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TV]법으로 동화 뒤집어 보기…동화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동화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 등장하는 말레피센트(MALEFICENT)는 요즘 가장 핫한 악녀다. 안젤리나 졸리가 열연한 영화 '말레피센트'에서는 매력적인 악녀 캐릭터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샤를 페로의 동화 속에서 말레피센트는 아름다운 오로라 공주의 생일에 초대받지 못한 8번째 마녀로 등장한다.
왕은 일곱 마녀를 오로라 공주의 세례식에 초대하고, 그들을 위해 순금상자, 다이아몬드와 루비가 박힌 숟가락·포크·나이프 세트를 준비한다. 여기서 초대받지 못한 말레피센트가 세례식에 참석한다. 원작에서 말레피센트가 화가 난 진짜 이유는 초대를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순금상자와 수저 세트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초대받지 못한 자의 저주는 유죄일까
선물을 받은 마녀들은 각기 아름다워지는 축복, 고운 마음씨를 가질 축복, 모든 일에 재능을 가질 축복 등을 내려주었다. 하지만 말레피센트는 공주가 물레에 손이 찔려 죽게 될 것이라 저주를 내리고 사라진다. 그리고 왕국은 저주를 내린 말레피센트를 적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사실 우리도 일상에서 싸우다 보면 ‘콱 죽어버려!’라는 가벼운 저주 정도는 사용한다. 이런 발언까지도 형법 제283조 제1항의 협박으로 판단해 처벌할 수 있을까?
우선 협박이 성립하려면 그 협박으로 인해 상대가 겁을 먹어야 한다. 말레피센트의 저주는 물레에 손이 찔려 죽을 것이라는 다소 황당한 내용이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싶다. 물레에 깔려 죽는 것도 아니고, 물레가 폭발하는 것도 아니고, 손이 찔려 죽는다니 말이다. 일반 상식으로 볼 때 이는 겁을 먹기보다는 웃음이 터질 만큼 황당한 저주다.
말레피센트가 평범한 일반인이라고 가정한다면, 협박죄를 적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화가 난 상태에서 한 감정적 발언인 데다 수위도 겁을 먹을 정도는 아닌 만큼, 처벌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마음 상한 여자가 이 정도 수위의 말을 내뱉었다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아마도 감옥은 토요일 밤 클럽보다 붐비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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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후에 일어난 사고…저주가 원인?
말레피센트가 오로라 공주의 세례식에서 내린 저주는 15년 후에 현실이 된다. 그러나 15년 후 ‘물레에 찔리는’ 우연한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한 들 말레피센트의 저주가 원인이라고 입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무당이 “내 말을 안 들으면 네 아들이 높은 곳에서 떨어져 다치고, 남편은 교통사고를 당할 거야!” 라고 이야기했고,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가정해보자. 그 무당을 아들에 대한 상해죄, 남편에 대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으로 처벌해달라고 경찰서에 갈 것인가?
말레피센트의 행위는 이와 같다. 게다가 앞선 무속인의 예와 달리 금전을 요구한 바도 없다. 선물을 내놓으면 저주를 하지 않겠다는 식의 거래도 시도한 적이 없다. 따라서 말레피센트는 '공갈죄'로도 처벌하기 어렵고 '사기죄'로도 기소하기 어려워진다.
말레피센트는 선물을 못 받은 데 화가 났다. 마치 기념일을 잊어버린 남자친구에게 화를 내는 여자친구와 같다. 남자친구가 뒤늦게 기념일을 챙기겠다며 부산을 떨어도 그녀의 화가 사라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독하지만 청렴한 말레피센트와 7명의 ‘관피아’ 마녀들
왕이 일곱 마녀를 초대한 상황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자. 과연 왕은 공정한 기준에 따라 마녀들을 초청했을까?
왕이 수많은 마녀 중에 고르고 골라 초대한 마녀가 7명이나 있었는데도, 말레피센트의 저주 하나 해결하지 못했다. 이는 왕이 실력대로 마녀를 초대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 아닐까.
실력대로 초대했더라면 아무도 풀 수 없는 저주를 거는 말레피센트가 가장 먼저 초청 명단에 올랐을 것이다.
마녀들은 왕의 선물을 받고 왕의 딸에게 온갖 선물을 바친다. 이는 현재로 따지면, '낙하산'으로 한 자리씩 챙긴 '관피아'들이 그 자리를 마련해준 대통령의 딸에게 뇌물을 가져다 바치는 꼴이다.
그들이 선물로 준 '축복'을 현대로 보자면, 예뻐지는 무통무후유증의 최첨단 성형 시술, 모든 시험에 패스할 수 있는 알짜 과외 같은 건 아닐까 싶다. 인생이라는 게임의 '치트키'를 선물한 셈이다.
그렇다면 왕이 초청한 7명의 마녀들은, 권력에 잘 유착된 그 시대의 대표적인 '관피아'들은 아니었을까?
그에 반해 말레피센트는 왕에게 굴복하거나 고개를 조아리지 않고 당당하게 앞에서 섹시한 미소와 악담을 날리고 돌아선다.
실력과 ‘깡’을 겸비한 그녀에게 열광하는 것은, 어쩌면 부패한 현대사회에 지치고 신물 난 우리의 소망을 대신해 실현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부패한 왕과 7명의 마녀는 말레피센트의 유죄를 증명할 수 없다. 뇌물이 오가고, 실력도 무시된 채 '라인' 따라 초대하는 불합리한 인사에 화가 나 말 좀 심하게 했기로서니 말레피센트를 악의 축으로 모는 건 치사하다.
※ 이에 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팟캐스트 낭만파괴법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 본 기사는 딱TV (www.ddaktv.com) 에 6월 3일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