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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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지적공사 김영호 사장은 행정관료 출신이다. 1975년 행정고시 18회로 공직에 입문, 2009년 1월 행정안전부 제1차관을 끝으로 퇴직하기까지 32년 8개월 동안을 정부에서 근무했다. 정부의 인사를 담당했던 옛 총무처에서 출발해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행정개혁위원회, 주미한국대사관, 국민고충처리위원회, 행정자치부, 충북도청, 정부혁신위원회, 중앙인사위원회, 행정안전부 등의 기관을 거치며 업무 개선, 조직 및 인사관리 업무를 주로 맡아 정부 내 '인사·조직통'으로 불렸다. 공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박사과정 입학 17년 만에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행정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김 사장은 인적 네트워크 폭이 넓다.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는 물론이고 언론과 국회, 학계, 법조계, 산업계 등에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미국 남가주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주미한국대사관 행정참사관으로 3년 6개월 근무한 탓에 영어에 능통하고 국제적인 감각이 뛰어나다. 딱딱한 분위기를 녹일 수 있
- 100년 만에 추진하는 '지적재조사'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요. ▶100년 전 일본은 주인 없는 땅을 빼앗고 주인이 있는 땅에는 세금을 매기기 위해 우리나라에 지적제도를 들여왔습니다. 문제는 기준점을 잘못잡아 360m나 오차가 발생했고 켄트지에 연필로 작업하다보니 연필심 두께에 따라 굵기가 달라지면서 10㎝ 이상 원래 지적과 차이가 벌어졌습니다. 여기에 6·25전쟁 이후 타버린 지적도를 복원하면서 주먹구구식으로 지적도를 그리다보니 지적이 엉망이 됐습니다. 지적재조사는 일제의 잔재를 바로잡는 것은 물론 국민의 소유권이 걸린 민감한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업입니다. 지난해 예비타당성 조사 당시 비용 대비 편익(BC)은 0.80로 높은 편이었지만 종합평가(AHP)는 통과기준 0.5에 한참 못미치는 0.363이었습니다. 3조원 넘는 사업비 때문에 점수가 낮아진 것이죠. 하지만 사업비를 2조2000억원으로 낮출 수 있고 항공측량과 병행해 인력, 사업기간, 비용 등을 절
딱딱한 사장실이라기보다는 은은한 서재에 온 느낌이다. 소중한 추억들은 담은 작은 액자들은 물론 많은 책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 한진해운 빌딩 10층에 있는 김영민 한진해운 사장(사진)의 집무실이다. 한진해운에 입사한 지 만 10년이 된 김 사장은 한진해운의 새로운 비상을 자신한다. 지난 2년 여간 피나는 노력과 물동량 증가로 턴어라운드에 성공했고 이제 신흥시장 진출과 수익성 방어를 통해 최대실적을 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자신감이다. "국내를 대표하는 한진해운이 올해 매출 10조원을 처음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비전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해 해운업이 많이 회복됐는데, 2010년을 회고 한다면. ▶지난해 계선(운항을 중지하고 항구에 정박) 및 슬로우스티밍(배의 운항속도를 줄임) 등을 통한 뼈를 깎는 비용절감 노력을 했습니다. 아울러 상반기 물동량 증가에 따른 운임회복으로 턴어라운드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업이익 기준으로 2009년 영업손실의 70%
손복조 토러스투자증권 사장(사진)은 증권업계에서 손꼽히는 '스타 CEO'다. 대우증권에 입사해 리서치, 법인영업, IB, 국제 업무까지 두루 거친 정통 증권맨이다. 대우증권 근무 당시 업계 최초로 리스크관리 시스템을 도입했고 성과급 제도도 들여왔다. 10년 넘게 도쿄 사무소장으로 일했으며 사장으로 재임했던 3년간 자기자본을 2배로 불려 대우증권 '제2의 중흥기'를 주도했다. 사장 취임 3개월만에 브로커리지(위탁매매) 부문에서 업계 1위를 탈환하고, 2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일은 아직도 대우증권 내에서 회자되고 있다. '증권가의 승부사', '미다스 CEO'라는 명성답게 조직 통솔 능력이 탁월하다. 지난 해 4월부터 임원 20명을 대상으로 리더십 교육을 진행중인 손 사장은 평소 읽은 신문이나 책을 직접 스크랩해 자료를 준비할 정도로 꼼꼼하다. 손 사장은 1주일에 적어도 5~6권은 읽고 매달 한 권씩 직원들에게 '추천도서'로 권한다. 사장실과 접견실에 빼곡히 정리된 책만 1500
설립된 지 이제 만 3년된 새내기 회사면서 '100년 후'를 그리는 증권사가 있다. '최종 목표는 글로벌 투자은행(IB)이다. 그것도 '주인 없는 회사' 모델을 통해서이다. 분산된 지배구조를 바탕으로 능력있는 전문 경영인(CEO)이 장수하는 증권사. 더 나아가 한국 자본시장의 체질 개선에 앞장서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는 금융회사. 바로 '토러스투자증권'이다. '토러스투자증권=손복조 사장'의 등식이 떠오른다. 오랫동안 증권업계에서 '명승부사'로 이름을 날렸다. 물론 그렇다고 CEO 유명세가 토러스가 가진 전부는 아니다. 2008년 7월 말 인가와 동시에 영업을 시작한 지 2년만에 흑자 전환했고 지난 해 반기 37억원의 이익을 거뒀다. 2008년 출범한 8개 증권사 가운데 순수 독립 증권사로서 독보적인 성적이다. 소수 정예로 구성된 리서치센터와 탁월한 운용 능력을 자랑하는 딜링 부서는 이미 업계 내 실력으로 정평이 났다. '상대 평가'에서 토러스는 이미 선두권인데 그렇다면 손 사장의 '절
한미파슨스 김종훈 회장은 건설사업관리(CM·Construction Management) 전도사이자 혁신 전도사, 사회공헌 전도사로 통한다. 김 회장은 1996년 세계적 CM기업인 미국 파슨스와 합작을 통해 한미파슨스 설립을 주도해 국내 건설산업에 처음으로 CM을 도입했다. 그는 서울 월드컵경기장, 도곡동 타워팰리스, 상암동 누리꿈스퀘어, 과천국립과학관 등 국내외 700여개 프로젝트의 CM을 수행, 한미파슨스를 국내 최고 CM 전문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건설산업의 선진화를 위한 역할도 막중하다. 올 초 건설산업선진화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한국 건설의 미래 제안인 '건설선진화 2020' 수립을 주도했다. 총 223개 기업 및 단체가 참여하는 건설산업비전포럼(CVF·Construction Vision Forum)의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성균관대와 공동으로 건설현장의 실무 수행 역량을 갖춘 차세대 건설기술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차세대건설리더아카데미'를 설립·운영,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건설
1990년대 후반 한미파슨스(회장 김종훈)는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건설사업관리(CM : Construction Management) 용역을 수주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CM이란 단어가 생소할 때였다. 한미파슨스는 40%의 적자가 불가피했지만 전력을 다해 이 사업을 완수했다. 당장의 적자보다는 시장 선점이 우선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판단은 적중해 한미파슨스는 줄곧 국내 CM업계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내년 창립 15주년을 맞는 한미파슨스가 또다른 결단을 내렸다. 외국의 엔지니어링·설계기업을 인수하고 부동산개발사업을 확대해 나가는 전략을 꺼내든 것이다. 김종훈 회장(사진, 61)은 본업인 CM과 PM(Project Management) 시장에서 안주하지 않고 전세계적으로 수요가 커지고 있는 해외 도시개발시장과 부동산개발사업을 확대해 기업역량을 키운다는 목표를 세웠다. 김 회장은 장기적으론 사업구조를 ECD(Engineering-Construction-Developme
불과 3년 전만 해도 3차원(3D) 영화는 우리에게 생소했다. 그저 63빌딩이나 놀이공원에 가면 입체안경을 쓰고 보는 20여분 남짓한 영상 정도가 다였다. 오랜 시간 시청하면 어지럼증이 생기기 때문에 2시간 남짓한 영화로는 적합하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나 지난해 3D영화 '아바타'가 개봉하면서 3D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아바타'의 상영시간은 3시간에 달하는데도 어지럼증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이후 3D영화에 대한 시각이 바뀌면서 3D영화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이 즈음부터 '케이디씨'도 주목받았다. 2004년부터 3D분야에 투자하기 시작한 케이디씨정보통신은 현재 3D촬영장비를 비롯해 극장용 3D영사장비까지 다양하게 갖춘 국내 유일의 기업이기 때문이다. 2008년 2억원에 그친 케이디씨정보통신의 3D관련 매출은 올해 480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2년새 무려 200배 성장한 셈이다. 이처럼 케이디씨정보통신이 우리나라 3D영상산업의 중심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
"목숨 걸고 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맨손으로 현 교원그룹을 일군 장평순 회장의 지론이다. 장 회장은 유년시절 가난에 시달렸다. 당시 변변한 직업이 없던 터라 날품을 팔아야 했던 부모를 떠나 5세 때가지 외가에서 자랐다.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공부라고 생각해 어렵게 대학원까지 진학했다. 7남매의 장남으로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무원이 되겠다는 신념에 따른 것이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1979년, 30세가 된 해에 공부 대신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서울 용산시장을 들락거리며 소자본으로 할 수 있는 창업을 모색했다. 이때 시작한 것이 배추장사다. 소매상들은 보통 도매가의 10배 정도 비싸게 팔아 이윤을 남기지만 대신 재고부담이 크다는 점에 착안해 대량으로 팔되 가격은 절반만 받기로 했다. 그간 잡일 등으로 모아 둔 6만원으로 배추를 사서 목동 공터에 좌판을 벌이고 장사를 시작했다. 어느덧 노하우가 쌓여 하루에 4톤 트럭 1대 분량의 무와 배추를 판매할 정도
"교원은 올해도 많이 좋아졌지만 내년엔 올해보다 훨씬 더 나아질 겁니다. 지난 2~3년간 외부에서 유능한 젊은 인재들을 영입하고 변화를 추구했는데 노력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교원은 이제 다크호스로 떠오를 겁니다." 교원그룹이 비상(飛上)할 채비를 갖췄다. 2015년 매출 3조원을 달성한다는 '비전 2015'를 올 초 발표한 지 8개월 만에 목표를 상향 조정했다. 비전 달성을 1년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장평순 회장은 내년 경제전망이 불투명한데도 올해 보다 탄탄한 성장을 자신했다. 지난 2~3년간 외부에서 '젊은 피'를 수혈하는 등 도약을 위해 노력해왔고 이제 그간의 땀이 결실을 맺고 있다는 게 자신감의 원천이다. 교육과 생활가전 등 기존 사업의 시장지배력을 확대하면서 과감한 인수·합병(M&A)을 통해 금융을 비롯한 신사업을 앞세워 '비전 2015'를 앞당긴다는 게 장 회장의 구상이다. 서울 을지로 내외빌딩(교원빌딩) 본사 10층 집무실에서 그의 각오를 들어봤다. ―올해가
"자유무역협정(FTA)은 부인할 수 없는 대세이기 때문에 피해농가 지원이라는 소극적 대응에 그치지 않고 농·어업 경쟁력 강화의 계기로 삼겠다."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12일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유럽연합(EU), 미국은 물론 호주, 중국, 일본 등과도 관세 철폐와 각종 수출입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하는 FTA를 체결해야 하기 때문에 과거처럼 국내 농축수산농가에 대한 지원위주의 대책만으로는 한계가 많다"며 이 같이 밝혔다. 유 장관은 "상대적으로 비교 열위인 국내 농축수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향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장관은 미국의 쇠고기 시장 추가 개방 요구와 관련, "미국산 쇠고기 추가 개방은 시기상조"라는 확고한 입장을 밝혔으며, 농협법 개정안 정기국회 처리 무산과 관련, "안타깝지만 내년 임시국회에서는 통과될 것으로 낙관한다"고 언급했다. 다음은 유 장관과의 일문일답. -지난 8월 말 장관 취임직후 FTA에 대한 수세적 대응보다 국
지난 10일 정부과천청사에서 만난 유정복 농림수산부장관은 농축수산행정의 수장으로서 강한 확신과 열정을 보였다. 취임 100여일 만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불거졌던 전문성 부족 우려를 씻어내기 위해 노력해왔다. 불과 석달만에 농식품부 업무와 정책방향을 파악한 것은 유 장관 특유의 성실함과 '뭐든지 배우려는 자세' 때문이라고 측근들은 전했다. 유 장관은 본회의 출석률 95%, 상위권 법안 발의 실적 등으로 언론사와 시민단체로부터 의정활동 우수의원으로 선정됐다. 유 장관은 FTA 체결로 피해가 우려되는 농축수산 부문에 대해 "경쟁력 강화만이 살길"이라며 정책 마련에 발벗고 나섰다. 대세를 인정하되 소극적인 피해보상이 아닌 '근본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유 장관은 행정고시 23회 출신으로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장을 두루 거쳤다. 37세인 1994년 경기 김포군수가 된 이듬해 인천서구청장을 거쳐 경기 김포군 초대 민선 군수를 역임했다. 김포군이 김포시로 승격된 1998년 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