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기술 안 뺏었다' 대기업이 입증..한국형 '디스커버리' 도입

[단독]'기술 안 뺏었다' 대기업이 입증..한국형 '디스커버리' 도입

김하늬 기자
2018.10.01 04:01

[the300]법원이 제출 자료 범위까지 지정…'영업상 비밀' 핑계 거부 금지

중소기업이 떠안아야 했던 기술탈취 여부 입증 책임을 앞으로는 대기업이 지게 될 전망이다. 대기업이 기술을 탈취한 것으로 확인될 경우 중기 피해금액의 최대 10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토록 하는 법적 근거도 생긴다.

30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단독 입수한 중소벤처기업부의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따르면 정부는 기존 법에 명시되지 않았던 기술탈취 사건의 사실관계 입증 책임 의무를 '가해자'로 명시하기로 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에 기술탈취 분쟁이 생길 경우 입증 책임을 대기업이 진다는 뜻이다.

기술탈취 분쟁의 특성 상 그간 탈취 입증 책임은 사실상 피해기업인 중소기업에 있었다. 특허법원과 고등법원에서 피해를 입은 사실을 중소기업이 직접 입증해야 했다. 하지만 대기업의 제조기술 자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연구 인력 등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우리걸 베꼈다'고 입증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대기업이 계열사 간 거래에서만 탈취 기술을 활용한 물품을 거래할 경우 입증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간 대기업의 기술탈취에 따른 중기 피해규모 산정 자체가 힘들었던 이유다. 소송이 길어질 경우 중소기업의 생존이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었다. 구조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이자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1호 정책이다. 홍 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강력한 기술 보호 정책을 수립해 과거 대기업의 기술탈취 관행을 개선시킬 것"이라고 예고해 왔다.

중기부는 이에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을 통해 '입증책임 및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연구' 용역을 진행, 대안을 마련했다. 재단은 분쟁이 발생하면 대기업이 기술 탈취 의혹을 직접 해소하고 이와 관련한 손해 배상을 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도 대기업이 먼저 입증토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개정안에 명시된 '입증책임 전환' 조항이다.

개정안은 또 법원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당사자에게 증거자료를 요구할 수 있는 '자료제출명령제도'를 도입키로 했다. 미국 '디스커버리' 제도의 한국판이다. 손해배상소송에서 사실 심리를 시작하기 전에 당사자가 서로가 가진 증거와 서류를 확보하고 이를 서로에게 공개하는 방식이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대기업이 '영업상 비밀'을 빌미로 자료 제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 법원이 직접 제출 자료의 범위와 제출인을 지정한다.

기술탈취 응징 범위와 수단도 확대됐다. 중기부는 개정안을 통해 기술유용 행위에 대한 손해액의 최대 10배 이내의 징벌적 손해배상 및 벌칙규정을 만들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뒀다. 손해 판정 기준도 △피해의 규모 △고의성 △위반 행위 회수와 기간 △기술유용으로 얻은 이익 △양도 수량당 이익액 곱한 금액 △통상 실시료 등으로 구체화 했다.

사전 보호장치도 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수·위탁계약을 하면서 기술자료를 요구할 경우, 비밀유지협약 체결을 의무화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10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한다. 또 계약에 의한 영업비밀 열람자에 대해 비밀유지를 명령할 수 있도록 했다. 위반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주무관청인 중기부의 관리감독 기능도 강력해진다. 기술 탈취에 대해 중기부 장관의 시정명령을 받고 1개월 내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최대 1억50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중기부는 이 같은 내용의 개정안을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발의할 예정이다.

다만, 산업계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경우 '10배수' 고액의 배상금을 노린 소송전이 가능하다는 의견이다. 또 대기업 입장에서는 지나친 정보공개 압박과 영업 기밀이 드러날 수 있다는 걱정의 눈초리도 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