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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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때다. 서울 여의도 '63빌딩'으로 같은 학년 전체가 단체견학을 간 적이 있다. 같은 서울이지만 여의도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강동구 초등학생들 사이에선 63빌딩에 대한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면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대", "수족관에서 헤엄치던 언니(아쿠아리스트)가 상어에 물려 죽었다는데?", "여의도는 섬이어서 배를 갈아타야 들어갈 수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터무니없는 내용이지만 당시엔 꽤 진지하게 들렸다. 견학 당일 엘리베이터 탑승을 위해 꽤 오랜 시간을 대기했는데 반에서 한 두 명은 "전망대에 올라가지 않겠다"며 눈물을 터뜨려 선생님들을 난처하게 했다. 하지만 견학이 끝난 뒤 4학년생들의 63빌딩 전망대와 수족관 무용담은 한참동안 이어졌고, 선후배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63빌딩은 1985년 완공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우선 높이만으로 누구나 한번쯤 가고 싶어하는 명소가 됐다. 서울을 대표하는 랜
4년 전 서울 신사동 K옥션 메이저 경매에 출품된 희귀 물품이 화제가 됐다. 다름 아닌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국장이 새겨진 회중 시계. 구한말 당시 왕실과 고위 관리들 사이에서 회중 시계가 유행했다고 한다. 회중 시계는 손목시계가 나오기 전 양복 포켓에 넣을 수 있는 휴대용 시계를 말한다. 특히 그 시기 순종의 시계 사랑은 유별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거처였던 창덕궁엔 전용 시계방이 있을 정도다. 그렇게 국내에 휴대용 시계 역사가 시작된 지 어언 100년이 흘렀다. 한 때 손목 시계가 요즘의 휴대폰 만큼 크게 대중화됐던 시기도 있다. 1980~1990년대다. 기자가 중고학교 다닐 때만 해도 디지털 손목시계는 거의 모든 학생들의 필수품이었다. 특히 야광시계나 방수시계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인기 아이템이었다. 두 시간에 한 대 꼴로 다니던 버스 시간을 제 때 맞춰야 했던 시골 동네도 마찬가지다. 기자의 손목에서 시계가 사라진 건 휴대폰이 나오면서부터다. 휴대폰에
도심 면세점과 명동 거리에 나가보면 요우커(중국인 관광객)가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다는 이야기가 실감난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외국인전용 카지노에는 이미 중국인 비중이 80%를 차지할 정도다. 그런데 이들을 맞는 우리에겐 딱히 특화된 관광정책이 없어 보인다. 최근 요우커들의 방문은 영화 2편을 떠올리게 한다. 한 달 여만에 1000만명과 1700만 관객을 돌파한 '태극기를 휘날리며'와 '명량'이다. 두 영화는 '인해전술'이 쓰인 전쟁영화라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 태극기를 휘날리며의 시대적 배경이 됐던 1951년 1·4후퇴에서 우리는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요우커의 급증세를 보며 이 장면이 오버랩 되는 것은 현재 요우커의 엄청난 방문과 이 상황을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현실이 비슷하다는 단상에서다. 호텔 부족 논란이 대표적이다. 문화부에서는 최근 외국인 관광객의 증가추세를 반영하면 시내 호텔이 부족하다는 분석 자료를 내놨다. 반면 호텔업협회는 현재 운영하고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 입찰과 관련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이 인수 후보로 거론되면서 최종 승자가 누가될 것이냐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재계 1·2위를 다투는 거대 공룡의 싸움인데다 평소에는 업종이 달라 직접 경쟁할 일이 없다는 ‘희소성’까지 더해졌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것 가운데 하나가 ‘싸움 구경’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한전의 부지 인수자는 최고가 입찰경쟁 방식으로 결정된다. 1원이라도 더 써 낸 쪽이 승자가 되는 방식이어서 ‘쩐(錢)의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벌써부터 재계 1,2위간 자존심 경쟁으로 몰아가고 있다. 부지를 팔아 부채를 줄이려는 한전이나 관리 감독하는 정부나 초반 흥행몰이가 싫지 않은 눈치다. 삼성과 현대차 그룹 등 양쪽을 출입한 경험을 가진 기자 입장에서 보면 과열경쟁이 우리 경제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 대우건설을 인수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이나 극동건설을 인수한 웅진그룹, 남광토건을 인수했던 대한전선그룹처럼 ‘승자의 저주(
"여유자금이 좀 생겼는데 투자할만한 코스닥 기업 몇 개 추천해줘라." 증권부(코스닥팀)로 옮긴 지 6개월이 지나도록 주식에 대해선 얘기 한번 꺼낸 적 없던 친구 한명이 최근 부탁한 내용이다. 진작부터 경제신문에 몸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생전 재테크와 관련해 상의한번 없던 터라 그 배경이 궁금했다. 대답은 싱거웠다. 적당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은행에 묵혀뒀던 돈이 있었는데 여기저기서 증시에 대한 기대감이 나오니 관심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는 "크게 한번 손해를 본 뒤로는 주식에 눈도 돌리지 않았다"면서 "우리같은 월급쟁이가 소액으로 크게 재미를 볼 수 있는 게 그나마 코스닥 주식에 투자하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요즘 이 친구처럼 과거 코스닥 시장에서 쓴맛(?)만 보고 주식시장을 떠났다가 다시 귀환을 노리는 40대 안팎의 지인들의 움직임이 심심치 않게 감지되고 있다. 물론 부동산을 비롯해 목돈을 만들 수 있는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환경 탓이기도 하지만 그 만큼 코스닥 시장
두 달을 끌었던 KB금융 제재가 지난 21일 일단락됐다. 금융감독원은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게 '중징계'인 문책적 경고를 통보했지만 제재심의위원회는 '경징계'인 주의적 경고를 결정했다. 죽느냐(중징계), 사느냐(경징계)의 코너에 물렸던 임 회장과 이 행장은 살아났다. 경징계로 결정되면서 반대로 중징계를 통보했던 금감원이 코너에 몰렸다. 정치권과 시민단체 쪽에선 '봐줬다'며 금감원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잇따라 내놨다. 금융권에선 '금감원이 무리한 중징계 추진으로 KB금융과 금융권을 혼란에 빠뜨렸다'며 금감원의 제재 시스템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분명 금감원은 이번 KB금융에 대한 제재 과정을 복기해 봐야 한다. 금감원은 4건의 제재 안건을 일괄 상정하면서 KB금융을 사실상 두달 간 경영공백 상태에 빠뜨렸다. 제재 이유 중 하나였던 고객정보 유출은 '감사원 개입 논란'이 벌어지면서 추후 검토로 넘거져 결론을 내리지도 못했다. 제재심이 진행되는 동안
"여기저기 기사가 나오기에 한번 타봤어요. 승차거부 당할 일도 없고 시간도 낭비하지 않아 좋더라고요." 여의도에 직장을 둔 회사원A씨. 잦은 야근과 회식으로 택시를 자주 타는 A씨는 요즘 모바일 차량 중계 서비스 '우버(Uber)'를 이용한다. 언론에 우버 얘기가 자주 나오자 호기심에 한번 이용해 본 게 습관이 됐다. A씨가 우버를 이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편리함 때문. 위험하게 차도를 넘나들며 택시 잡느라 진땀 뺄 필요 없이 스마트폰 앱만 실행하면 된다. 앱 버튼 하나 누르면 언제 어떤 차량이 오는지 바로 문자가 뜨고, 도착한 고급 차량에서는 정장을 입은 기사가 내려 문을 열어준다. 차안에 비치된 생수로 목을 축이며 휴식을 취하고 나니 집 앞에 도착. 주섬주섬 지갑 속 카드나 현금을 뒤적거릴 필요도 없다. 앱 가입시 등록했던 신용카드로 자동결제된다. 요금은 일반 택시의 2배지만 시간 절약과 편리함을 고려하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다. 스마트폰 앱 하나로 승객과 차량을 연결시켜주는 우
"내가 이래서 수입차 산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파업의 수순을 밟고 있다는 기사에 올라온 댓글이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게재된 한 기사에 올라온 4000여 건의 댓글 가운데 '삼성 사장이 113억, 현대차회장이 49억 받는 건 당연하고 노동자가 1억 받는 건 안 되는 건가?'라고 노조를 옹호하는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노조를 비판하는 글이었다. "공장을 동남아로 이전해라." "울산에서 3년 살았는데 울산에서 현대 노조 시위하면 울산 사람들도 욕하더라." 등은 그나마 얌전했다. 차마 지면에 옮기지 못할 만큼 격한 욕설이 난무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노조가 싫어서 현대차 제품을 불매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래도 현대차 살래?" "현대 노동자보다 연봉 적으면 현대기아차 사지 말아라." "회사 망하고 실업자 돼야 정신을 차리지!" 등이다. 노조에 비우호적인 여론이 는다고 해서 사 측이라고 유리할 게 없다. 댓글에서와 같이 불매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조의
가왕(歌王) 조용필이 2009년과 2011년 두 차례 소록도를 방문해 ‘없는 자’를 위한 위문 공연을 펼쳤을 때, 대중음악계에선 이를 ‘특별한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국내 최고 ‘슈퍼스타’가 가장 ‘낮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행보는 전례를 찾기 힘든 사례였기 때문이다. 조용필은 두 번째 방문한 자리에서 노래 중간, 그리고 노래가 끝난 뒤 객석으로 뛰어들어 얼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한센인 300여명과 일일이 손을 잡고 포옹하고 어깨동무를 하며 그들과 친구가 됐다. ‘친구여’를 부를 땐 그곳에 모인 모든 이들이 함께 울었다. 톱스타가 보내는 따뜻한 말 한마디, 자신에게 평생 손 한번 건네줄 것 같지 않던, 멀게만 느껴지던 슈퍼스타의 스스럼없는 몸짓이 꾹꾹 억눌렀던 한센인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것이다. 지난 14일 서울공항에 내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이 TV 카메라에 잡히자마자, 많은 이들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감동 받을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곳에 특별히 초대된 세월호 유가족은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전, 내가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에도 입학하지 않았던 때다. 하루는 이모네 집에 놀러를 갔는데 이모가 엄마를 붙들고 엉엉 울면서 이야기를 했다. "○○ 면회를 갔는데, 애 몸에 멍자국이 보이는거야. 놀라서 맞은 거냐고 물어봤더니 아니라고 하는데...아니긴 뭐가 아니야. 넌 아들 없어서 좋겠다." 이모의 큰 아들, 그러니까 나의 사촌오빠가 군대에서 고참들에게 많이 맞고 엄청 고생을 한다는 얘기였다. 엄마와 이모가 나누는 이런 저런 군대 얘기를 들으면서 '군대에선 저렇게 사람들을 때리나'라는 생각에 나는 굉장히 놀랐었다. 그로부터 30년도 더 지난 지금. 군대에서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에 온 나라가 분노로 들끓고 있다. 지난 4월 선임병들의 집단 구타로 사망한 육군 28사단 '윤일병 사건' 때문이다. 지난 2월18일 28사단 포병연대 본부포대 의무병에 배치된 스무살의 윤일병은 대기기간 2주가 끝난 직후 인 3월3일부터 한달 넘게 매일 부대원들의 폭행과 가혹행
14명의 목사가 북한 공산군 비밀경찰에 끌려간다. 이 중 12명이 총살당하고 두 명의 목사가 살아남았다. 6.25 전쟁 직전 일어난 목사 집단처형사건에서 12명은 ‘순교자’로 규정되고, 살아남은 신 목사는 입을 굳게 다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신 목사가 진실과 양심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입을 열면서 사건은 일대 혼란에 빠진다. 김은국씨가 쓴 장편소설 ‘순교자’를 읽은 게 벌써 20여년 전의 일이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덮는 순간, 온 몸에 닭살이 돋았다. 20대 젊은 혈기가 허용할 수 있는 충격의 범위도 넘어섰던 것 같다. 신 목사의 진실은 목사가 사형을 당하면서 어린애처럼 울거나, 살려달라고 빈 내용이 골자다. 말하기 창피한 이 진실은 어쩌면 영원히 무덤까지 가져갔어야할 이야기일지 모른다. 소설이지만, 이런 이야기가 퍼지면 아는 신자들은 대개 “종교인도 인간이므로, 인간의 흠집과 결함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신을 믿는 것이지, 그 대리인을 믿는 것은 아
최근 우리 동네에서 큰 싸움이 벌어졌다. 그 동안 사이좋게 지내던 밀가루 가게와 빵집 사이에 난 싸움이었다. 급기야 밀가루 가게가 빵집을 고소했다. 밀가루 대금을 뒤늦게 지급했는데 그 기간만큼 이자를 내라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줘야할 돈을 늦게 줬으니 이자를 물어야 하는 것은 상식처럼 보인다. 그런데 빵집 사장님은 억울하다고 하소연한다. 밀가루 가게가 ‘의리’를 져 버리고 뒤통수를 쳤다며 울상이다. 사연은 이렇다. 3년 전 두 가게는 서로의 물건을 사용하기로 신사협정을 맺었다. 빵집 입장에서는 질 좋은 밀가루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밀가루 가게 역시 좋은 단골손님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우리 동네에는 이 밀가루 가게보다 더 좋은 밀가루를 공급해 줄 수 있는 곳이 없었지만 빵집은 3~4곳이 있었다. 당연히 계약조건은 빵집이 약간 불리했다. 계약을 맺을 때 잠깐 이상한 소문이 돌기도 했다. 밀가루 가게가 빵집을 인수할 지도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빵집 사장님은 밀가루 가게에 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