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기술이 데이터의 무결성을 바탕으로 전통적 금융 시스템을 '디지털 금융'으로 재편하고 있다. 가상자산은 이제 단순 투자 수단을 넘어 결제와 송금 등 국가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인프라로 부상했다. 특히 미국 차기 행정부가 비트코인을 국가 전략자산으로 검토하는 등 가상자산의 제도권 진입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하지만 시장의 급성장은 역설적으로 '디지털 금융 안보'라는 전례 없는 도전 과제를 던지고 있다. 이제 디지털 금융은 산업 혁신을 넘어 국가안보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관리해야 할 핵심 영역이다.
안보 위협의 최전선에는 북한 등 국가 연계 해킹 조직이 있다. 이들은 단순 해킹뿐 아니라 IT 노동자의 해외 기업 위장 취업이라는 기만책까지 동원한다. 이를 통해 외화를 가상자산 형태로 탈취해 무기 개발 자금을 조달하는 식이다. 실제로 지난 3월 미 재무부는 북한의 수익 창출에 관여한 세력을 대거 제재했다. 이들은 추적을 피하고자 일반 거래소 내부의 '식별이 어려운 입금 주소'를 교묘하게 활용하고 있다.수법은 갈수록 대담해지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바이비트(ByBit) 거래소의 대규모 이더리움 탈취 사건처럼 직접 공격을 감행하는 한편, 위장 취업을 통한 지속적 수익 창출을 병행한다. 탈취 자산은 여러 지갑을 거쳐 자금을 섞는 세탁 기술로 은닉된다. 이는 디지털 금융의 취약성이 개별 기업의 보안을 넘어 국제 안보를 흔드는 경로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과거의 안보가 국가망 보호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국경 없이 흐르는 자산을 실시간 추적하는 '경제적 안보'가 필수인 시대다.
특히 주목할 변수는 '스테이블코인(가치 고정 가상자산)'의 역할이다. 가격 변동성이 적어 효율적이지만, 불법 네트워크가 제재를 회피하고 자금을 숨기는 매력적인 통로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과거 해킹 사례에서 테더(USDT) 등이 자금 은닉의 매개로 활용된 바 있다. 편리한 금융 도구가 안보 측면에서는 감시망을 우회하는 정교한 수단이 된 셈이다.
위협이 국가적 위기로 번지지 않으려면 선제적 대응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가상자산 보안과 추적을 전담할 전문 인재 육성이 최우선이다. 기술적 이해는 물론 데이터 분석 역량과 안보적 통찰력을 겸비한 다학제적 융합 인재가 현장에 투입되어야 한다. 제재 명단을 실시간 분석하고 의심스러운 지갑 주소를 식별하는 역량은 이제 국가안보의 핵심 병기다. 나아가 스테이블코인 자금 흐름에 대한 국제적 감시 공조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자산이 흐르는 길목마다 취약점을 분석하고 이상 거래를 탐지하는 보안 기술에 국가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민간 보안 기업의 정보와 공공 감시망이 결합된 민관 협력 모델 확대도 필수적이다.
안보의 핵심은 신기술 수용 자체가 아니라, 기술이 질서를 흔드는 경로로 악용되지 않게 관리하는 역량에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디지털 금융을 국가안보 관점에서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디지털 금융 인프라가 국가의 새로운 성장 동력인 동시에 견고한 안보 보루가 될 수 있도록 이제 산·관·학의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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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배 중앙대학교 산업보안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