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약칭: 자본시장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 이 개정안 중에는 김기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미등기 임원 연봉 공개안도 포함돼 있다.

경제계는 미등기 임원 중 연봉 5억 이상이면서 기업별 상위 5위 이내에 포함되는 사람의 연봉을 공개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개인 사생활 비밀보호라는 헌법적 이유(헌법 제 17조)와 우수 인재영입 난항이라는 사업적 이유에서다.
이 시점에서 2002년 커트 위머가 감독하고, 크리스찬 베일이 주연한 영화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 평정)으로 이야기를 풀까 한다.
이퀼리브리엄은 모든 감정이 통제되는 미래도시의 얘기다. 21세기 첫해에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난 후 지구는 '프로지움'이라는 약물에 의해 통제된다.
이 약물은 사랑, 증오, 분노 등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영화는 인간의 감정을 없애 세계 4차 대전을 막겠다는 '총사령관'의 독재 통치를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불합리한 것을 막기 위해 불합리한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 정당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자본시장법 얘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이퀼리브리엄이라는 영화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일부의 일탈을 막겠다는 방법이 혹 불합리한 것이 아닌지를 되묻기 위해서다.
우선 자본시장법의 목적성과 이번 개정안의 내용이 합치하는냐의 문제다. 불합리함을 막기 위해 정치권 스스로 불합리한 수단을 동원하지 않느냐는 얘기다.
이 법의 제1조 '목적'에는 자본시장에서의 금융혁신과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고 투자자를 보호하며 금융투자업을 건전하게 육성함으로써 자본시장의 공정성·신뢰성 및 효율성을 높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돼 있다.
금융혁신이나 공정한 경쟁, 투자자보호, 금융투자업의 건전한 육성, 국민경제의 발전이라는 목적 어디에도 대기업 임원이나 총수의 연봉의 과다함을 규제할 목적성은 없어 보인다. 억지로 엮자면 투자자보호 정도일 듯하다.
일부에서 거론한 것처럼 대기업 총수들이 미등기 이사로서 많은 연봉을 몰래 가져가니 이를 감시하기 위해 이런 법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이 법 목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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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입법 기관이 '재벌 총수 과다 연봉 공개법'이라는 이름으로 발의해서 치열한 논쟁을 벌이게 하는 게 오히려 더 솔직한 접근법일지도 모른다.
법은 우선 그 법의 목적성에 부합해야 하고, 보편타당해야 한다.
대기업 총수의 연봉을 알 수 있는 길이 없어 그렇다면 모르지만, 건강보험료 산정시나 국세청 등을 통해 모든 임금 소득자의 봉급봉투는 정부 기관의 통제 아래에 있다.
굳이 자본시장법의 사업보고서 기재항목을 빌어, 연봉의 속살을 들여다보려는 것은 불합리함을 제거하기 위해 스스로 불합리함을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연봉이 많고 적음에 대한 평가는 각 개인마다 사안마다 모두 다르다. 이를 단순 수치화로 공개하는 것은 결국 '가진 자'에 대한 반감만 키워 사회갈등을 조장할 뿐 분배정의의 실현 방법은 아니다.
대기업 총수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자신에게만 고액 연봉을 책정한다면, 이는 자본시장법이 아닌 다른 행태의 규율이 필요하다. 이런 규율을 만들 때는 더 정밀하고 경영행위의 가치를 산정하는 방법에 대한 심도 있는 사회적 토론과 합의가 필요하다.
'단순히 5억 이상 상위 5명'과 같은 식은 매 반기마다 갈등만 부추길 뿐이다. 재벌 총수들이 모든 계열사에서 6번째로 많은 연봉을 나눠서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또 비상장사에서 임금을 받는 총수들과의 형평성은 또 어떻까.
이런 임시방편적인 방식이 아니라 보편적, 합리적인 분배정의 실현 방법을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