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를 상대로 고율 상호관세를 때리며 자유무역 질서를 뒤집어 놓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민간 기업들에까지 전에 없던 질서를 요구하는 모양새다. 정부 권력을 이용해 기업들을 향해 통제의 손길을 뻗치면서다.
트럼프 정부는 엔비디아와 AMD에 중국 수출을 허용하는 대가로 해당 매출의 15%를 미국 정부에 납부하는 거래를 체결하는가 하면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승인하면서 US스틸 경영에서 주요 결정을 좌우할 수 있는 '황금주'를 얻어냈다. 미국 희토류 생산업체 MP머티리얼즈엔 4억달러 규모의 우선주 투자를 약속했다. 반도체 보조금으로 경영난을 겪는 인텔의 지분 10%를 인수해 최대 주주가 되는 방안을 논의 중이란 소식도 전해졌다.
지금까지의 공통점은 철강·반도체·희토류 등 국가 안보와 직결된 분야라는 점이다. 트럼프는 국가 안보 측면에서 공급망 자립이 필요하다고 판단, 국내 챔피언 기업을 키우는 데 강한 의지를 보여왔다. 국가 안보에 중요한 인공지능(AI), 바이오 기술, 항공우주 등 다른 산업에서도 정부 개입이 커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자유시장 원칙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미국인 만큼 트럼프의 개입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성공한다면 납세자에 이익이 돌아가고 국가 안보도 강화할 수 있지만 자칫하다간 납세자 손실로 이어지고 시장을 왜곡할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어서다.
일각선 트럼프가 중국식 경제 모델을 닮아가려 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게리 하프바우어 선임 연구원은 "미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국가 주도 정책"이라며 "중국 모델이 미국으로 침투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강력한 공산당 주도 아래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에 비해 미국이 이른바 '민주주의의 비효율'에 발목이 잡혀 있단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이 깔려 있단 해석도 나온다.
지금까지 미국은 경제 주체들이 자율적으로 행동하고 최고의 효율성을 찾아가며 성장과 혁신을 이뤘다. 이런 믿음으로 미국에 투자한 기업과 투자자들에게 트럼프의 개입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미국 투자를 대가로 따낸 보조금에 대해 해외 기업에까지 지분을 요구한다면 이는 국가 안보라는 대의명분으로도 '갈취'라는 낙인을 지우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