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
1954년 5월17일, 열한살 흑인소녀 린다 브라운의 소원이 이뤄졌다. 기찻길 건너 1마일(1.6㎞) 떨어진 흑인 학교가 아닌 집 근처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린다의 꿈을 현실로 만든 건 당시 미국의 연방대법원장 얼 워런이었다. 그는 흑인과 백인을 분리해 학교를 다니게 한 것은 '위헌'이라는 이른바 '브라운 판결'을 끌어내 역사를 바꿨다. 이 판결은 인종차별을 허무는 민권운동의 불을 지폈다. 이 판결없이 반세기 뒤 흑인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대한민국 사법부가 새 수장과 함께 새 출발을 한다. 앞으로 6년간 사법부를 이끌 김명수 대법원장은 자신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한 21일 "국민을 위한 사법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가 그리는 '국민을 위한 사법부'는 어떤 모습일까.
김 대법원장을 향한 기대와 우려 중에는 '한국형 사법적극주의'가 실현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사법적극주의는 워런 대법원장처럼 기존 판례에 얽매이지 않고 헌법과 법률을 유연하게 해석해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는 사법부의 태도를 말한다.
6년 후 김 대법원장이 '한국의 월 어런'으로 기록될 수 있을까. '기본권 보장'과 '소수자 보호'에 초점을 둔 그의 과거 판결과 발언에 비춰볼 때 가능성이 없지 않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역대 대법원장 중 가장 진보적이고 인권친화적인 인물인 만큼 김명수 대법원이 전향적인 판결을 내놓을 가능성 있다"고 했다.
그동안 우리 법원의 태도는 기존 판례를 답습하고 법리를 엄격하게 해석하는 사법소극주의에 가까웠다. 기존 판례를 '복붙'(복사+붙여넣기)한 판결문이 판을 친다. 그렇다보니 판결이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긴 커녕 뒷다리를 잡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아직 우리나라에선 생소한 사법적극주의가 교과서 밖으로 뛰쳐나와 현실이 될 날이 올까. 하지만 얼마 전 논란이 된 현직 판사의 주장처럼 '재판이 곧 정치'가 돼선 곤란하다. 사법부가 아무리 적극적이어도 입법부의 영역을 침범해서도 현행법의 테두리를 넘어서도 안 될 일이다.
