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늦깎이 증권맨 입문, 맡은 지점마다 1위 릴레이

30대 늦깎이 증권맨 입문, 맡은 지점마다 1위 릴레이

김희정 기자, 사진=임성균 기자
2013.04.16 06:55

[머투 초대석] 강대석 신한금융투자 사장은…

최근 대학에선 증권 동아리가 붐을 이루지만 1970년 말엔 정말 드물었다. 하지만 정치적 암흑기에도 시장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청운의 꿈을 품은 청년은 있었다.

20대 초반 대학 증권학회 멤버로 시작해 증권사 CEO(최고경영자)에 오른 강대석 신한금융투자 사장이 주인공이다. 그는 남보다 일찍 국내증시의 변천사를 지켜본 게 증권맨으로서 가장 큰 자산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뼛속까지 증권맨인 그에겐 남다른 이력이 있다.

80년 그의 첫 직장은 증권사가 아닌 은행이었다. 안정된 최고 직장에서 8년. 하지만 80년대 말 서울올림픽 전후 유례없는 강세장을 그냥 지켜보기만 할 수 없었다. 기회였다.

그는 '증권쟁이'가 되기 위해 30대 늦깎이로 당시 신한증권에 이직했다. 이직 후 과열됐던 시장은 이내 곤두박질쳤다. 90년대 초 신한증권 동두천지점은 적자가 지속되면서 폐쇄 위기에 몰렸다. 강 사장은 동두천지점을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다.

서울 상도동지점으로 자리를 옮긴 후엔 다시 1년 만에 사내 전국 업적평가 1위로 올려놨다.

인사부장은 어느 조직에서든 욕심나는 자리다. 특히 증시 불황으로 영업이 수월치 않을 땐 영업의 달인들도 본사 지원이나 관리직으로 남길 바라는 게 일반적이다. 강 사장은 IMF외환위기 직후인 98년 인사부장 자리를 박차고 다시 영업현장에 뛰어들었다. 증권사 영업의 최대 승부처인 강남, 그중에서도 압구정에서 진검승부를 펼쳤다. 강남 부자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전 증권사가 혈안이었다. 1년 후 강 사장이 맡은 압구정지점은 전 증권사를 통틀어 영업실적 1위에 올랐다.

2003년 굿모닝신한근증권 리테일본부장(부사장)을 끝으로 2005년 KT뮤직 대표를 맡으며 시장을 첫 번째 '외도'를 했다. 2010년엔 신성투자자문 대표를 맡아 자문사까지 섭렵했다. 지난해 2월 강 사장은 그간의 외도를 마치고 신한금융투자 최초 증권사 출신 사장으로 복귀했다. 2015년 전부문 업계 '톱5'에 들겠다는 비전으로 조직정비를 마쳤다.

지난해 증권업계에 구조조정 칼바람이 부는 가운데도 내로라하는 업계전문가들을 포섭해 리서치와 상품설계, 운용을 대폭 강화하며 공격적 행보를 보였다.강 사장은 "모든 증권사가 힘든 상황이지만 지금보다 더 어려웠던 시절도 많다"며 "충분히 기회로 삼아 전화위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약력△1958년 충남 천안 출생 △성남고 △서울대 경영학과 △1980년 외환은행 입행 △1988년~2002년 신한증권 △2002~2005년 굿모닝신한증권 기획본부장(상무)·리테일본부장(부사장) △2005년~2010년 KT뮤직 대표 △2010~2012년 신성투자자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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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기자

안녕하세요. 스토리팀 김희정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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