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때마다 굵직한 판결, 헌재 어떤 선택했나

위기때마다 굵직한 판결, 헌재 어떤 선택했나

지영호 기자
2015.02.11 05:56

[the300][런치리포트-'제4부' 헌법재판소③]개헌 논의에 알러지 반응, 대법과의 갈등도 표면화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헌밥재판소에서 열린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에서 판결문을 읽고 있다./사진=뉴스1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헌밥재판소에서 열린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에서 판결문을 읽고 있다./사진=뉴스1

#. 2014년 12월19일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해산심사 청구에서 통진당은 내란음모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그로부터 한달 뒤. 올해 1월22일 대법원은 통진당에 내란음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하나의 사안을 두고 헌재와 대법이 상이한 판단을 내린 것을 두고 법조계에선 '일대의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두 사법기관의 견해 차로 인해 사법기관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혼란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판단이다.

마침 통진당 판결이 있던 날 대법은 헌재가 위헌 여부를 심리하고 있는 민주화운동보상법에 앞서 판결을 내렸다. 이 법에 따라 보상을 받은 경우 국가에 별도 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결정해 헌재의 심의 결과를 무력화하는 판결로 받아들여진다.

정치권에선 '헌재가 성급한 판단을 내린 것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여야 간에 개헌 논의가 불붙으면서 자칫 존폐 위기에 내몰릴 수 있는 헌재가 존재감을 드러낸 판결이 필요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통진당 판결이 있기 두달 전인 지난해 10월 헌재 국정감사에서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개헌발언 사과'로 개헌논의가 불붙으면서 헌재의 존립을 두고 여야 의원들의 공방이 벌어졌었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오래 몸담은 한 보좌관은 "개헌 논의 때마다 불거져 나오는 헌재의 조급증이 통진당 해산심사 청구 판결에서도 드러난 것"이라며 "개헌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느냐에 따라 헌재 존립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정치적 유혹에 빠져들기 쉬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개헌 논의때마다 튀어나오는 헌재의 판결

2010년 하반기부터 이명박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계기로 개헌 추진이 본격화됐다. 집권 후반기를 맞아 선거제도와 행정구역 개편 등 정치 선진화를 통한 '공정사회'를 위해 개현을 화두로 던졌다. 논의는 이듬해까지 계속 됐고 헌재의 역할도 논의 대상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마침 헌재는 그해 3월 친일파 후손들이 제기한 친일재산환수법에 대한 헌법소원에 대한 합헌 결정을 내렸다. 2008년 제기된 헌법소원을 2011년에야 내린 것이다.

이 결정은 2013년 헌재가 창립 25주년을 맞아 그동안 내린 주요 결정 25건에 대해 출입기자 87명 등 36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으로 꼽힐 정도로 무게가 있었다.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국민이 원하면 4년 중임제를 포함해 개현을 논의하겠다"고 밝히면서 집권 이후인 2013년 또 한번 개헌이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본격적인 개헌논의가 시작되는 해로 적합하다는 의견이 정치권 내에서 일반화됐다.

이 때 헌재는 또 한번의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3월 유신헌법 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긴급조치는 위헌이라는 판결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선 여당에 상당한 압박이 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회 관계자는 "집권 여당이 개헌 논의가 있을 때마다 지지기반에게 민감한 판결이 나온 것을 오비이락이라고 넘겨버리긴 사안이 컸다"며 "헌재가 개헌에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헌재-대법의 해묵은 갈등사

대법은 주로 사건에 대해, 헌재는 법률의 위헌여부에 대해 판결하는 차이가 있지만 서로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일치된 결과가 나오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경쟁관계에 있는 대법과 헌재가 일치되지 않는 결과를 도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헌재와 대법이 서로의 판결을 신뢰하지 않을 경우 이른바 '핑퐁게임' 양상으로 치닫게 된다. 통진당 판결 전 대표적인 사례는 GS칼텍스 법인세 사건이다.

2012년 GS칼텍스가 국세청으로부터 감면받은 700여억원의 법인세와 관련, 대법원은 입법권자의 단순 실수라며 부과하는 게 맞다고 판결했다. 이에 GS칼텍스 측은 헌재에 헌법소원을 신청했고 헌재는 재판관 전원 일치로 대법의 해석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이에 대법은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은 재심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결정하면서 GS칼텍스는 또 다시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다.

이 외에도 공무원이 아닌 사람을 뇌물죄로 처벌하는 내용이나 긴급조치 위헌여부에 대해서도 두 기관이 맞붙은 사례가 있다.

◇헌재의 판정패, 반전은 없나

통진당 지하혁명조직인 RO의 실체를 두고 상이한 판단이 나오자 헌재는 지난달 말 일부 오류를 인정하며 꼬리를 내렸다. 내란관련 회합에 참석하지 않은 인물을 참석자로 기재한 것에 대해 결정문 일부를 삭제하고 7개의 오류를 수정한 것. 정확성과 신뢰도에 치명상을 입었다는 게 법조계의 판단이다.

최근까지 같은 사안을 두고 대법은 헌재에 앞서 판결해왔다. 성인의 교복 음란물에 대한 문제를 다룬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아청법) 판결이나 언론인의 정치개입 문제를 다룬 나꼼수의 공직선거법 판결 등에서 대법은 헌재가 결정을 미루는 사이 미리 유죄를 인정하지 않아 헌재의 판단에 김을 뺐다.

헌재가 반전을 모색할 카드도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1990년 이후 4차례나 합헌 결정을 내린 간통죄 문제를 이르면 이달 내에 결정내린다.

1990년 6명이 합헌 결정을 내렸던 간통죄 위헌 여부에 대해 가장 최근인 2008년엔 4명이 위헌을, 1명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위헌 결정에 필요한 6명에 근접한 만큼 이번 결정에 관심이 모아진다.

간통죄 위헌 결정이 날 경우 사회에 미칠 파장을 고려한 준비도 진행 중이다. 지난해 5월 헌재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소급조항을 수정해 합헌 이후에만 효력을 발휘하도록 조치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임성희 헌법재판소 재판연구관은 "간통죄 판결을 비롯해 어떤 일정도 정해진 것이 없다"며 개헌 물타기 등에 대한 논란과 관련해선 "시기를 놓고 판단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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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울수록 맞서라' 처음 다짐을 잊지 않는 기자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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