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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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시장이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럽발 금융위기 등에 따른 부정적인 경제동향과 '더 떨어지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이 부동산 구매와 투자심리를 급격하게 얼어붙게 만든 탓이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하우스 푸어(house poor)', '가계 부채 확대' 등의 우려를 낳으면서 사회·경제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 서종대 사장(사진)은 "하반기에는 주택경기가 바닥을 찍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서 사장은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 주택정책과 과장, 주택국 국장, 주거복지본부 본부장 등 20년 이상을 주택금융에 몸 담아온 전문가다. 그는 수도권 주택은 이미 상당 기간 조정 기간을 거쳤고, 또 전세가격 상승으로 매매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관측했다. 실제로 지난 7월 기준 수도권 아파트의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51.03%로 지난 2003년 이후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 사장은 실수요자가 많다는 확신도 했다. 그는 "일반가구 중 향후 집을 구입할 의향이
최진석 STX솔라 사장은 라인 개조와 공정 개선 등을 통해 생산속도를 높이고 생산효율을 높이는 '생산능력 확대'(Capacity up)에 탁월한 역량을 갖고 있다. 그래서 '반도체 공정의 달인'으로 불린다. 삼성그룹에서 한번 받기도 힘들다는 '자랑스런 삼성인상'의 기술상를 3회나 수상했다. 삼성전자를 떠나, 경영난을 겪고 있던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로 옮겨서도 엔지니어들에 대한 혁신 교육을 통해 개별 공정 별로 공정 속도를 분석해 모든 라인의 속도를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새롭게 장비를 사는 대신 기존의 장비를 개선하고 공정을 효율화시켜 삼성전자보다 먼저 80나노 공정에 돌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 때문에 이건희 삼성 회장이 격노해 삼성전자 최고 경영진을 경질하기에 이르렀다는게 유명한 일화로 전해진다. 지난 1984년 삼성전자에 입사했으며 2001년 퇴사할 때까지 18년 간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성장시킨 주역으로 인정받았다. 2003년 당시 채권단
-태양광으로 제2 한강의 기적 꿈꾸는 '반도체 달인' -반도체 태양광 둘다 '실리콘 산업'.."사이클 견디면 기회온다" 최진석 STX솔라 사장은 반도체 바닥에선 '반도체 공정의 달인'으로 불렸다. 삼성그룹에서 한번 받기도 힘들다는 '자랑스런 삼성인상'의 기술상를 세 번이나 받았다.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를 살려낸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30년간 '반도체 맨'으로 살아온 최사장이 지난해 말 태양광 발전설비 기업인 STX솔라로 자리를 옮겼다. 반도체와 태양광? 둘을 묶는 공통분모는 원재료인 '실리콘'이다. 최사장에게 태양광은 반도체에 비해 훨씬 단순한 실리콘 산업일 뿐이다. '실리콘 맨' 최사장이 태양광 시장을 헤쳐나가는 전략은 단순하다. 바로 '생존'이다. 반도체산업처럼 사이클을 견뎌내고 살아남으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지금 전세계 태양광 발전설비 시장에서 살아남은 곳은 중국, 대만, 한국 뿐이다. 이대로 가면 다음으로 죽을 곳은 한국이다. 기술 장벽을 빨리 끌어올리
"강자의 독식을 완화시키고 약자를 배려하겠다." 지난 3월 KT스카이라이프 대표이사에 취임한 문재철 사장(사진)이 밝혔던 취임 일성이다. 평소 '상생이 시대정신'임을 강조해 온 문 대표는 중소 콘텐츠 제작업체에 대한 지원 정책에 관심이 많다. 문 대표의 이같은 생각은 20여년 기자생활, 벤처CEO, 통신회사 임원 등을 두루 거치면서 다져졌다. 문 대표는 1958년 대구 출생으로 서강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한 뒤 대학 학보사 편집장을 거쳐 81년 KBS 기자로 입사했다. 사회부, 정치부 등 대부분 기자 생활을 현장에 몸 담았던 만큼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고민을 나누면서 상생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워싱턴 특파원 부임 직전인 93년에는 청와대를 출입하며 지켜봤던 일을 당시의 취재수첩과 자료,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밝힌 6共(공)의 정치·경제·사회적 비화 '청와대 비밀메모'를 집필했다. 이 책은 당시 미국 교민사회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이후 95년 KBS를 나와 YTN에 합류했고
아파트에 주황색 접시가 처음 등장한 10년전. 기존 안테나와는 전혀 다른 접시 모양의 '디지털위성방송' 수신 안테나는 '부'의 상징이었다. 올 6월말 이 접시를 단 가구는 무려 346만여가구로 늘어났다. 디지털위성방송이 그만큼 대중화된 것이다. 개국 10주년을 맞은 KT스카이라이프도 이용가구수 증가만큼이나 성장했다. KT의 자회사로 편입됐고, 상장을 통해 시장에서 기업가치를 평가받게 됐다. 하지만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다. 케이블TV사업자가 주도하던 유료방송 시장의 한축을 맡으며 치열한 경쟁상황에 놓였다. 올 3월 취임한 문재철 사장(사진)이 금방이라도 '전쟁터'에 나갈 태세인 이유다. 문 사장은 취임 이후 업무 중에는 늘 설치기사들이 입는 작업복 차림이다. 집무실 옷걸이에 걸려있는 모자에는 '400만 돌파'라는 글귀가 새겨져있다. 연말 가입자 목표를 문 대표가 한 땀 한 땀 수를 놓았다. 신임 사장의 열정에 부응이라도 하는 듯 6월 한달간 늘어난 가입자는 5만명 이상. 하지만 KT
경제예측 연구소인 HS덴트를 운영하는 해리 덴트(사진)는 한국의 부동산 가격이 이전 수준을 회복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 경제가 2022~2023년까지 부진한 양상을 이어가는데다 이후 세계 경제가 다시 호황기에 접어든다 해도 한국은 낮은 출산율과 빠른 고령화로 새로운 성장에 동참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덴트는 인구구조의 변화에 따라 1980년대 일본의 버블 붕괴와 1990년대 미국 경제 호황을 정확히 예측해 명성을 얻은 경제 전문가이자 펀드매니저이다. 미국 플로리다주 탐파에 사무실을 두고 활동하고 있는 덴트와 1시간에 걸친 전화 인터뷰를 통해 향후 10여년간 전세계 경제와 더불어 한국 경제의 미래를 들어봤다. -세계 경제가 향후 10년간 성장세가 둔화되거나 일부 지역은 정체 상태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2차 위기가 닥칠 것이다. 지난 2008년 1차 위기 때 도화선은 미국의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이었다. 2차 위
'생명존중 보험복지(生命尊重 保險福祉).'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 김규복 생명보험협회장(사진)의 집무실에는 이런 문구가 적힌 액자가 마주보고 걸려 있다. '생명존중 보험복지'는 김 회장 취임 후 사내 공모를 거쳐 결정한 협회 '회훈'이다. 각종 보장을 통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생명존중', 즉 보험의 기본 사상이라면 이를 통해 복지사회를 구현토록 하자는 의미다. '세한연후…'는 세한도에 나오는 문구다. '세월이 차가워지고 난 후에야 송백이 푸르고 늦게 시듦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김 회장은 이를 생명보험식으로 의역, '어려움이 닥친 후에야 보험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고 풀이했다. 정말 어려울 때 도움을 준다는 생명보험의 이념과 뜻이 통한다고 생각해 걸게 됐다는 설명이다. 김 회장은 이 같은 생명보험의 본령이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지난해 12월 생명보험협회장에 취임한 뒤 고객 신뢰도 제고를 무엇
"흔히 연금의 3층 구조(정부·개인·기업)를 말하는데 우리는 이 구조가 취약합니다. 은퇴가 시작된 베이비부머세대(1955~1963년 출생)만 봐도 그렇습니다. 퇴직연금과 국민연금만으로는 충분한 노후소득을 보장받기 어려운 현실이에요. 베이비부머 등이 건강하고 안정적인 노후를 보낼 수 있으려면 개인차원에서의 준비가 절실합니다. 정부에서도 3층 보장의 한 축인 개인연금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이른바 '100세 시대'가 다가오면서 은퇴 후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노후준비가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김규복 생명보험협회장의 화두 역시 다르지 않다. 그는 "100세 시대, 고령시대를 맞아 이보다 더 중요한 화두는 없다"며 '보험 얘기'를 꺼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개인연금, 그중에서도 '종신토록 연금이 지급되는' 종신연금 역할론이다. 김 회장은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은 출산율 감소와 노령인구 증가로 소득대체율(퇴직 전 소득 대비 은퇴 후 소득)이 앞으로 30%
'1조원대 주식 거부(巨富).' 락앤락이 2010년 상장할 당시 세상이 김준일 회장에게 붙여준 수식어다. 하지만 그의 스타일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서글서글한 아저씨 같은 인상에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한마디 한마디에 겸손함이 배어있다. 오히려 소박하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그러나 비즈니스 얘기가 나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예리한 눈빛의 일꾼냄새를 물씬 풍긴다. 그의 삶 자체가 '악바리 승부사' 기질로 단련돼 와서다. 그가 첫 모험을 건 것은 경북중 시절이었다. 대구 시내 한복판에서 군수물 납품업을 하며 갑부 소리를 듣던 집안의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면서다. 중학교 3학년 시절 다리 부상으로 체육 점수를 받지 못해 고교 진학에 실패한 그는 이참에 '겁없이' 홀로 상경키로 결심했다. 영업사원 일로 학비를 대며 한국방송대에서 행정학을 전공하던 고학생 김 회장은 신문을 보던 중 '수입 자유화' 기사를 읽고 무릎을 탁 쳤다. 그렇게 그가 터전을 잡은 곳은 '외제 상품의 메카' 남대문 도매시장
"쉬운 거부터 해야 합니다. 30년 전 사회가 덜 복잡했을 때는 문 앞에 서면 끝점이 보였는데 요즘처럼 복잡한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고 처음부터 원대한 플랜을 갖고 접근하기보다 발을 담그고 작게 해봐서 맞아들어가면 더 키우고 아니면 바꾸어야 합니다." 국내 대표 주방생활용품 제조업체 락앤락의 김준일 회장(60)은 "국내기업이 중국시장에 어떻게 다가가야 성공할 수 있나"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락앤락의 중국 진출 역사는 길다고 보기 어렵다. 2002년 9월에 생산법인을 세웠으니 10년 정도 역사다. 그런데 대기업이 부러워할 정도의 성공을 거뒀다. 지난해 전체 매출 4761억원 중 48%가 중국에서 나왔고 올 1분기에는 50%를 돌파했다. 그의 말대로 락앤락의 중국내 첫걸음은 작았다. 2002년 '말하기 민망할 수준의 시골 위탁공장' 이 시작이었다. 거기서 그는 초기 경험을 키웠다. 이후 경쟁이 심한 남쪽지방을 피해 산둥지방에 가서 이리저리 뛴 끝에 터
김봉수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30년 이상 증권업계에 몸담아 온 `정통 증권맨'이다. 그는 1976년 옛 쌍용투자증권서 증권가에 발을 들여놨다. 채권과 자산운용, 영업, 기획 등 증권업 전분야를 두루 거치며 실무경험을 쌓았다. 1994년부터 SK증권 자산운용담당 이사, 경영지원본부장을 역임했다. 이후 1999년 온라인 증권사인 키움닷컴증권 창립멤버로 참여해 2001년 3월부터 2009년 4월까지 8년여 사령탑을 맡았다. 김 이시장은 신생 키움증권을 10년도 안 돼 브로커리지(위탁매매) 1위 증권사로 끌어올리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런 경영 능력을 인정 받아 KRX 이사장 자리에 올랐다. 특히 그는 2005년 통합 거래소가 출범한 이후 관료가 아닌 업계 출신 첫 수장이다. 증권업계에 오래 몸담아 업계 주요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운 김 이시장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이웃집 아저씨와 같은 푸근한 이미지와 달리 업무 추진에선 철저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매주
강동석 2012여수세계박람회 조직위원장(75)을 두고 사람들은 '관운'(官運)이 좋다고들 이야기한다. 강 위원장은 1965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옛 교통부(현 국토해양부)에서 27년간 공직생활을 마치고 10년간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전력 등 4개 산하 공기업 사장을 지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국토부의 전신인 건설교통부 장관직을 수행했다. 지금은 고희를 훌쩍 넘어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인 세계박람회(엑스포) 수장을 맡고 있다. 관직의 장수비결은 뭘까. 강 위원장은 기골이 장대한 사람도 아니다. 외모로만 보면 자그마한 체구에 머리가 허연 노신사 정도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젊은 사람 못지않게 반짝반짝 살아있다. 일에 대한 열정과 집념이 누구 못지않다는 점은 자타가 인정한다. '강동석'이란 이름이 세상사람들에게 각인된 대표 사례가 인천국제공항 개항이다. 1994년 수도권신공항건설공단 이사장부터 1999년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