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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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호 우리투자증권 사장은 글로벌 금융기관을 두루 거친 글로벌 전문경영인이다. 씨티그룹을 비롯해 아테네은행, 헝가리 한화은행, PCA아시아지역 자산운용 본부 등을 거쳤다. 격식을 따지지 않고 스스럼없이 직원들과 소통하는 실무형이자 리더형 최고경영자(CEO)로 평가받는다. 해외 출장이 가장 많은 증권사 대표 중의 한명이다. 홍콩 정도는 아침에 갔다 저녁에 돌아온다. 미국도 1박2일(사실상 무박)로 해치울 정도다. 인도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 주요 금융계에서 알아주는 '글로벌 마당발'이다. 한다리 건너면 못 만날 사람이 없다고 자부한다. 우리투자증권이 인도 벌라 그룹과 추진중인 주식형 펀드 공모사업도 '글로벌 인맥'의 장점을 보여준다. 진출하기가 중국보다 몇배 힘들다는 인도 시장이지만, 벌라그룹 아제이 회장이 PCA 투신 시절 함께 근무했던 사이라 협상 시작 일주일 만에 MOU의 윤곽을 잡고 업무를 진행했다. 제일투자증권 CEO 시절인 2001년엔 미국 푸르덴셜로부터 1500억원의 외
우리투자증권은 올해 초 사들인 일산 연수원의 리모델링 작업을 하고 있다. 황성호 사장의 주문은 단 한가지. "가슴을 뛰게 하는, 그래서 꿈을 키워주는 연수원을 만들라" 구체적인 지시는 전혀 없었다. "번지점프대를 만들어, 사장부터 한번 뛰어보게 만들든지..."라고 지나가는 말을 하기는 했다. "잘 정리된 것이 아니라 엉뚱하고, 거칠고, 때로는 찌그러진 곳으로부터 세상은 발전하는 겁니다." 연수원 리모델링은 황사장이 가슴에 품고 있는 우리투자증권의 모습을 엿보게 해준다. ◇ 명실상부 대표 증권사 꿈..."이미 26개 분야에서 1등" '꿈을 키워 주는 CEO, 꿈을 만들어가는 직장' 가슴에만 품고 있는게 아니다. 사장실엔 '꿈이 없으면 땀을 흘릴 수 없다'는 글귀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직원들에게도 늘 "꿈이 뭔가요?"라고 묻는다. 자신과 대화를 나눈 직원이 가슴이 뛰는 걸 느꼈다고 할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단다. 그는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하는 명실상부한 '1등 증권사', '대한민국
-유동자산, 한국증권 주식 펀드 가입...고객 수익 자신감 -"일반 개인투자자는 투자포트폴리오 균형 갖춰야" -잘 나갈때 자제할줄 알아야...히트작 I'M YOU도 무리하게 덩치 안키워 -경영 1순위는 '사람', 이직률 최저...각 분야 최고 랭킹, '메이저'입지 굳혀 요즘 여의도 증권가에서 실속을 가장 탄탄하게 다지고 있는 곳이 한국투자증권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않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게 금융회사간 합병이지만 5년전 합병한 구 동원증권과 한투증권은 고비를 무난히 넘기며 시너지를 발휘, 증권업계 '메이저'로 부상했다. 유상호 사장은 사람을 중요시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며 이같은 도약을 진두지휘해왔다. 유 사장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무자비한 해고로 '뉴트론 잭'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잭 웰치 전 제너럴 일렉트릭(GE) 회장이다. 경영의 1순위를 사람에 두고 있다면서 잭 웰치 회장을 가장 존경하는 이유를 그는 이렇게 말한다. "냉정하게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지
올해 상반기 게임업계는 유독 다사다난했다. '게임 과몰입'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면서 관련법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게임업계로서는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게임을 문화콘텐츠로 인정하기보다 제재수단으로만 여기는 우리 사회의 높은 벽을 다시 한번 절감해야 했다. 지난 2월 한국게임산업협회장에 취임한 김기영 한빛소프트 대표(39)도 이런 이슈에 휩쓸려 남모를 씁쓸함을 혼자 견뎌내야 했다. 정부와 국회를 오가며 분주히 움직였지만 게임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규모와 성격이 다른 개별 게임업체를 다독이는 작업 역시 고된 일이었다. 이쯤되면 '왜 협회장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법하다. 더욱이 전 협회장의 갑작스러운 사퇴로 공석이 된 자리였다. 김 대표는 아무도 나서지 않던 협회장에 자원했다. 전 협회장의 잔여 임기를 채우는 조건이었다. 협회장과 한빛소프트 대표로 바쁜 일상을 보내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협회장에 취임한 지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는 '스토리'다. 이제 내년이면 60살이 되는 그는 그동안 숱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첫 스토리는 다소 밋밋한 '성공 드라마'다. 그는 온 가족이 단칸방에 사는 가정환경 속에서 경북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학교 상경대학에 합격했다. 성공 스토리를 그려가던 그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처음으로 방향을 튼다. 서클활동과 위장취업, 시위 등을 통해 사회의 모순에 대해 눈을 뜬 것이다. 1971년 부정부패척결 전국학생시위 때문에 학교에서 제적을 당하면서 그의 신념은 더욱 강해졌다. 1974년에는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돼 수배자 신분으로 살았고, 또 다시 학교에서 제적됐다. 그는 이듬해부터 피복공장 재단보조공 생활을 시작했고, 노동현장에서 한일도루코 노조분회장까지 맡았다. 그의 결혼은 극적이다. 영남 출신의 서울대 출신이 호남(순천) 출신의 처녀와 결혼했다. 그는 계엄당국에 쫓길 때 설난영 씨의 자취방에 피신했다. 당시 설씨는 금속노조 남서울지역지부 여성부장을
김문수 경기도지사(사진)는 '완벽한 권력분점'을 요구한다. "권력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권력을 나누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권력을 나누면서 자신의 지도력을 잃지 않고 오히려 '신 권력'을 세우는 비전과 능력을 갖춰야 한다. 김 지사는 25일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 정책에 대해 건설적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 과외근절을 이야기하는 난센스가 어디 있냐"며 각 지방권력(지방자치단체)에 세목 및 세율 조정 등을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 지자체가 특색에 맞는 발전전략을 선택·추진하면서 경쟁하게 해야 한다는 것으로, 철저한 '시장 논리'다. 중앙정부가 지나치게 지방정부에 간섭하며 폐해만 양산하고 있다는 얘기다. 현 정부가 자랑하는 보금자리 정책도 그런 점에서 잘못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대통령이 한마디 하면 다 맞추고, 이러니 낭비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 지사가 꿈꾸는 '올바른 지도자 이미지'는 자연
- 생소하고 딱딱한 법률용어 변경 - 친근감 느끼게 하는 '법률전도사' - 사회적 문제 가중처벌 빠른 처리 - 특별법 많아져 기본법 보완 필요 법질서 확립을 통한 국격(國格) 향상이 사회적 화두로 제시됐지만 우리 국민의 법질서 의식은 여전히 선진국 수준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법질서 수준이 OECD 30개국 중 27위에 그치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국민의 법질서 준수의식을 높이려면 무엇보다도 알기 쉬운 법령을 만들어 국민의 법이해 수준을 높여야 한다. 우리 국민이 '법조문과 법률용어가 딱딱하고 생소해서'(47%) 또는 '법 내용이 실제생활과 동떨어진 부분이 많아서'(34%)라는 이유로 법을 어렵게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법령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때 의견수렴의 기회를 확대해 국민이 법에 친근감을 느끼도록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한국법제연구원은 알기 쉬운 법률용어를 만들어 국민에게 법령정보 서비스를 제공하고 법제 연구를 통해 입법정책에 방향을 제시하는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민·관·학을 모두 경험한, 국내에서 손꼽히는 국제금융 전문가다. 남다른 이력으로 지난해 12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맡으며 시장의 큰 관심을 모았다. 이명박 정부의 초대 금융위원장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조기 극복과 금융개혁 정책 추진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에서다. 외환위기 때는 정부 초청으로 귀국, 경제부총리 특보와 국제금융센터 소장 등을 맡아 위기 조기 극복에 기여하기도 했다. 세계은행(World Bank) 등 30년 가까이 국제 금융무대에서 활약했으며 우리금융그룹 총괄부회장을 시작으로 민에서도 경험을 쌓았다. 전 이사장은 취임 이후 자신의 노하우를 통해 "국민의 소중한 자산인 국민연금기금을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용해 장기재정을 안정화하는데"(2009년 12월 기자간담회) 총력을 다해왔다. 기금운용규정을 개정해 이사장이 기금운용을 진두지휘하고 투자 다변화에 본격 나선 것도 그의 업적이다. 호주의 '오로라 플레이스', 독일 '소니센터', 영국 'HS
적립기금 300조원, 가입자 1900만명…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캘퍼스(CalPERS:캘리포니아 공무원퇴직연금)를 제치고 자산 규모 세계 4위 연기금이 됐다. 국제무대에서의 위상도 높아져 유수 글로벌 펀드들이 손짓하는 세계적 '큰손'으로 떠올랐다. 지난해부터 해외투자 등 투자 다변화의 고삐를 바짝 죈 터다. '금융전문가'로서의 기대를 받으며 국민연금공단에 취임한지 8개월 째. 전광우 이사장은 11일 서울 종로구 국민연금 국제업무센터에서 가진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기금운용(하는 사람)의 바로미터(지침)는 심플해야 한다"며 기금운용의 자율성,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이사장은 "어떤 정부 부처의 장관도 기금운용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국민연금 운용은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한다는 전제 하에 수익성을 충분히 올린다는 원칙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또 "기금운용본부가 투자결정을 하고 자산을 관리하는 데 있어 최대한 전문가적 양식과 판단에 따라 자
"호남석유화학이 한국 석유화학산업의 중심이라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석유화학산업에 대한 애착이 가장 많은 기업이 바로 호남석유화학일 겁니다." 지난달 30일 집무실에서 만난 정범식 호남석유화학 사장은 회사와 석유화학 산업에 대한 애착과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1971년 한국종합화학공업에 입사해 40년간을 석유화학산업과 함께 해온 땀과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정 사장은 "한국 석유화학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철강업계의 포스코처럼 규모가 큰 리딩 업체들이 2~3개가 나와야 한다"며 "호남석유화학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이 규모를 키울 수 있도록 관련 법규나 국내여건 조성 등 정책적 배려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사장은 또 석유화학산업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바로 잡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피력했다. 그는 "석유화학산업이 환경오염의 주범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사실은 환경오염을 치유하는 기술들도 화학 기술들"이라며 "이런 점들이 제대로 알려졌으
- 인천경제자유구역을 한국의 대표 브랜드, 벤치마킹 모델로 육성 -"이명박 대통령에게 인천국제공항처럼 육성해야 한다고 요청하겠다" 송영길 인천시장 당선자는 이중삼중의 어려움에 놓여 있다고 스스로 말했다. 시의 재정상태, 세수감소 등은 공약 이행의 최대 걸림돌이다. 전임 시장이 이 때문에 6·2 지방선거에서 무릎을 꿇었고, 이제 송 당선자의 최대 난제로 넘어왔다. 인천시민은 그에게 '해결사'의 임무를 준 셈이다. 송 당선자는 27일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인천시에 삼성그룹, 한화그룹 등 국내 대표 브랜드(회사)의 투자를 유치해 마중물(펌프에서 물을 끌어올리려고 붓는 물) 역할을 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시 수정안이 폐기수순을 밟고 있는 가운데 유력 그룹을 인천시에 적극 받아들여 발전의 초석으로 활용하려는 복안이다. 송 당선자는 인천을 기업 투자의 최적지라고 자부했다. 인천국제공항, 인천항 등 물류 비용 면에서 경쟁력이 가장 높다는 것. 국내 기업 뿐 아니라 외국 기업의 유치
오세훈 서울시장은 민선 자치단체장시대가 부활한 1995년 이후 처음으로 재선에 성공, 최장수 서울시장으로 기록될 예정이다. 1961년 서울 출신으로 대일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고 변호사, 방송인으로 이름을 알렸다. MBC '생방송 오변호사 배변호사', SBS '그것이 알고싶다'등을 진행했으며 2000년 총선에서 서울 강남구에서 출마해 당선됐다. 변호사 시절에는 대기업을 상대로 한 아파트 일조권 소송을 맡아 승소, 헌법상의 환경권이 실질적인 권리로 인정받는 최초의 사례를 만들기도 했다. 정계진출 후 한나라당내 소장파인 남경필, 원희룡, 정병국 의원과 함께 당내 개혁세력을 대표했다. 초선 의원으로 정치개혁특위 간사를 맡아 '오세훈 선거법'으로 통칭되는 3개 정치관계법 개정을 끌어내기도 했다. 2003년 ‘5,6공 인사 용퇴론’, ‘60대 노장 퇴진론’을 내걸고 당내 인적 쇄신 운동에 나섰다. 그러나 자신은 정작 2004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2006년 7월 서울시장에 취임, 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