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민원에 쓰러진 공교육①

지난해 9월 서울강동송파교육지원청 앞에는 10여개의 근조화환이 늘어섰다. 아파트 재건축으로 학령인구가 급증해 인근 초등학교가 초과밀 상태가 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주민들이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아파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서울시교육청, 국민신문고, 시의원·구의원 민원실에 민원을 넣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으면서 관련 민원은 단기간에 약 900건이 접수됐다.
서울 강동구 A아파트 주민들은 B중학교에 '공문'을 넣어 교장과 면담을 할 것을 요청했다. A아파트에서는 B중학교에 배정 받고 싶지 않다며 서울시교육청에 지속적으로 민원을 넣었다. 하지만 희망하는 중학교의 과밀이 심각해지자 B중학교 배정이 불가피해졌다. B중학교는 면담에 응했지만, 부동산 온라인카페에는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내자는 글이 올라왔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국민신문고로 접수받은 민원 건수가 사상 처음으로 2만건을 돌파했다. 지난해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국민신문고 운영이 한 달간 중단되면서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가 접수한 정부 전체 민원은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교육 현장이 유난히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는 반증이다.
25일 지난해 국민신문고를 통해 접수된 서울시교육청 관련 민원 건수는 전년 대비 6% 증가한 2만524건이었다. 2년 전과 비교해 27.7% 폭증한 수치다. 이는 각 학교나 교육청 실무자들에게 유선, 방문 등으로 제기되는 민원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시교육청에서는 직원 1명이 2만여건의 민원을 분류, 전달하고 있다.
지난해 권익위가 국민신문고·우편 등으로 전체 접수한 민원은 1169만7691건으로 전년 대비 4.3%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2년 전 대비로도 5.5% 감소해 3년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전체 학령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시교육청에 유달리 민원이 몰린 원인으로는 누구나, 무슨 이유든지 쉽게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환경이 꼽힌다.
예를 들어 학부모가 아니더라도 아파트 가격 하락을 우려한 입주민들이 학교 배정을 문제 삼아 민원을 제기하고, 온라인 상에서 '민원 폭격'을 선동할 수도 있다. 운동회 소음은 물론 성인 운동 동호회로부터 학교 체육관 개방, 인조잔디 설치 요구 등 다양한 민원이 접수된다. 최근에는 AI(인공지능)를 활용해 법률을 유리하게 해석하거나, 기계적으로 민원을 생산해내는 사례도 있어 '적극 응대'만으로는 늘어나는 민원을 감당하기 어렵다.
2024년 동덕여대 사태 관련 집회에서 서울 C고등학교 학생들이 야유하는 행동을 하자 '민주시민 교육, 생활지도 교육을 철저하게 해달라'며 3000여건의 민원이 폭주하기도 했다. 동덕여대 재학생들은 온라인에 글을 올려 'C고등학교 시위를 무단 촬영 및 참가자들을 조롱한 것에 대해 제대로 된 조치를 바란다'고 민원 제기를 요청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당시 서울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관련 민원이 쏟아졌다"며 "(관련 뉴스나 요청 글을 본 사람은) 누구든 민원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해당 민원은 병합 처리됐지만, 이같은 사태는 언제나 다시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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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청은 민원처리법 시행령에 따라 '응대의 의무'만 있고, 답변을 '거부할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민원사무처리에관한법률(민원처리법) 시행령에 따르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일반 민원은 7일 이내 답변하도록 돼 있다. 담당 장학관은 민원이 접수되면 해당 학교에 확인을 해야만 하고, 교사들은 이에 응하는 데 시간을 쓸 수밖에 없다.
민원처리법 23조에서는 동일 민원인이 동일한 내용에 대해 민원을 지속 제기하면, 2번째까지 답을 하고 3번째부터는 종결처리할 수 있지만 다른 내용으로 민원을 제기하거나 가족의 개인정보를 활용하면 또다시 민원제기가 가능하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민원인이 교육공동체 해당자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교육청과 교원이 민원 응대에 에너지를 사용할수록 교육에 대한 집중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