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선수야, 군인이야?' 군대문화 악습 못 끊는 체육계

'운동선수야, 군인이야?' 군대문화 악습 못 끊는 체육계

박상빈 기자, 서진욱
2014.03.05 05:10

[돈·빽·줄로 얽힌 예체능계③] "폐쇄적 집단의 악습"

[편집자주] 국내 예체능계를 둘러싼 각종 비리와 잡음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안타깝게도 도제식 교육을 근간으로 한 '빽'과 '연줄'은 예체능계의 유력한 '성공방정식'중 하나가 됐다. 이로 인해 숱한 예체능계 인재들이 재능을 펴지도 못한 채 지고 마는 게 현실이다. 머니투데이는 폐쇄적인 '그들만의 리그'가 남긴 각종 폐해를 공개하고, 그 대안을 모색해 본다.
2009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와 논란이 됐던 한 대학농구 감독과 코치의 선수 폭행 영상/ 사진=온라인커뮤니티 영상 캡처
2009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와 논란이 됐던 한 대학농구 감독과 코치의 선수 폭행 영상/ 사진=온라인커뮤니티 영상 캡처

'신체를 사용한다'는 체육계의 특성이 부당한 인권침해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최근 온라인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킨 체대 군기 사태를 두고 "시대가 어느 때인데, 또"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군기 논란은 국가대표로 상징되는 엘리트 집단부터 학교 운동부에 이르기까지 체육계 전반에 퍼져 있는 고질병이다. 부상 위험을 방지하고 단합을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하지만 상식에 어긋난 행태는 근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의 전 언니들 찾아 인사"…비상식 넘나드는 군기 논란

서울 A대학 생활체육학과 신입생 생활 규정/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서울 A대학 생활체육학과 신입생 생활 규정/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지난달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체육계 '군기 논란'에 불을 지핀 두 대학. 서울 A대학의 생활체육학과와 B여대의 체육과는 이른바 '생활 규정'이라는 신입생 지침을 만들어 배포했다. A4용지 1면을 빼곡히 채운 내용은 구시대적인 체육계의 조직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A대학은 △다나까 말투 사용('요'자 사용 금지) △학교 안에서 이어폰 끼지 않기 △엘리베이터 타지 않기 △속눈썹 연장 금지 등이 포함됐다. B여대의 경우 △슬리퍼 금지 △긴장하고 학교 다니기 △강의 전 언니들 찾아 인사드리기 △1학년들 아르바이트 금지 등을 규정했다. 두 대학 모두 학생사회의 위계질서를 강조하며 저학년의 개인 활동을 지나치게 억압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온라인 공간에서는 구시대적인 조직 문화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지만 정작 B여대 학생들은 유포자 색출 작업에 나섰다. 이들은 "내가 경찰서 가는 한이 있어도 잡겠다" "언니들이 좋게 넘어간 걸 감사하게 생각해" 등 비상식적 발언을 쏟아냈다.

구타 논란도 여전하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서울대 스포츠과학연구소에 의뢰한 '스포츠 폭력' 연구 결과 "폭행을 당했다"고 답한 학교 및 실업 선수들은 898명 가운데 28.6%에 달했다. 구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 차원의 대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특정 집단에 소속된 개인, '저항' 아닌 '동조'

전문가들은 체육계의 비상식적 군기 문화에 대해 위계질서와 단합을 강조하는 조직 특성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창섭 체육개혁을 실천하는 교수연대 대표(충남대 체육교육과)는 "소속감과 긴장감을 필요로 하는 집단 특성이 부당한 인권침해로 발현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체육계는 운동 연습 등으로 평균 이상의 신체적 한계를 필요로 하거나 강한 소속감을 강조하는 집단 특성이 있다"면서도 "부당한 요구가 필요하다는 착각은 체육계 가치를 지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조직 규범이 군대 문화를 참조해 생겼다"며 "현실적으로 다른 조직의 문화를 배울 기회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집단 내 약자일 수밖에 없는 개인이 이를 거스르긴 어렵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집단에 소속될 경우 개인으로 있을 때보다 전통 및 관습에 동조해야 한다는 압박은 커진다"며 "점점 시야가 집단 내부로 좁혀지기 때문에 개인적 가치를 거스르면서까지 집단의 규범을 내면화하게 된다"고 평가했다.

정희준 동아대 생활체육학과 교수는 "집단의 규범에 동조하지 않을 경우 집단에서 배제될 수 있다"며 "B여대 사례처럼 내부고발자를 색출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체육계의 구시대적 조직 문화를 강압적 방법으로 없애려 하면 되레 사태가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창섭 교수는 "군기 문화가 왜 문제가 되는지부터 알려줘야 한다"며 "학생들이 가해라는 인식을 갖도록 교육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당한 요구가 아니라 진짜 가치를 지킬 수 있는 개선된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현재는 그 노력이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이동귀 교수는 "학교에서 군기 문화를 없애겠다고 강하게 나가면 반대로 내부의 결속 강화를 가져올 수 있다"며 "먼저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지 등을 공론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신입생 환영회와 개별면담 등을 통해 학생들을 교육하고, 불합리한 조직 문화에 대한 구체적 행동요령 등을 알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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