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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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파산부 수석부장판사가 이끌고 있는 서울중앙지법은 전국 파산부가 맡은 법정관리 사건 215개 중 3분의 1 정도를 담당하고 있다. 올해 초 부장판사 1명을 충원하고 합의부를 기존 12개에서 14개로 늘리렸지만 쏟아지는 업무량을 감당하기에는 여전히 벅차다. 이 수석부장은 "사건이 많아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26명의 판사들이 업무를 잘 볼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는 게 전부"라며 겸손함을 표했다. 그는 "사건을 결정을 할 때 힘든 부분이 있지만 1년 이상 근무하면서 그렇게 힘들다는 생각은 안했다"며 "파산부 판사님들이 전문성이 있고 업무 의욕이 있는 분들이라 업무처리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 수석부장은 동기들 사이에서 '도덕 교사'라고 불릴 정도로 원칙을 중요시하는 판사로 유명하다. 그는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로 재직하던 2006년 12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 의혹을 받았던 정몽구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을 구속한 장본인이다. 당시 재벌 회장의 구
"기업 경영에 실패했다고 해서 모두가 부도덕하거나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닙니다." 이종석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수석부장판사(52·연수원 15기)는 자금난을 겪다 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에 대해 이렇게 꼬집었다. 이 수석부장은 "파산제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며 "우리는 '빚을 진다'는 것을 부도덕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미국은 빚에서 탈출해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3별관 301호 집무실에서 진행된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를 통해서다. 지난해 2월부터 파산부를 이끈 이 수석부장은 기업회생절차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사라질 수 있도록 사회의 인식이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 들어 서울중앙지법에 신청된 기업의 법정관리 건수는 모두 136건이다. 2008년 연간 신청 건수(110건)의 두배를 훌쩍 넘는 수치다. 특히 부채 규모가 500억원 이상
재무부 출신 경제관료에서 국가브랜드위원회 사업지원단장, 여수세계박람회 사무총장까지. 김근수 여신금융협회장의 경력은 다채롭다. 금융에 뿌리를 두면서도 굵직한 국가 사업을 이끈 대외업무 경험 덕분에 김 회장은 협회장에 적합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업계와 금융당국 사이에서 가교역할이 중요한 협회의 무게중심을 균형있게 잡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경제관료 출신으로서는 이색경력을 가진 김근수 회장이 취임과 동시에 강조하고 나선 것은 바로 '브랜드 가치 제고'다. "여신금융협회가 하는 일을 금융소비자들에게 알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협회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회원사와 소비자들이 활발하게 이용해야 의미가 있지요." 김 회장은 과거 국가브랜드위원회에서 일하면서 외부와 소통하고 알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여수세계박람회 사무총장으로서 보여준 추진력과 기획재정부 국고국장 당시 기획력은 업계가 김 회장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다. 김 회장은 지난해 여수세계박람회가 흑자를 내는데 중
"금융당국과 회원사의 가교로서 여신금융업계에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하도록 하겠습니다. 여신금융협회가 '씽크탱크'로서 성장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취임 80여일을 맞이한 김근수 여신금융협회장은 취임 후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카드사와 할부금융사 등 66개 회원사 대표이사(CEO)들을 만나 업계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금융당국과도 소통의 끈을 조였다. 그리고 우선순위를 정했다. 규제완화와 연구기능 강화다. 우선 업무범위에 대한 규제완화를 추진한다. 여신금융회사는 현재 '포지티브(positive)' 방식의 업무규제를 받고 있다. 허용되는 업무만 나열하는 방식이다. 금융권에서 포지티브 방식의 업무제한을 받는 곳은 여신금융회사가 유일하다. 김 회장이 "타 업권과 비교해도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에 따라 김 회장은 불가능한 업무만 기재하는 '네거티브(negative)' 방식의 규제완화를 꾸준히 제안하고 있다. 김 회장은 "창의적으로 자꾸 실험할 수 있게 하는 방향이 창조경
-노사정, 조속합의 보단 지속가능한 합의가 중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 고용확대에 에너지 집중해야 -노동자는 약자지만 대기업 노조는 약자 아냐 '자본주의 이행논쟁'(동녁, 1981)은 군부독재 시절 운동권 학생들의 필독서였다. 자본주의를 탄생의 동력을 두고 모리스 돕과 폴 스위지가 벌인 역사적 논쟁을 통해 젊은이들은 대한민국 사회의 '모순'을 연구하고 변혁의 주체를 고민했다. 80년대 대표적인 '금서' 였던 이 책을 편역해 국내에 자본주의 이행논쟁의 불을 붙인 사람이 김대환(64) 노사정위원장이다. 진보적 노동경제학자이자 대표적인 현실참여 지식인으로 꼽히던 그가 박근혜 정부의 경제사회 발전 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의 수장(장관급)으로 돌아왔다. 2004년 참여정부에서 노동부 장관까지 지낸 그가 박근혜 대통령의 노사문제 '해결사'자리를 마다 하지 않은 것은 '변절'일까 '희생'일까. 가족들부터가 극구 말렸다는 자리를 받아들인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노사관이나 사회경제적 약자에 대한
안희정(49) 충남도지사는 노무현 참여정부 실세로 불렸다. 한국 정치사의 대표적인 486세대로 노 전 대통령의 영원한 정치적 동업자에서부터 리틀 노무현 등의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노무현 정권의 최고 실세 중 한사람, 노 대통령이 가장 신뢰한 핵심 참모였지만 청와대로 가지 않고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이란 한직을 맡아 그림자 역할을 했다. 노 대통령 서거시엔 한명숙. 이해찬 전 총리 등 친노인사들과 상주를 맡았다. 그는 1964년 충남 논산군 연무읍 마산리 '철물점'의 2남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대전으로 유학해 남대전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5.18광주민주화항쟁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에 의문을 품었다는 이유로 계엄사에 끌려 간뒤 6개월만에 중퇴했다. 이후 1982년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고려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대학시절에도 고려대 애국학생회 사건과 반미청년회 사건 등에 연루돼 옥살이를 했다. 1989년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의 비서실장이었던 김덕룡 국회의원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20여년 피워오던 담배를 최근 끊었다. 이유를 묻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한다. "여기 새 도청 건물이 금연 건물이에요. 그런데 도지사란 사람이 이를 어기고 담배를 피울 수는 없잖아요." 안희정답다. '신뢰'와 '원칙', '약속'을 중요시하는 그의 성격이 묻어나는 듯하다. 민선 5기 '안희정 충남도호(號)' 출범 3년차를 지나면서 도민들로부터, 특히 아주머니 유권자들에게 인기가 높다는 말이 들리던데 그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신뢰 때문이 아니겠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저야 뭐 행복하죠... '도지사 못 쓰겠다 '이런 얘기 들리는 것 보다는 좋다고 해주시니 행복할 따름입니다. 아마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했던 참여정부 시절 간접적으로 나마 참여했던 국가살림 경험이 도민들과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가장 큰 밑천이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안 지사는 내년 6월 있을 지방선거에서 재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는 지난 선거 당시 42%의 지지를 얻었다. 반
"하루에도 수십번씩 나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주주로서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기업을 찾아 투자하는 사람이다. 이 사실을 잊지 않고 주주 관점에서 세상을 보려고 늘 이 질문을 가슴에 담고 삽니다."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사진)은 고객들이 맡긴 돈을 소홀히 다루지 않고 단 한 푼이라도 더 불리기 위해 깨어있는 동안 이렇게 정신무장을 한다. 강 회장은 전남 신안군 암태도라는 작은 섬에서 태어났다. 호기심 많았던 꼬마에게 유일한 낙은 섬에서 라디오가 나오는 약방 앞에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오면 벽 한구석에 붙여놓은 지도에서 뉴스에서 들었던 지명을 찾아보며 상상의 세계로 떠나는 것을 즐겼다. 무탈한 청소년기를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회계학에 흥미를 느껴 이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주식 전문가가 되겠다는 생각에 덤벼든 분야는 아니었지만 이때 익힌 회계학 지식은 훗날 그가 펀드매니저로 이름을 날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강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의 설립 후 지난 5년간 성과는, 규모를 따지는 사람들에겐 하찮게 보일 것이다. 출시한 지 5년 된 3개 주식형 펀드의 총 설정액은 1181억원에 불과하다. 설정액이 1조원이 넘는 공룡 펀드가 20개를 넘어가는 상황에서 초라한 성적표다. 하지만 에셋플러스가 지난 5년간 거둬온 성공은 작지 않다. 어떤 은행이나 증권사도 통하지 않고 펀드를 직접 판매해 꾸준히 설정액을 늘려온 점, 5년간 펀드를 키워오며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물려줄 수 있는 펀드’를 만들자는 목표를 충실히 실행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판매 채널 없이 설정액을 늘려올 수 있었던 것은 수익률이 좋다는 입소문과 강방천 에셋플러스 회장(54· 사진)의 발로 뛰는 고객과의 소통 덕분이었다. 코리아리치투게더와 글로벌리치투게더 펀드는 5년간 누적 수익률이 78.6%와 60.6%에 달하고 수익률이 가장 저조한 차이나리치투게더 펀드도 5년간 16.3%를 성과를 올려 벤치마크인 MSCI 중국 지수(-12.3%)를 크게
"국가 지원으로 유학을 다녀왔습니다. 이제 제가 국가에 보은할 때입니다." 지난 4월 국가 최고기술책임자(CTO)로 불리는 산업통상자원부 R&D전략기획단 수장이 된 박희재 단장은 향후 3년의 임기 동안 무보수로 근무하기로 한 배경을 이같이 설명했다. 박 단장은 1961년 경기 김포 출생으로 서울대에서 기계설계학과 학사 및 석사를 마쳤다. 이후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 영국 맨체스터대(UMIST)에서 기계공학과 박사를 받고 1993년부터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8년 외환위기(IMF)는 박 단장의 인생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됐다. 그는 당시 1달러가 2000원까지 가는 상황을 보며 한국의 현실을 개탄했다. 기계공학이라는 분야에서 전 세계를 이끄는 그룹에 속해있으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부끄럽게 생각했다. 박 단장은 외환위기 원인을 무역적자로 파악했다. 완제품은 국내에서 생산하지만 기계와 부품, 재료 등 대부분을 미국과 유럽, 특히 일본에서 수입해야
"한국이 그동안 대기업 중심으로 성장했다면 앞으로는 중견중소기업이 그 성장을 이끌게 될 것입니다. 중견중소기업들이 글로벌 전문기업(히든챔피언)으로 도약하도록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적극 지원할 계획입니다." 지난 4월 국가 최고기술책임자(CTO)로 불리는 산업통상자원부 R&D(연구개발)전략기획단 2기 단장에 오른 박희재 에스엔유프리시젼 대표(이하 단장)를 만났다. 임기 3년 동안 '무보수'로 중책을 수행키로 선언한 박 단장으로부터 향후 3년 동안의 계획을 들어봤다. ◇대담=송정렬 중견중소기업부 부장, 정리=강경래 기자 -2기 단장이 된지 100일이 조금 넘었다. 먼저 R&D전략기획단이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해달라. ▶기획단은 황창규 전 단장(전 삼성전자 사장)을 1기로 2010년 6월 출범했다. 역할은 크게 △우리나라 R&D 컨트롤타워 △미래 먹을거리 창출 등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싱크탱크'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올해 4월 2기가 시작됐다. 2기는 지
현오석 경제부총리와 마주 앉은 것은 지난 25일 오후 5시30분. 무더위가 한창일 때다. 아침부터 대외경제장관회의, 외빈 면담, 각종 보고 등 빼곡한 일정을 소화했지만 피곤한 기색은 없었다. 얼굴은 밝았고 목소리엔 힘이 실렸다. 인터뷰 내내 질문을 기다리기보다 먼저 입을 뗐다. '긍정의 힘'을 전제로 한 정책 설파였다. '리더십 논란'의 고비를 넘긴 뒤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이다. 실제 정책적으로 자신감을 갖게 할 행보가 이어졌다. 지난 19일 관계장관들을 불러 취득세 영구 인하 방침을 확정했다. 곧이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G20재무장관회의 때는 '출구전략 속도조절론'을 공동선언문에 담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3일 국무회의에서 현 부총리를 재신임했다. 경제부총리를 비롯 경제팀에 쏟아졌던 정치권과 여론의 비판도 잠잠해졌다. 그런데다 인터뷰 당일 나온 2분기 경제성장률 성적표도 괜찮았다. 현 부총리의 스타일은 분석적이다. 어떤 질문이 나오건 3가지, 2가지 등으로 정리해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