장 칼럼 사진

지난 26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중장기 경제어젠다 추진 전략회의'에서 여야정이나 산학연할 것 없이 문제의 심각성에는 인식을 같이 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지금의 경제체질로는 선진경제의 도약의 길에 오르기 어렵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여야는 분배와 책임의 문제에 있어서는 첨예한 대립을 보였다. 여당은 노동개혁법의 조속한 통과와 '귀족노조' 문제를, 야당은 포용적 노사문화나 일부 재벌의 문제를 지적했다.

글로벌 경쟁이 상시화돼 있는 지금, 기업은 파도치는 대양 위의 배와 같다. 큰 배일수록 큰 바다에 나갈 수 있고, 파도에도 견디는 힘이 강하다. 하지만 쓰러지면 그 타격은 더 크다.

풍랑 속 침수 위기에서 배를 살리기 위해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게 엄연한 현실이다. 기업이라는 배에 모두 함께 타고 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위기상황에서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모두 침몰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배가 침몰하지 않기 위해서는 배의 추진력과 복원력을 강화하는 한편, 배에 부담을 주는 짐은 내려놓아야 한다.

각자 갖고 있는 자신의 몫인 짐을 조금씩 나눠 버리든지, 아니면 누군가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배에서 내려야 하는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문제는 누구의 짐을 줄이고, 누가 먼저 내릴 것인가 하는 부분을 정하는 것이다. 이번 정부 지침으로 나온 일반해고 지침은 저성과자 등 배에 추진력과 복원력에 덜 도움이 되는 사람부터 배에서 내리는 게 좋지 않겠느냐 하는 선택지를 내놓은 것이다. 파견법은 일부 뿌리산업에서 기존 정규직 대신 파견 인력으로 배를 끌어나갈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그 논의 과정에서도 노동자 간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계급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번 노사정 대타협 과정에서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논의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됐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노사정 협의에 들어가는 노동자들이 정규직 양대노총 중심이어서라는 얘기도 들린다. 현재 전체 노동자 중 단지 8%만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의 조합원이다.

양대 노총은 이들 8%의 이익을 우선 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이라고 하지만, 비정규직들은 정규직의 장벽에 막혀 앞으로 한걸음도 나가지 못한다는 볼멘소리도 한다.

기업이라는 배가 수용할 수 있는 무게는 분명 한계가 있다. 무게를 버틸 수 있게 하려면 선장과 항해사, 기관사, 조타수, 승객 등 다양한 위치의 사람들이 자신의 몫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또 그 과정에서 일부는 배에서 내려야 할 상황도 온다. 모두들 '내려야 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다'라고 말할 뿐 누구도 스스로 내리려 하지는 않는다. 생존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룰을 정하자는 게 이번 정부의 일반해고 지침과 노동개혁법으로 해석된다.

다만, 당부하자면 이런 위기상황이 올 때 최소한 배에서 내리는 승객들이 생존할 수 있는 구명보트나 구명조끼 같은 최대한의 안전판은 국가 차원에서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지 않다면, 누구도 약해진 배에서 내리려 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공멸의 상황에 도달해서야 후회하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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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 기자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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