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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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신협운동이 시작된 것은 지난 1960년 부산에서였다. 미국인 메리가별 수녀와 장대익 신부가 27명의 조합원과 함께 출발한 신협은 34년만에 20조원의 자산을 갖춘 세계 3대 조직으로 성장했다. 이 기간 신협은 468만명의 조합원과 1078개의 단위조합을 확보하는 등 거대조직으로 커왔다. 하지만 최근 부실조합 증대와 함께 위상이 퇴보하고 있다는 점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지역기반 금융기관인 새마을금고와 상호저축은행의 예적금은 최근 2년간 각각 11.6%, 34.7% 성장한 반면 신협은 15.6%가 줄어드는 등 외형도 급격 축소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고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키 위해 신협중앙회는 수익성 개선과 국제신협과 연계한 금융사업 강화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또 투명경영 확보도 주요 키워드로 설정했다. 최근 수익모델 개발반을 가동하고 미국, 일본 등 주요 신협국가들과의 교류에 여념이 없는 신협중앙회 임기석 회장을 만나봤다. - 부실조합 문제로 그간 어
한때는 '비리의 온상'쯤으로 인식됐던 조달청은 최근 4년 연속 정부업무평가 최우수기관으로 뽑혔다. '지난해에는 국제연합(UN)으로부터 '공공서비스 상'까지 받았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최경수 조달청장은 이처럼 수년간 이뤄져온 하드웨어 개선에 소프트웨어의 변화를 더하며 '혁신'을 채찍질하고 있다. 재정경제부 세제실, 국세청의 요직을 섭렵한 최청장은 정통 세무관료 출신이다. 세무를 통해 익힌 실물경제지식과 종합적인 정책판단력이 전문 조달 인력들의 실무능력과 궁합을 맞춰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청장은 조달청이 정부 전체의 혁신에 모범이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일방적인 지시전달로 끝났던 지방 조달청장회의는 최청장 취임후 '혁신 사례 발표 및 토론'으로 바뀌었다. "처음엔 괴롭지만 몸에 배면 레벨-업 되는게 혁신"이라고 강조한다. 조달청에서 취급하는 관급 품목수를 2만개에서 5년내 50만개로 늘리려는 구상도 갖고 있다. 물건 가짓수를 느리는게 아니라 다양한 브랜드를 제공할 계획이
뜨겁던 벤처열풍과 코스닥의 봄. 1999년 수많은 벤처창업가와 투자자들을 희망에 부풀게 했던 그 추억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벤처거품이 꺼지고 난 뒤의 불황은 아직도 골이 깊다. 벤처기업 수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계속 줄고 있다. 지난 2001년말 1만1392개로 정점을 이룬 벤처기업 수는 이제 7000여개에 불과하다. 좋을 때는 더 좋게, 안좋을 때는 더 안좋게 미래를 보는게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지금 벤처의 밤은 매우 깊게 느껴진다. 그러나 장흥순 벤처기업협회 회장은 벤처업계가 다시 도약할 때를 맞고 있다고 믿고 있다. 좀더 탄탄한 성장을 위한 `수업료'도 치를만큼 치렀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올해가 벤처산업 재도약을 위한 원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기술집약형 벤처기업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협회가 파악하고 있는 벤처기업 최근 동향은 어떻습니까. ▶기술집약형 벤처기업으로 시장이 재편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벤처가 죽어야 벤처가 산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이팔성 우리증권 사장은 지난 20일 머니투데이와의 `머투초대석' 대담에서 "올해 증권사들은 인수.합병(M&A) 등 지각변동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우리증권도 매물로 나와있는 대형증권사와의 합병 등을 통해 2∼3년내 업계 5위권에 진입하는 전기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 사장은 "그동안 지주회사가 계열출자한도에 묶여 있었으나 지난해 우리은행이 카드사를 합병해 투자 여유가 생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사장은 현재 25개인 우리은행내 점포를 올해 30개 가량을 추가 설치, 은행내 영업소를 50~60개로 늘려 지주회사체제의 시너지효과를 높여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수는 올라도 증권사들의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중개수수료가 낮아졌기 때문에 앞으로 지수가 1000포인트를 넘더라도 크게 나아질 게 없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증권사들의 경영환경이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우리증권의 경우 오프라인 수수료가 0.45%, 온라인 0.1%로 평균 0.3%수준은 됐
남광토건 이희헌사장은 1986년 금융계(기업은행, 동남은행)에 입사해 1998년까지 국제금융기획부와 비서실에 근무하면서 재무 및 기획 등 경영전반에 대한 기본을 다졌다. 은행에서 퇴사한 이후에는 그간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창업투자회사를 운영하며 자금운용 및 투자전략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지난해 7월 남광토건을 인수하기 전 부동산 시행 및 개발회사인 골든에셋플래닝을 운영, 건설업에 대한 기본 공정라인과 생산요소에 대해 경험했다. 지난해 8월 남광토건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사장은 우선 회사의 장점과 회사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점을 파악에 주력했다. 50여개의 토목 및 건축현장을 방문해 직원들과 술잔을 나누면서 토론의 장을 마련, 회사의 발전을 위한 방법 모색은 물론 직원들과의 심리적 거리감도 해소하기도 했다. 취임 6개월을 맞고 있는 이사장은 남광토건이 21세기 인류 회사로 다시 재도약 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 하고 있다. 특히 유능한 인재를 대거 영입하고 조직을 대대적으로 정비하
국내 안경테 시장에서 '서전'은 그 이름 하나만으로 품질을 인정받을 만큼 독보적 위치에 있는 업체다. 뿐만 아니라 '코레이'라는 브랜드로 세계 시장에서도 당당히 자웅을 겨룰 만큼 브랜드력이 있는 회사로 정평이 나 있다. 서전은 주로 OEM에 의존하는 중소기업의 한계를 스스로 거부해 왔을 만큼 브랜드와 디자인 개발에 각고의 노력을 쏟아왔다. 넓은 시각으로 시장을 봐야 한다는 창업주 육동창 회장의 경영방침에 따라 국내에서 명성을 쌓아 정상궤도에 오르는 데 만족하지 않고 세계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지난 93년 뉴욕에서 열린 ‘비전 엑스포’를 통해 '서전'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고 본격적인 수출의 포문을 열었다. 서전이 국내와 해외 시장에서 인정을 받은 원천은 고품질의 고가품으로 승부수를 띄운 데 있다. '안경테도 최고급 명품이 될 수 있다'는 육 회장의 소신은 국내에 고급 안경테를 탄생시킨 밑거름이 됐다. 서전은 국내 최고의 품질을 위해 업계 최초로 하이니켈과 티타늄을 소재로 한 안경테를
서전은 80년대 창업 당시 10만원을 호가하는 안경테를 내놓고 고급 안경테 개념을 도입했다. 지난해에는 업계 최초로 50만원이 훌쩍 넘는 티타늄 제품을 개발해 시장에 선보였다. 한 마디로 앞서가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는 육동창 회장의 소신에 따른 결과다. 55세의 나이로 서전을 세우고 뚝심으로 밀어붙인 결과 서전은 국내 시장에서 '최초'라는 이름을 늘 앞에 달고 다녔다. "남들은 은퇴를 준비 하는 때에 사업을 시작한 만큼 잘 해내야 하고 꼭 그럴 것이라는 믿음을 지녀 왔다"는 육동창 회장. '가지 않은 길'에 도전장을 낸 그였던 만큼 여타 업체가 시도하지 않은 경영으로 서전을 국내 1위 업체로 일궈놨다. 또 코레이(KOURE)란 독자 브랜드로 미국.유럽 등 선진 안경테 시장에 업계 최초로 당당히 문을 두드렸다. 국내 중소기업이 OEM방식에 의존하던 것과는 분명 다른 선택이었다. 그러나 육 회장에게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국내 안경테 시장이 중국산 저가품에 밀리는 현실을 감안해
'서전'이란 브랜드로 안경테 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다져 온 (주)서전은 최근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국내 안경테 시장이 저가품의 경우 중국산에 고가품은 명품 브랜드에 서서히 잠식 당하면서 설 땅이 점차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술력과 품질 외에 앞으로 이 시장을 주도해 나가기 위해서는 브랜드 파워가 필요하다는 것이 육동창 서전 회장의 생각이다. 육 회장은 "일본시장의 경우 이 삼박자를 비교적 두루 잘 갖추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며 "국내 안경산업이 가야 할 길이 이제부터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국내 업계의 선두주자로서 이런 무거운 짐을 짊어질 책임을 느낀다는 육동창 서전 회장을 머투초대석에서 만나봤다. - '서전'은 국내에 고품질의 안경테로 잘 알려져 있는 데 비해 최근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시장 상황이 어떻습니까. ▶ 85년부터 안경테 사업을 시작해 올해로 근 20년째를 맞고 있습니다. 그 동안을 돌이켜 보면 비교적 잘 해왔
부산은행은 심훈 행장 취임 이래 철저한 지역밀착 경영으로 성공한 지방은행의 새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단순히 우량 지방은행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초우량은행으로 발전해 '선진 지역특화 우량은행'으로 성장한다는 전략을 실천하고 있다. 심훈 행장은 "부산은행장에 취임, 장사꾼이 되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뛰어 다녔다"며 "이제 부산은행이 우량은행의 대열에 합류할수 있게 돼 보람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부산은행장에 취임한지 4년이 지났습니다. 소감부터 말씀해 주시죠. ▶지난 4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바쁘게 지냈습니다. 한국은행 부총재로 있다 부산은행장에 취임하면서부터 확실한 영업맨으로 변신하기 위해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때문에 현장경영을 모토로 거의 날마다 거래처를 찾아다니면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히 취임 직후부터 부산광역시 금고은행으로 선정되기 위해 정신없이 다녔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어요. 지난해 연임에 성공할
오호수 증권업협회 회장은 18일 "국내 기관투자자의 위축때문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지난해 벌어간 돈이 삼성전자의 한해 수익보다 많다"며 "국부 유출을 막고 증권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무엇보다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의 주식투자가 법적으로 전면 허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회장은 머니투데이와 가진 머투초대석 대담에서 "증권업계가 올해도 생존을 위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야할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기관투자자의 주식투자 활성화를 위해 증권업계가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올해 증권업계의 화두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모 증권사 사장님은 올해 증권업계 화두가 청산이 될 것이란 말씀도 하셨는데요. ▶올해도 증권업계가 어려운 환경을 헤쳐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과거 증권회사의 수익구조는 시장 매매수수료가 70% 정도로 절대적이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온라인매매의 비중이 70%를 육박하면서 전체 수익중 매매수수료의 비중은 크게 줄었습니다. 특히 각 회사들
오종남 통계청장은 한국 경제 관료중 대표적인 '기획통'이자 '국제통'으로 평가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탁월한 말주변, 그리고 최상급 수준의 영어, 일어 실력을 부인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오 청장은 서울법대를 졸업한 뒤 행정고시 17회로 내무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지만 1977년부터 경제기획원 등에서 기획, 분석, 예산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1989년 동향분석과장때는 관료로선 이례적으로 '한국경제위기론'을 설파, 토지공개념 도입 등 개혁조치없이는 한국경제의 지속 성장이 어렵다는 점을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부동산가격 급등 및 소득분배구조 악화에 대한 대응책으로 도입된 토지공개념 제도는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처분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경제기획, 분석업무만 맡던 오 청장은 1997년 당시 재정경제원 대외경제총괄과장으로 국내 및 대외 양쪽의 경제정책 조정을 맡으며 국제경제쪽으로 시각을 넓혔다. "바랐던 자리가 아니어서 처음엔 서운했지만 결국은 기회였다. 전화위복이 돼 국제
이남우 리캐피탈투자자문 사장(40)은 해외에서 인정받는 증시 전문가다. 외국의 유력 투자전문지인 `인스티튜셔널인베스터' `아시아머니' 등이 한국 최고의 증권분석가로 선정하면서 해외에 얼굴을 알렸다. 현재 CNN CNBC 등 외국 TV방송에 정기적으로 출연하고 있다. 리캐피탈을 설립해 자산운용시장에 뛰어들기 전까지 이 사장은 줄곧 애널리스트로서 경력을 쌓아 왔다. 대우증권 삼성증권은 물론 JP모간 동방페레그린 등 국내외 증권사에서 두루 애널리스트로서 실력을 쌓으며 기업 분석능력을 인정받았다. 이 사장은 학창시절부터 금융 전문가를 꿈꿨다.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 같은 자본시장 전문가가 21세기 파워그룹으로 부상할 것을 예상,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곧바로 유학길에 올라 시카고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취득했다. 유학에서 돌아온 뒤 얻은 첫 직장은 대우경제연구소였지만 곧 대우증권 조사부로 옮겨 본격적으로 애널리스트의 길을 밟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이 사장은 초기 리서치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