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용호의 시대동행/(중)]과학기술도 각자 강점으로 시너지...하토야마 "일본이 계속 노벨상 받을 수 있을지 걱정"

(상편에 이어서)
-백 고문 : 요즘 대한민국에서는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유행인데 총리가 말한 '동아시아 공동체' 정신이 이어지길 바란다. 주제를 바꿔 한일 관계는 '과거 역사는 직시하되 미래로 가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 문화·과학기술 협력 확대가 중요하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문화 전면 개방 당시 우려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일본 문화 유입뿐 아니라 한국 문화도 일본에 확산되는 '쌍방향 교류'가 됐다. 이러한 문화 교류가 특히 젊은 세대의 간극을 줄이고 갈등 해소의 출발점이 된다고 본다. 총리 부인도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는데 관계 개선을 위해 문화 교류를 확대할 구체적 조치가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하토야마 전 총리 : 제 아내뿐 아니라 저도 지인의 추천으로 최근 넷플릭스에서 '폭군의 셰프'라는 한국 드라마를 봤다. 역시 한국 드라마는 재미있고 대단하고도 느꼈다. 문화는 스포츠처럼 양국 국민을 조건 없이 사이좋게 만드는 큰 힘을 가졌다. 저의 조부도 70~80년 전 쓰신 책에 '외교관보다 스포츠 선수나 문화인이 더 큰 역할을 한다'고 했는데 요즘 절실히 느낀다. 특히 한국 정부가 K-컬처를 전 세계에 확산시키기 위해 힘쓰는 정책은 매우 좋은 방식이며 일본도 배워야 한다고 본다. 메이저리거 오타니 선수가 야구를 통해 미·일 관계에 기여하듯 일본과 한국이 각자 정부 차원에서 자국 문화를 세계에 확산시키면 양국은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백 고문 : '문화의 힘'에 공감한다. 최근 K컬처가 국가 위상을 높이고 제조업 수출까지 돕는 것처럼 과거 19세기 '자포니즘(Japonisme)'이 일본의 이미지를 '문화적으로 성숙한 국가'로 격상시킨 바 있다. 그래서 양국이 단순 교류를 넘어 '문화 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한국의 기획력·창조력과 일본의 세밀함 같은 강점을 결합하는 것이다. 최근 미국 스튜디오인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과 한국계 캐나다 감독이 협업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라는 애니메이션이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처럼 단순한 문화교류를 뛰어넘은 '문화 융합'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서 양국의 이익과 위상을 함께 높이는 힘이 될 것이다.
▶하토야마 전 총리 : 말씀에 완전히 동감하고 특히 한국이 중심적 역할을 한다는 데 공감한다. 제조업을 예로 들면 일본은 반도체용 미세 기술처럼 세심하고 세세한 부분에 강점이 있고 한국은 이를 통합해 훌륭한 완성품을 만드는 '전체를 보는 눈'이 뛰어나다. 이는 제조업뿐 아니라 문화에도 해당된다. 양국이 이렇게 서로 잘하는 부분을 보완하며 협력해 나간다면 문화와 경제 등 여러 부문에서 함께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백 고문 : 총리가 문화, 과학기술, 제조업 분야의 협력이 상생의 길이 될 수 있다고 한 지적은 매우 중요하다. 과거에는 영토나 자원처럼 한정된 국부가 원천이었기에 이웃 국가 간 갈등과 마찰이 많았다. 하지만 21세기에는 과학기술·지식·창의력이 국부의 원천이다. 이러한 분야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협력할 경우 오히려 시너지를 낼 수 있다. 따라서 한일 관계도 과거 갈등의 패러다임에서 협력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수 있다. 특히 총리의 말처럼 한국의 응용력·혁신 능력과 일본의 기초과학·정밀함을 결합한다면 굉장한 시너지가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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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야마 전 총리 : 맞다. 과거에는 '일·한·중 분업'이라는 발상도 있었다. 예를 들어 일본이 기초 기술을 담당하고 한국이 중간 부품을, 중국이 최종 조립을 맡는 식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었다. 지금은 일본이 정밀함이나 세세한 부품(소재)에서는 상당히 앞서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조립해 완성품으로 만드는 것은 일본이 한국에 추월당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양국이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며 협력한다면 상호 윈윈하는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백 고문 :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번에 일본이 31번째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것, 특히 물리·화학 등 기초과학 분야에서 많은 수상을 한 점이 부럽다. 도쿄대·교토대·나고야대 등 명문 국립대 연구소에서 수상자가 많이 배출된 것이 특이한데 그 비결이 무엇인가. 우리는 일본이 단기 성과보다는 '장기 과제'에 주안점을 두고 '연구자의 독창성'을 존중하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실제 대학교육 체계나 사회문화적 풍토에 어떤 특징이 있는지 묻고 싶다.
▶하토야마 전 총리 : 물리학 등 기초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아 일본인으로서 매우 기쁘다. 하지만 지금의 수상은 최근 연구가 아닌 10~20년 전 과거의 연구 성과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그 때만 해도 국립대는 장기적인 시야로 나름 윤택한 자금과 시간을 들여 연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대학이 '법인화'되면서 시스템이 바뀌었다. 대학은 스스로 자금을 모으기 어려워졌고 정부도 매년 1~5% 연구비를 삭감하고 있다. 또한 과거의 장기 연구 대신 5년 정도의 '단기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로 인해 우수한 논문 수가 줄어 1위 중국과 2위 미국에 밀려 순위가 하락하고 있다. 지금은 과거 성과로 인정을 받지만 앞으로도 일본이 계속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걱정된다. 일본 정부가 과거 국립대의 장점을 살려 충분한 연구 환경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편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