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전력시장, 정치 아닌 기능을 복원하라

[MT시평]전력시장, 정치 아닌 기능을 복원하라

김희성 브라이트에너지파트너스 의장
2026.04.22 02:00
김희성 브라이트에너지파트너스 의장
김희성 브라이트에너지파트너스 의장

글로벌 에너지 위기로 전 세계가 시끄럽다. 원재료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에서 연료비 상승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은 피할 수 없는 자연법칙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단편적인 '정책'으로 마법과 같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오랜 시간을 반복적으로 허비해 왔다.

많은 이들이 정부가 가격을 눌러주길 바란다. 실제로 우리나라 전력가격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지만, 이는 사실 시장의 신호가 완전히 마비된 왜곡된 숫자다. 시장 원리를 무시한 가격 통제는 나중에 이자까지 붙어 돌아오는 '카드 돌려막기'와 같다. 기말고사 성적이 엉망인데 선생님이 성적표의 숫자를 고쳐준다고 실력이 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공부할 이유만 사라질 뿐이다. 억눌린 요금은 한전의 천문학적인 적자로 남아 결국 우리 세대가 반드시 메워야 할 무거운 짐이 되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전력시장의 구조에 있다. 현재 우리 시장은 한전이 구매와 판매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이제 한전은 모든 것을 쥐고 흔드는 독점 사업자의 무거운 갑옷을 내려놓아야 한다. 대신 국가 전력망이라는 거대한 동맥부터 골목길 실핏줄에 이르는 네트워크의 안정적 운영이라는, 오직 한전만이 할 수 있고 반드시 해야 하는 본연의 임무에 전념해야 한다. 그것이 한전도 살고 시장도 살리는 길이다.

시장이 열려야 기술이 힘을 쓴다. 연료비가 전혀 들지 않는 대신 날씨에 따라 출력이 출렁이는 태양광 같은 변동성 자원이 늘어날수록, 이를 조율할 BESS(배터리 에너지 저장장치)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현행 제도는 BESS의 성능이나 기여도와 상관없이 일정한 수익만 보장하는 '낮은 월세의 임대차 계약'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최신 스마트폰을 사놓고 계산기로만 쓰는 격이다. BESS가 실시간 가격에 반응하며 전력망의 빈틈을 메우는 해결사로 활약하려면, 다양한 가치를 입체적으로 인정하는 유연한 보상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한편, 소비자들은 시장경쟁 도입이 요금 폭등으로 이어질까 우려한다. 하지만 진정한 시장 기능은 오히려 비용을 낮춘다. 민간의 창의적인 기술이 경쟁하며 효율을 높이고, 소비자가 직접 싼 시간대의 전기를 선택해 쓰게 만들기 때문이다. 정부의 역할은 가격을 억지로 누르는 것이 아니라, 취약계층을 정교하게 보호하면서 시장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작동하도록 돕는 데 있다.

그동안 우리 전력시장의 혁신가들은 '공공성'이라는 명분 아래 시장의 주변인으로 머물며 마냥 대기해 왔다. 시장의 눈을 가린 채 에너지 안보와 자립을 외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지금 지불하지 않는 비용은 내일의 우리 아이들이 더 큰 고통으로 짊어지게 된다. 이제 전력시장에 '정치'가 아닌 '기능'을 복원해야 한다. 정직한 가격표를 마주하는 것, 그것이 에너지 안보를 지키는 가장 용기 있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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