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실종자 10분의 1로…적막한 팽목항 남은 가족들 외로움 커져

"아들아, 미안해. 이제 그만 나와. 집에 가자…"
"OO아 어서 나와라."
세월호 침몰 25일째, 한 어머니의 흐느낌이 적막한 팽목항 방파제를 적셨다.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다 주저앉아 난간을 붙잡고 10분을 오열했다. 실종자 가족들과 경찰, 수녀, 방문객들 모두가 말없이 함께 울었다.
◇끝 없는 기다림
벌써 네 번째 주말. 10일 오후 진도 팽목항은 휑하니 쓸쓸함이 느껴졌다. 300명 넘던 실종자가 30명 이내로 줄었다. 팽목항엔 이제 열 두 가족 남짓이 남았다. 하지만 그리움의 크기는 작아지지 않았다.
답답함을 가눌 길 없는 가족들은 방파제 위로 모여들었다. 바다와 가장 가깝게 맞닿은 곳이다.
방파제까지 이르는 길엔 기독교와 불교, 원불교의 법당과 기도실에서 실종자들의 귀환을 기원하는 목탁소리와 기도소리가 섞여 나왔다.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연등과 노란 리본이 방파제 난간을 수놓았다. 초코바와 컵라면 등 다양한 간식도 놓여있다.
소조기 마지막날이었던 이날 진도 앞바다는 유속이 빨라 수색이 원활히 이뤄지지 못해 가족들을 더욱 애타게 했다. 방파제 위에서 한 어머니는 난간에 기대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렸다. 어머니는 노란 리본 메시지에서 아들 이름을 발견하고 다시 흐느꼈다.
한 아버지는 천막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바다를 바라보다가 방파제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사고해역을 한 없이 바라보다 다른 실종자 가족이 울자 함께 눈물을 글썽였다. "답답해서 그렇다"며 연신 담배만 피웠다.

◇떠나는 가족들…팽목항엔 적막감만
이제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남은 가족들은 가족 휴게소나 천막 숙소에 모여 지낸다. 긴 기다림에 말수도 줄었다. 대책본부 근처에 모여 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졌다. 고개를 푹 숙이고 걷거나 한 두 가족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사고 직후부터 가족휴게소에서 자원봉사를 해온 서은혜양(20·여)은 "현재 팽목항에는 열두 가족 정도 남았다"며 "자원봉사자도 하루에 남는 숫자를 줄였다"고 말했다.
독자들의 PICK!
가족휴게소 맞은편 '사랑의 두부차' 자원봉사자는 "방송도 철수하고 언론들도 다 갔는데 아직 남아있는 가족들은 새벽이면 종종 식사하러 온다"며 "매우 침울해하고 계신다"고 전했다.
외로움에 지친 모습은 곳곳에서 포착됐다. 한 자원봉사자는 "예전엔 가족 천막에서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자는 걸 꺼려하셨는데 이젠 나가지 말고 같이 있자고 하신다"며 "아무래도 다들 떠난 상황에서 자식 같고 의지가 되니까 그러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애써 아픔을 극복하려는 가족들도 눈에 띄었다. 한 실종자 가족은 "천막 안에만 앉아 있으면 공상만 떠오르고 처진다"며 1일 자원봉사를 자처하기도 했다. 또 다른 실종자 어머니 3명도 팽목항 '함께 버거'에서 햄버거를 만들어 바지선으로 보내는 자원활동을 하며 고통을 달래고 있다.
◇사고 25일, 여전히 남는 '아쉬움'
25일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지만 사고 당일에 대한 아쉬움과 의문은 가족들에게 여전히 짙게 남았다. 전날에도 실종자 가족들은 대책본부 근처에 걸린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지도를 가리키며 또 한 번 성토했다.
한 아버지는 "맹골수도로는 원래 잘 안 가는데 이렇게 밖으로 돌아갔어야지, 두 시간 빨리 가려고 그런 것 아니냐"며 "짐만 제대로 꽉 묶어놨으면 뒤집어지지 않았다"며 가슴을 쳤다. 다른 아버지도 "이 지역 사람들은 지리를 아니까 이곳으로는 잘 안 다닌다. 위에서 보고를 받았으니까 그렇게 몰았겠지, 정상적으로만 몰았다면…"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시신유실에 대한 걱정도 이어졌다. 한 아버지는 "유류품이 저기 너머에서 발견됐다"며 "정부가 유실 안 되게 한다는데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지. 섬이 280개가 넘는다는데 틈새에 끼어있으면 어떻게 찾느냐"며 한숨지었다.
한 실종자 어머니는 "3일 동안 뱃머리가 있지 않았나. 처음부터 바지선 보내고 빨리 대처했으면 얼마나 좋냐"며 "그 좋은 시간 다 보내고 왜 생각을 못 했을까. 무식한 아줌마들도 아는 걸 왜 위에서는 몰랐을까"라며 애통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