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전쟁 공세가 한창이다. 대선 때부터 외치던 ‘미국 우선주의’를 명분으로 삼았다. 국가안보위협에 맞서 수입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에 가장 많은 무역적자를 안겨온 중국이 궁극적인 표적 같지만 수입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폭탄 관세 조치는 무차별적이다.
트럼프의 무차별 공세에 대미 철강 수출 비중이 큰 동맹국들은 애간장을 태웠다. 한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는 '읍소'끝에 관세 면제를 받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빌미로 ‘승리’라고 자평할 정도로 많은 양보를 얻어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대미 철강 수출 3위인 한국이 관세 면제를 받기 위한 협상에서 가장 많은 양보를 했는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거래의 달인’인 트럼프에게 공짜는 있을 수 없다. 주고받는 전략이 불가피한 데 이게 꼭 해로운 건 아니다. 한 예로 한국은 철강 관세를 면제받기 위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에서 미국산 자동차 수입 쿼터를 확대했지만 미국은 기존 쿼터조차 채우지 못하고 있다. 쿼터 확대는 사실상 트럼프에게만 보기 좋은 떡이다.
하지만 한국이 대미 철강 수출 물량을 30% 줄이기로 한 건 차원이 다른 얘기다. 단지 수출 물량이 쪼그라드는 게 문제가 아니다. 기존 무역질서를 흔들 수 있어서다.
이런 양보는 1980년대 횡행한 수출자율규제(VER)를 되살릴 수 있다. 수출자율규제는 수입국의 잠재적인 수입제한조치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 수출물량 등을 제한하는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자유무역질서를 해치는 VER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아울러 줄어든 대미 수출물량이 세계 곳곳에 나돌게 되면 또 다른 무역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 전 세계가 중국의 과잉생산을 문제 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변덕이 심한 트럼프의 무차별적인 반무역 공세의 향방은 아무도 모른다. 공세를 피하려면 양보가 불가피한데, 압력의 크기에 비례해 양보 수준이 높아지기 쉽다.
문제는 불합리한 위협에 불합리한 양보로 대응하는 것이다. 더욱이 그 양보가 자유무역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면 국제사회의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무역협정은 한 번 맺으면 뒤집기도 어렵다.
어찌 됐든 한국이 미국의 철강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된 건 다행이다. 그렇다고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철강 관세는 피했지만 트럼프가 곧 다른 트집을 잡을지 모른다. 철강·알루미늄 관세의 근거가 된 ‘무역확장법 232조’는 국가안보위협을 명분으로 한 수입 제한을 정당화한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트럼프의 불합리한 위협에 같은 식으로 타협하면 명분과 실리 모두 잃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