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 예대금리차 비교공시의 함정

[우보세] 예대금리차 비교공시의 함정

오상헌 기자
2022.08.24 03:52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윤석열 정부의 금융 공약인 은행 예대금리차(평균 대출금리와 저축성수신금리 차이) 비교 공시 제도가 지난 22일부터 시행됐다. 지금까진 통일된 기준 없이 개별은행들이 자체적으로 산정한 내부 신용평가등급에 따라 예대금리차를 저마다 공시하는 구조였다. 금융 소비자 편익과는 무관하게 기계적이고 의무적으로 공시를 이행하다 보니 은행간 비교가 어려웠고, 3개월의 공시 주기 탓에 적시성도 떨어졌다. 비교 공시 도입으로 금융 소비자들은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에서 국내 19개 은행의 예대금리차(매월 신규취급액 기준)와 예금금리, 대출금리를 한 눈에 비교해 보고 선택권을 넓힐 수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와 가파른 금리 상승으로 고통받는 서민·취약계층과 금융 소비자들에겐 무척 반가운 일이다.

은행 이익 지표인 예대금리차는 개별은행의 경영 상황과 영업 전략, 예금과 대출자산의 구조 등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금리를 낮게 무는 고신용자들이 많은 대형 시중은행보다 고금리의 중·저신용자 고객이 주로 찾는 지방은행이나 인터넷전문은행의 예대금리차가 크다. 시중은행 중에선 대체로 덩치가 큰 은행일수록 예대금리차가 커지는 경향성을 보인다. 적극적인 금리 경쟁으로 고객을 확보해야 하는 후발주자들의 예대금리차는 상대적으로 작다. 처음 비교 공시된 결과는 이런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앞으론 경향성이 차츰 옅어질 것 같다. '이자 장사'를 한다는 오명을 쓰지 않으려면 예대금리차를 과도하게 가져가기보단 가산금리를 낮추고, 우대금리를 높이는 등 금리 차이를 적절히 제어하려 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첫 날 은행들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예대금리차 비교 공시 효과의 방증이라 할 만하다. 예대금리차가 상대적으로 큰 곳과 작은 은행들의 희비가 갈렸고 해명과 홍보,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은행의 브랜드 이미지와 직결되고 고객들의 선택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비교 공시 결과가 나오자 즉각 반응한 것이다. 시중은행 중 가계 예대금리차가 가장 큰 한 은행은 "서민지원대출을 가장 많이 취급한 결과"라고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고금리 서민대출을 많이 내주다 보니 예대금리차가 커졌다는 것이다. 대형 시중은행 가운데 가계 예대금리차가 최저인 다른 은행은 "금리 인상기를 맞아 금융소비자 부담 경감을 위한 금융지원 정책을 적극 이행한 결과"라고 했다.

은행간 금리 경쟁 활성화와 고객의 선택권 확대 측면에서 기대가 크지만 걱정도 없지 않다. 포용적 정부 정책에 부합해 서민 대출을 많이 취급할수록 예대금리차가 커지는 구조에선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예대금리차를 줄여 '이자장사 리딩뱅크(선도은행)'란 낙인을 피하기 위해 은행들이 저신용·서민 대출 문턱을 높이려는 유혹에 휩싸일 수 있다. 부실 위험이 낮은 안전한 고신용 저금리 대출만 취급하려는 유인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도입 취지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취약계층 민생 금융안정 대책과 예대금리차 비교 공시의 정책 부조화를 해소할 보완책을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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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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