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정치인 겨눈 여성혐오·디지털 성폭력]② "혐오범죄 가중처벌 법적근거 마련 시급"

여성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젠더폭력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일부 당원이나 특정 정치인의 일탈로 축소하는 인식때문이라고 본다. 실상은 개인 일탈이 아닌 여성의 정치 참여와 발언 자체를 위축시키기 위한 구조적 폭력이라는 것이다. 정치권이 근본적인 대책 마련 없이 개인에 대한 사후 징계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있는 지적이다.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3일 법무법인을 통해 합성물 유포자에 대한 법적 조치 사실을 알렸다. 이 의원의 법률 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오른하늘은 "(합성 음란물 제작·게시는) 여성 정치인의 성을 도구화해 인격과 명예를 짓밟고 사회적 평가를 훼손하려는 악의적 디지털 성폭력"이라며 강력 대응 방침을 밝혔다.
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도 같은 날 성명서를 내고 "이 문제를 단순한 정치적 표현을 넘어 심각한 여성혐오 폭력으로 인식하며 깊은 유감과 분노를 표한다"고 했다.
민주당의 공식 대응은 다소 시간이 지난 뒤였다. 한병도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지난 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중앙당 차원에서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강력한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가해자는 민주당원으로 드러났다. 민주당은 지난 8일 국민소통위원회 명의로 가해자를 고발하고 최고위에서 당원 제명을 의결했다.

정치권에선 당 차원의 대응이 늦은 감이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사건 초기 사실관계 확인과 내부 논의를 이유로 지도부 대응이 지연되고, 논란이 확산해 여론이 악화한 뒤에야 징계와 탈당으로 파장을 줄이는 대응 방식이 되풀이됐다는 것이다. 여성 보좌진 성추행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장경태 무소속(전 민주당) 의원은 피해자로부터 고소당한 지 4개월 만에 검찰에 넘겨졌고 그 사이 자진 탈당했다. 김보협 전 조국혁신당 대변인은 같은 당 강미정 전 대변인에 대한 추행 혐의로 당 윤리위원회에 회부돼 제명됐다.
피해자들은 2차 가해에도 시달린다. 장 의원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피해자를 무고로 맞고소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신원 노출 논란에 휩싸였다. 강 전 대변인은 당 차원의 소극적 대응과 당내 인사들의 2차 가해성 발언에 시달리다 탈당했다. 이 의원도 마찬가지다. 법적 조치에 나선 후에도 합성 게시물이 온라인에 계속 유포돼 2차 가해를 당했다.
남성 정치인에 대한 인신공격과 달리 여성 정치인을 향한 성적 대상화는 구조적이고 비대칭적으로 작동되는 프레임이다.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패턴을 막기 위해선 즉각적이고 근본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개인의 일탈로 치부해 단순 처벌에 그칠 경우 또 다른 피해자를 겨냥한 범죄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여성의 정치 활동을 위축시켜 정치적 다양성 훼손과 민주주의의 후퇴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 의원이 피해를 본 디지털 성폭력은 누구나 쉽게 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훨씬 크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젠더폭력은 피해자를 수치스럽게 만들어 당사자의 활동을 중단시키고 이를 본보기 삼아 다른 여성들도 발언을 축소할 것이라는 사회적 구조를 아는 상태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며 "일반적인 모욕이나 명예훼손, 성폭력 범죄의 차원을 넘어 혐오 범죄로 가중처벌할 수 있는 절차나 법률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