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가 코로나19에 확진되고 이튿날 아이에게도 확진 문자가 도착했다. 아이는 고열과 구토 증상이 시작됐다. 집 근처 내과에 전화로 비대면 진료를 받고 격리된 처와 아이를 대신해 약을 타러 갔다. 동네 의원은 이른 아침부터 신속항원 검사를 받으러 온 이들로 아수라장이었다. 처방약을 받기 위해 간 약국 역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약사에게 약을 건네받을 때까지 기다린 시간은 30여분. 약사 얼굴이 보이자 약봉지에 적힌 처방약이 혹시 구토증상을 보이는 아이에게 적당한지 물었다. 약사는 대답 대신 뒷사람 약을 조제해야 한다며 성급하게 조제실로 들어갔다. 평소에도 그렇게 불친절한 약국은 아닐 것이다.
아이는 24시간 넘게 구토를 했다. 미음도, 보리차도, 처방약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열 살이 될 때까지 여지껏 본 적이 없는 창백한 아이의 얼굴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보건복지부 가이드라인도 식이섭취와 소변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게 24시간 이상 지속되면 대면진료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곧 탈진할 것 같은 아이에게 수액주사라도 놓으면 어떨까 해서 가능한 병원을 찾았다. 밤늦게까지 문을 연 호흡기지정 의료기관들은 신속항원 검사를 받으려는 이들로 건물 계단까지 줄이 생겼다. 하지만 확진자가 몸을 누일 공간은 허락하지 않았다.
119에 전화해 아이를 받아줄 만한 병원을 문의하자 문자로 서울의료원 전화번호가 왔다. 서울의료원에 전화를 하자 가능한 병원을 수배해보겠다면서, 친절하게도 10여 뒤에 다시 전화가 왔다. 경기 의정부에 있는, 차로 30여분 거리의 한 어린이병원을 안내해줬다. 그 어린이병원에 전화를 했지만 ARS 신호만 갈 뿐 통화를 할 수는 없었다. 이번엔 보건소 재택치료 상담센터에 전화를 했지만 역시 알려준 곳은 똑같은 어린이병원이었다. 결국 재택치료 지원체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무기력한 밤이 지나갔다. 붉은 산수유 열매로 아이가 나을 수 있었다면 시인 김종길의 아버지처럼 한밤중 눈 덮인 산이라도 헤치고 다녔을 것이다. 애처로운 한 마리 어린 짐승에게 아버지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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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이룬 잠에서 커다란 뱀을 때려잡은 꿈을 꾸고 깨어났을 때 다행히 아이의 상태는 전날보다는 좋아져 있었다. 아이는 미음을 먹기 시작했다. 아무런 도움을 받지 않고 오롯이 아이 혼자 견뎌냈다. 코로나19에 확진되는 아이들이 일반적으로 그런 과정을 거치는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으로서는 의료체계가 무너진 것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코로나19라는 재난에 우리가 그렇게 자랑했던 시스템은 먹통이 됐다. 마음만 먹으면 어느 때든 전화를 해 예약을 하고 갈 수 있는 병원이 아니었다. 의료체계붕괴를 막기 위해 많은 자영업자들이 희생했지만 의료 현장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린다. 화장장을 풀가동해도 사망자가 넘쳐나 장례식은 6일장이 일상이 되고 시신을 안치할 곳도 부족하다.
한참 전부터 '위드코로나'라는 말을 앞세웠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함께 일상생활하는 하기 위한 준비는 전무했다. 붉은 산수유 열매는 어른이 돼서도 혈액에 녹아 흐르는 게 느껴졌다고 했다. 어른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는 기억만 아이에게 남아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알베르 까뮈의 소설 '페스트'에서는 죽은 쥐들만 보이던 도시에 살아있는 쥐가 다시 돌아다니기 시작하자 시민들이 축제를 벌인다. 그리고 소설은 이런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간균은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수십 년간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가 사람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쥐들을 깨워 어느 행복한 도시에서 죽으라고 보낼 날이 올 것이다.'
코로나19도 이제 정점에 다다라 '엔데믹'(풍토병화)이 가까워졌다고 한다. 하지만 바이러스들은 종식되지 않고 참을성 있게 다시 인간 사이에 침투할 날을 기다릴 것이다. 우리는 코로나19로 어떤 교훈을 얻고 있는가. 무너지지 않을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