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보는세상]

지난달 유럽 출장에 오를 때였다. 항공사 카운터 근처의 은행 환전소를 찾았다. 은행이 제시한 유로화 환율은 1399원. 기준환율보다 50원이 비쌌다. 미리 환전해 두지 못한 나를 탓하며 울며 겨자먹기로 환전을 했다.
환전 수수료가 아깝다고 해외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한다면? 전신환 환전수수료에 비자나 마스터에 내는 수수료, 국내 카드사 해외 수수료까지 부담해야 한다.
환전 필요 없이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화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창 논란이 진행 중인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는 이런 필요성 때문에 생겼을 것이다.
가상화폐는 누구에겐 축복이다. 무엇보다 은행 접근성이 떨어지는 이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세상에는 은행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25억 명에 달한다고 한다. 성차별이 심한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은 여성이 은행 계좌도 만들지 못한다. 가상화폐는 여성의 경제 참여율을 높이고, 북한 같은 곳에서도 시장경제를 뿌리내리게 할 수 있다.
가상화폐는 무엇인가. 신기루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법정 통화의 대안이 될 것인가. 이 지점에서 오해 몇 개를 짚고 넘어가자. 원화나 달러화로 적히면 모두 실물 화폐고,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은행에 넣어 둔 돈은, 중앙은행이 발행한 돈이 아니라 은행이 창출한 신용에 불과하다. 은행들의 지급 준비금은 창출한 신용에 비해 극히 적다. 은행이 망하면 넣어 둔 돈도 함께 날아간다.
가상화폐는 변동성이 심해 지나치게 투기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는 법정통화의 변동성은 그에 못지 않게 심하다. 1918년 독일에서 금화 1마르크는 화폐 1마르크였지만 5년 후엔 금화 1마르크당 화폐 1조 마르크로 치솟았다. 이런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베네수엘라같은 나라에서 지금도 벌어진다.
가상화폐 때문에 사기 사건이 발생하고, 국무총리까지 나서 "이대로 놔두면 심각한 왜곡현상이나 병리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우려가 심하다. 하지만 그게 비트코인의 진짜 재앙은 아니다. 급등락과 투기 수요는, 만약 그게 사기라면 상처는 남겠지만 멀지 않아 해소된다.
문제는 기존 체제에 대해 갖는 폭발성이다. 더이상 신용카드사와 은행에 의존하지 않아도 돼 기존 금융산업은 뿌리부터 흔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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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재정학 교과서부터 새로 써야 한다. 비트코인이 2100만 코인으로 채굴량이 제한돼 있는 것처럼(보편적 통화로 자리잡기에 가장 큰 약점이다), 가상화폐는 발행량을 맘대로 늘릴 수 없어 디플레이션을 유발한다.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오르기 때문에 소비보다는 저축이 유리하다. 케인스의 '저축의 역설' 관점에서는 악몽이다. 법정통화의 역할이 줄어든다면 중앙은행과 정부의 권한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지 못하는 이들에겐 분명 재앙이 될 것이다. 혁신이란 그런 것이다. 전기차만 하더라도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 회사의 기득권을 허물어야 꽃필 수 있다. 자율주행차는 수많은 대리운전 기사들과 택시 기사, 운전면허 강사의 생계를 위협한다.
반면 새로운 산업은 새로운 혜택과 일자리를 만든다. 자동차가 발명됐을 때 마부들은 일자리를 잃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일자리가 자동차 산업에서 생겨났다. 가상화폐는 과연 혁신으로 기록될까. '투기나 투자냐'라는 논란을 뛰어넘는 진지한 대응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