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총 1,441 건
최근 대학에선 증권 동아리가 붐을 이루지만 1970년 말엔 정말 드물었다. 하지만 정치적 암흑기에도 시장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청운의 꿈을 품은 청년은 있었다. 20대 초반 대학 증권학회 멤버로 시작해 증권사 CEO(최고경영자)에 오른 강대석 신한금융투자 사장이 주인공이다. 그는 남보다 일찍 국내증시의 변천사를 지켜본 게 증권맨으로서 가장 큰 자산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뼛속까지 증권맨인 그에겐 남다른 이력이 있다. 80년 그의 첫 직장은 증권사가 아닌 은행이었다. 안정된 최고 직장에서 8년. 하지만 80년대 말 서울올림픽 전후 유례없는 강세장을 그냥 지켜보기만 할 수 없었다. 기회였다. 그는 '증권쟁이'가 되기 위해 30대 늦깎이로 당시 신한증권에 이직했다. 이직 후 과열됐던 시장은 이내 곤두박질쳤다. 90년대 초 신한증권 동두천지점은 적자가 지속되면서 폐쇄 위기에 몰렸다. 강 사장은 동두천지점을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다. 서울 상도동지점으로 자리를 옮긴 후엔 다시 1년 만에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傳). 언어나 경전에 따르지 않고 이심전심으로 전하는 오묘한 진리를 말한다. 석가가 제자 가섭에게 말없이 마음으로 불교를 전수한 데서 유래했다. 강대석 신한금융투자 사장이 증시 초유의 불황에서 직원들과 함께한 지난 1년2개월은 '불립문자 교외별전'의 시간이었다. 신한금융투자의 첫 증권 출신 CEO(최고경영자)인 강 사장은 증시의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멘토로서 직원들을 밀고 끌었고 직원들은 선배를 믿고 묵묵히 따라왔다. 국내증시의 거래대금이 절반으로 줄어들며 전 증권사가 고전하고 있지만 신한금융투자는 어느 때보다 공격적이다. 2015년까지 전 영업부문에서 업계 '톱5'에 진입하겠다는 꿈은 가시화되고 있다. 강 사장은 "전 국민의 은퇴를 책임지고 해외상품의 명가가 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 지난해 2월 지주회사 출신이 아닌 신한금융투자 출신으로 CEO를 맡아 기대도 컸고 어깨도 무거웠을 듯합니다. 만족할 만한 변화는 어떤 게 있었나요. 취임 후 생존
원소 주기율표와 세계사 연대기 표, 그리고 중용(中庸)이란 붓글씨. 경기도 판교의 테크노밸리에 있는 다산네트웍스의 남민우 대표실은 다른 CEO(최고경영자)와 다른 것이 방문객을 맞는다. ☞고졸만 공채 '파격', 남민우 벤처기업협회장은? "원소주기율표는 우주만물을 설명하고, 역사는 통계자료의 종합으로서 우리가 나아갈 길을 밝혀주며,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정신이 필요하다"는 남 대표. 지난 2월10일, 10대 벤처기업협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박근혜정부가 핵심과제로 제시한 '창조경제'의 전도사로 하루 24시간을 30시간 이상으로 쪼개 쓰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벤처 활성화를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코스닥시장 정상화"라고 강조하는 남 회장을 만나 창조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들어봤다. ◇창조경제='Beyond Innovation 경제' -새 정부의 국정운영 철학인 창조경제에 대해 왈가왈부가 많다. 무엇이 창조경제인가? ▶창조경제는 시장에서 창조가치가 존중받고 극대화되는 경제다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사진)은 친박계 핵심으로 분류된다. 친박계 가운데 처음으로 입각하다보니 '실세 장관'이란 얘기도 흘러나온다. 이에 대해 유 장관은 "친박이다 아니다는 것은 이미 의미없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어떠한 정치적 고려보다는 전문성을 높게 평가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 유 장관은 내무부 관료 출신으로 최연소 구청장(인천 서구)과 김포군수, 민선 김포시장(연임)을 지낸 '행정전문가'다. 국회에서도 행정자치위원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지방행정체제개편특별위원회 등에서 활동했으며 이명박 정부에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물론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는 부분도 작용했을 것이란 평가다. 유 장관은 2005년 초선 의원 당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에 발탁됐다. 당시 입이 무겁고 일처리가 진중해 박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고 대통령직인수위에서도 취임식준비위 부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하지만 유 장관은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공유한다는 점이 국
"국민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부처명까지 바꿨는데 실제 현장에서 보니 챙겨야 할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고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11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만난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사진)은 최근 방문한 현장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곳으로 서울 중구의 '쪽방촌'을 꼽으며 이같이 말했다. 장관 임명 전부터 염소가스 누출사고가 난 경북 구미와 어선 침몰사고가 발생한 전남 진도를 직접 찾아 '현장 행정가'의 면모를 보여줬던 유 장관은 취임 이후에도 변함없이 현장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바다에 뛰어든 시민을 구하려다 경찰관이 실종된 '인천 강화군', 학교폭력 예방대책 간담회가 열린 '서울 구로고', 일선 복지담당 공무원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찾은 '서울 성동구의 도선동주민센터',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입주공무원들을 만난 '세종청사' 등이 그동안 찾은 현장들이다. 유 장관은 "바람직한 정책 추진은 현장을 정확하게 점검·확인해 이를
'부산과 대한민국, 금융' 이 세 단어를 빼고는 김정훈(56) 국회 정무위원장을 설명하기 힘들다. 부산 남구갑에서 내리 3선을 한 김 위원장의 '지역 사랑'은 정평이 나 있다. 중진의원으로 대한민국의 금융과 공정거래를 책임진 정무위를 맡고 있으면서도 부산과 자신의 지역구인 남구갑의 현안을 소홀히 한 적이 없다. 동남권 신공항, 해양금융공사 유치 등 굵직한 현안 마다 선봉에 섰다. 그의 관심은 지역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 매개에 '금융'이 있다. 부산을 해양금융과 파생금융 등 특수금융의 '메카'로 키워 부산 경제를 살리고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도 토대를 만들겠다는 것이 정치인 '김정훈'의 포부다. "세계적인 해양항만 도시들은 대부분 금융 산업이 발달했으며, 부산도 금융을 함께 키워야 세계적인 도시가 될 수 있다. 그래야 한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김 위원장은 이를 위해 부산 문현금융중심지를 발전시키는데 앞장서 왔고, 최근에는 카이스트 금융전문 대학원을 이곳에 유
태산불양토괴(泰山不讓土塊). 태산은 한 줌 흙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고전의 수많은 명문장 중에서도 포용의 힘을 강조할 때 빠지지 않는 글이다. 또 다른 의미가 있다면 '이 방법은 이래서 안되고, 저 방법은 저런 부작용이 있다는 이유로 시도조차 하지 않고서 어떤 현안이든 제대로 풀어내기 어렵다'는 교훈이 아닐까. 지난 4일 찾은 국회 의원회관 7층 김정훈 정무위원장 사무실 입구에 이 여섯 글자를 담은 자그마한 액자가 눈에 띄었다. 국회 정무위는 금융위원회와 공정거래위 업무를 감시하고 관련법을 만든다. 금융선진화는 물론, 금산분리 등 경제민주화 사안을 직접 다루고 있어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한다. 이 같은 정무위를 무난히 이끌어 온 김 위원장에게 '태산불양토괴'의 지혜를 들었다. -대형 IB 육성을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이 지연돼 왔습니다. 업계에서는 이 법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 기획재정부는 파생상품 거래세 부과로 추가세수를 기대하고 있는데요. ▶자본시장 개정은
2009년 내놓은 '바다와 대학'이란 저서가 홍승용 덕성여대 총장(64)의 인생을 잘 대변해 준다. 고려대 상대를 나온 그는 석사과정부터 해양경영학 분야를 파고들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부설 해양연구소 해양정책 연구실장, 한국해양연구소 해양정책 연구부장 등을 거쳐 1997년에는 해양수산개발원 원장에 올랐다. 인생의 전환점은 1999년에 한 번 찾아왔다. 해양수산부 차관을 맡은 것. 해양경영 전문가로서 1980년대 초부터 15년간 각 분야 인사들과 함께 해양수산 관련 통합행정의 필요성을 역설해 온 결과 관료로 변신하게 됐다. 3년여 동안 차관직을 수행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정치인 장관 5명을 모셨다. 재임 중 국민들의 우려가 컸던 한중 어업협정, 한일 어업협정 개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차관을 떠나서는 대학과 인연을 맺었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7년여 동안 인하대학교 총장을 맡은 것. 아시아의 MIT를 비전으로 CEO 대학총장을 표방했다. 취임 당시만 해
돌이켜 보면 도전의 연속이었다. 연구원에서 관료로, 관료에서 총장으로, 총장에서 사장으로…. 사장을 벗어던지니 다시 위원장이란 벽이 막아섰다. 뚫고 나아갈 것인가, 못 본 척 돌아갈 것인가. 2011년 6월, 고려대 기술지주회사 대표이사직을 막 그만둔 홍승용 전 해양수산부 차관은 대한민국 역사상 그 누구도 맡아본 적이 없는 '교육과학기술부 대학구조개혁위원회 위원장'이란 자리를 수락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렇다 할 보수도 없고, 욕만 많이 먹는 자리였다. 하지만 회피할 수 없었다. 해양수산부를 떠난 이후 인하대 총장 등 대학에 10여년 간 몸담으면서 대학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절감해 온 터였다. 대학을 사랑하면서도 대학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이가 맡아야 할 자리였다. 회의는 수시로, 치열하게 열렸다. 마침내 정부 재정지원 제한대학 43곳이 지정됐다. 이른바 부실대학들이다. 17곳은 학자금 대출까지 제한됐다. 하지만 학생모집에 문제가 없는, 전통과 명성이 있는 대학들도 일
뭐든지, 진짜 뭐든지 헷갈리거나 모를 때. 농담처럼 혹은 진지하게 우리는 "아무개 형님에게 물어봐"라는 답을 한 번쯤은 한다. 이 형님의 이름은 '네이버'다. 이런 질문은 어떨까. "우리나라에서 삼성, LG, SK 그리고 카카오 임원을 배출한 기업은?" 네이버에 물어봐도 안 나오는 정답은 바로 네이버서비스를 제공하는 NHN이다. 10여년 전, 대기업의 작은 사내벤처로 출범했으나 지금은 시가총액 규모 13조원, 매출 2조3000억여원, 영업이익 7000억여원에 달하는 기업으로 컸다. 자회사 및 해외인력까지 합하면 총 직원수는 6000여명이다. NHN 출신들을 '사회관계망'으로 그려보면 대기업과 신흥벤처기업 인맥의 중심이 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이 통하는 곳 네이버. 하지만 비난도 많이 받는다. 대표적인 비난이 '벤처 죽이기'다. 언제부터일까. 왜일까. 도대체 NHN은 무엇인가. 지난 22일 NHN의 경기 분당사옥 '그린팩토리'에서 만난 김상헌 대표는 "'인터넷은
지금은 많이 얌전(?)해졌지만 신창연 여행박사 사장(50·사진)은 몇 년 전만해도 1년에 2∼3개월 정도는 다리가 부러져 있곤 했다고 한다. 속도위반을 했다하면 시속 200km를 넘기기 일쑤였고, 스키도 회전보다는 무한 질주인 활강이, 등산보다는 암벽타기가 제 맛이라고 믿는 그였다. "유고시를 대비해 사장 권한 대행을 둬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독 위험한 스포츠만 즐겼다. 그는 2006년 실제로 사장 권한 대행을 세웠다. 권한 대행을 만든 이유는 또 있다. 여행박사만의 독특한 사장 재신임 투표제 때문이다. 신 사장 스스로가 회사 지분을 22% 보유한 최대주주지만 그는 매년 직원들에게 "내가 내년에도 사장을 계속 해도 되겠느냐"며 전 직원 워크샵(11월)에서 투표를 실시한다. 이 투표는 과반수이상 득표 방식이 아니라 재신임 찬성률이 70%를 넘어야 한다. 신 사장은 "만약 직원들이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나를 재신임해주지 않으면 그때 누군가 사장을 대신해야 하는 것
신창연 여행박사 사장(50·사진)은 경북 문경 산동네에서 6남매 중에서 다섯째로 태어났다. 형제는 많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마친 뒤 고등학교에는 진학하지 못했다. 신 사장은 무작정 상경해 친구 집에 얹혀살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하지만 10대 후반인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구두닦이, 포장마차뿐이었다. 하루하루 힘들게 일했지만 생활은 여전히 궁핍했다. 20세가 되면서 대학에 진학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검정고시에 합격해 군 제대 후 경원대 관광경영학과를 다녔다. 졸업을 앞둔 1990년 아주관광여행사에 입사했지만, 직장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여행사들이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 여행코스를 '패키지 상품'에 넣는 관행이 싫었다. 매번 패키지 상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그는 어느 덧 회사에서 천덕꾸러기가 돼 있었다. 신 사장은 입사한 지 2년이 채 안돼 아주관광 계열사인 한국고속해운으로 좌천됐다. 하지만 그곳에서 귀한 자산을 얻었다. 한국고속해운은 부산에서 출발하는 일본 뱃길여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